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기지개를 피고 일어나는 시간은 8:00 am. 시차의 차이가 없기 때문인지 일어남에 대한 자세는 여전히 부지런하다. 습관처럼 두 다리가 향하는 곳은 화장실. 부스스한 머리는 이곳에서도 싫었는지 샤워를 한 뒤 항상 바르던 스킨과 로션을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낸다.
누구 하나 잘 보일 사람은 없지만 다시 한번 거울을 보며 머리를 손질한 뒤 깊은 고민에 빠진다.
‘허기진 배를 채우러 나가는 건데 편한 슬리퍼를 신을까? 아니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운동화를 신을까?’ 멍하니 서 있다가 집 앞 마실 나가는 마냥 슬리퍼를 신는다.‘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모자 쓰고 잠깐 나갔다 와서 씻을걸’ 이란 뒤늦은 후회와 함께 방문을 연다.
털레털레 걸어 나온 거리는 상쾌한 공기와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 좋은 하루다. 매일 오늘 같은 날씨면 얼마나 좋을지 예쁜 상상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마츠야’라는 유명 프랜차이즈 식당이다. 누군가와는 달리 아침식사를 꼭 해야 하는 습관이 있던 내가 매일의 아침을 이곳에서 해결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저렴한 가격, 어디서든지 찾을 수 있는 유명 프랜차이즈, 혼자 먹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이다.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무인자판기는 어색한 일본어를 굳이 할 필요가 없게 도와준다. 그렇지만 익숙한 한글 메뉴판에 보이는 김치 소갈비 덮밥 그리고 두부김치찌개는 무엇을 선택할지 매일 깊은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간단한 해결책을 찾음과 동시에 혼잣말을 내뱉는다.
“어젯밤에 간단히 맥주 한 잔 했으니 해장할 겸 김치찌개를 먹어야지.”
친숙한 국물과 함께 먹는 쌀밥은 이곳이 한국인지 착각하게 만든다. 뚝배기 그릇을 싹 비우는 쾌감처럼 모든 그릇을 싹 비운 뒤 가게를 나오자 싱그러운 바람이 귓가에 맴돈다. 그렇게 풍경소리를 만끽하던 와중 갑자기 어젯밤의 기억이 떠오른다. 미이케 탄광과 징용 희생자 위령비. 일본 강제징용의 현주소인 오무타로 갈 거라고 다짐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걱정도 잠시 슬리퍼만 제외하면 당장 떠나도 이상할 게 전혀 없었다. 낯선 이방인에게 있어서 평범한 하루란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것이니까.
후쿠오카의 하카타역에서 18개의 역을 지나쳐서 도착한 오무타는 화창했던 후쿠오카와 달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숙소에 두고 온 우산이 떠올랐지만 일기예보를 미리 확인 못한 자신을 탓하며 편의점에서 구입한 싸구려 우산을 펼쳤다. 한 방울이라도 비를 맞기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찾아간 미이케탄광은 주룩주룩 비 내리는 하늘처럼 마음을 우중충하게 만들어줬다.
어디에서도 ‘강제징용’이라는 단어와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역사적 사실은 숨긴 채 ‘유네스코 등재’라는 간판을 업고 관광지로써의 노력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발걸음은 근처에 있는 아마기 야마 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은 미이케 탄광에서 강제 노동으로 인해 하늘나라로 떠난 한반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비가 있는 슬픈 장소였다. 사실, 징용 희생자 위령비도 군함도만큼 참 말이 많은 곳이다. 누군가 거짓말, 일본산을 더러운 비석으로 오염시키지 말라 라는 낙서를 일본어로 적어놓고 욱일기 스티커를 붙였던 마음 아픈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쿠오카로 돌아오자 말자 어제처럼 나카스 포장마차로 향했다. 그 순간만큼은 자주 즐겨 먹던 규탄과 맥주의 조합만이 일본에 머무를 유일한 이유였다. 한 잔씩 들이킬수록 내일도 오늘처럼 김치찌개를 먹을 낯선이방인의 평범한 하루일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려본다. 길거리의 반짝이는 네온사인이 별보다 빛나 보일 때쯤은 예민해진 오감이 미이케 탄광을 떠나기 전처럼 싱그러운 바람을 느끼고 거북했던 감정은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이 돼서야 포장마차에서 나와 홀로 숙소를 걸어가며 중얼거린다.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길 잘했다. 맥주 한잔하고 내일은 늦잠을 푹 자려고 했는데, 내일도 그냥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