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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동환 Mar 05. 2022

일본의 신사 문화를 느끼다

Changed(달라진 일상)

사가현 아리타의 거리

일본에서의 생활은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한국과 같은 시차와 편리한 대중교통 그리고 식습관까지 머무름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들이 한국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단지, 문화의 차이점 때문에 발생한 일상의 변화만이 존재하였다. 쓰레기통이 없어도 아주 깨끗한 길거리와 누구 하나 큰소리로 떠들지 않는 대중교통이란 작은 변화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수많은 사찰과 신사였다. 한국과 달리 일본의 크고 작은 동네에서 언제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사찰과 신사들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왠지 경건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절대 가면 안 된다는 구시다 신사 같은 곳들 때문에 방문 자체가 괜히 꺼림칙했다. 그로 인하여 ‘일본에는 왜 이렇게 사찰과 신사가 많을까?’라는 의문점이 생겼다.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런 의문은 일본인들의 사는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것은 바로 종교를 향한 일본인들의 마음가짐이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신의 종교에 대한 신앙심을 중시하지만 일본인들의 삶에서 종교란 풍습이 깃든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기찻길과 연결되어 있는 도잔 신사

“일본인은 태어날 때 신사를 찾아가고 결혼할 때는 교회나 성당을, 죽은 후에는 절로 간다.”라는 말은 그런 일본의 독특한 종교 사정을 잘 반영한 한 마디이다. 일본인들에게 신사는 현실세계의 욕구나 희망을 추구하는 장소로 절은 사후세계의 희망을 추구하는 장소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특히, ‘팔백만의 신’을 모시고 있는 신도는 일본의 토속 신앙에 바탕을 두는 종교로써 역사적 인물과 전설 속 인물 그리고 동물과 같은 다양한 신들을 모신다. 다만, 전쟁을 일으킨 전범들도 신격화하는 일본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엔 이런 나만의 생각들이 일본인들에 대한 반항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일상의 변화처럼 아리타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생각의 전환을 가질 수 있었다.  

   

이삼평 기념비 아래로 펼쳐진 아리타 마을

그곳에는 정유재란 당시 조선에서 일본으로 끌려가 도자기의 신이 된 이삼평이란 인물이 모셔진 있는 도잔 신사가 있었다. 어떻게 일본에 조선인을 모시고 있는 신사가 있었을까? 이삼평은 일본이 자랑하는 사가현 아리 타자기의 시조로 추앙받고 있다. 일본으로 건너온 이삼평은 자기 생산에 적합한 흙을 찾아다니다가 아리타에서 양질의 자석광을 발견하여 일본 최초의 백자기를 생산했다. 그것이 현재까지 이삼평이 도자기 신으로 추앙받는 이유다. 


그의 혼을 만나러 가는 길은 아주 가파른 계단과 언덕을 올라가야 해서 꽤나 힘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신사들과는 달리 반갑기만 했다. 조선인이 일본의 신이 되었다는 묘한 상황이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이삼평은 일본이 자랑하는 사가현 아리 타자기의 시조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땀을 흘리며 도착한 도잔 신사의 꼭대기에서 마주한 이삼평 기념비 아래로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들과 아기자기한 아리타 마을의 풍경이 한눈에 보였다.

도잔 신사


한참을 걸어왔기에 지친 다리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평온한 마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신사 방문 자체를 꺼리고 낯설어하던 스스로가 경건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인들의 특이한 종교문화 때문이라고. 나의 뿌리와 연관된 위인의 혼이 여전히 살아 숨쉬기 때문이라고. 이렇게 신사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이 생겼음에도 일본 여행을 준비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꼭 방문을 자제해야 할 5곳의 신사를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삼평 기념비와 백자기


조선의 국권을 빼앗은 메이지 일왕 부부의 덕을 기리기 위한 도쿄의 메이지 신궁,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을 보관하는 후쿠오카의 구시다 신사,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들을 기리는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 제2차 세계대전 참전자들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히로시마 고코쿠 신사,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신으로 섬기는 교토의 도요쿠니 신사는 ‘한국인이 절대 방문하면 안 되는 신사’들로 유명하다. 무심코 유명 관광명소라고 방문을 하는 여행자들도 참 많은 게 현실이지만 한국인의 뿌리에 큰 영향을 준 인물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소원을 빌거나 참배를 하는 행동은 몰랐다는 말로 해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가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보단 우선 장소가 뜻하는 역사적 의미를 아는 것이 현명한 여행자가 되는 방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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