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과 한국인뿐만 아니라 흑인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과 연령층으로 가득 찬 배는 높은 파도와 함께 앞뒤로 흔들거렸다. 방문의 이유는 제각각인 이들의 목적지는 군함도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오직 일본어로만 관광설명을 해주는 탓에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안내원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전범기업 미쓰비시 조선소를 보았을 때 메이지유신의 찬란함을 말하고 있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배 안에서는 군함도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관광지로써의 역할뿐 역사를 제대로 알리려는 자세를 볼 수 없었기에 많은 생각이 교차했었다. 그러던 와중 시야에 들어온 군함과 같은 형태의 회색빛 건축물들은 스마트폰을 치켜들고 ‘찰칵’ 거리게 만들었다.
여행의 이유가 되어주었던 이곳은 한일 간의 잊어서는 안 될 현장이기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태평양 전쟁 이후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수백 명의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을 당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지옥섬’ 혹은 ‘감옥섬’이라 불렸던 이곳은 많은 조선인들이 허리도 펼 수 없는 비좁은 공간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채굴 작업을 했던 곳이다. 수백 명의 조선인 중 일부는 영양실조와 탄광 사고, 질병 그리고 섬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을 치다가 사망했던 가슴 아픈 장소이기에 방문 자체의 마음가짐이 남달랐다.
훗카이도에서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사진
도착의 알림과 동시에 일렬로 줄을 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맨 마지막에 따라갔다. 아마도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이곳을 바라보고 어떤 감정을 표출할지 궁금해서였던 것 같다. 완장을 찬 직원들의 지시에 따라 돌발행동을 자제해라는 지시는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의 숙소와 흔적을 보고 싶은 내 마음을 닫게 만들었다. 군함도를 설명하던 가이드는 극장, 유치원, 학교, 신사, 가라오케, 미용실, 수영장, 병원, 꽃밭, 채소밭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아주 멋진 곳이라고 군함도를 표현했지만 실제로 출입이 허가된 구역은 아무 곳도 없었다. 폐허가 된 무인도의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들만이 존재하는 이곳에서 과거를 연상할 수 있는 곳은 탄광 노동자들이 사용했던 붉은 공동 목욕탕이 유일했다. 그 순간 나를 툭툭 건드리는 흑인이 물어보았다.
“여기 007 영화에 나오는 곳인데 너도 그런 이유에서 왔니?” 굉장히 화나게 만드는 질문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를 그를 위해 이렇게 답변했다. “한국의 역사와 연관이 있는 장소라서 이곳을 방문했어.”
“산업혁명의 중심이었던 섬이라고 들었는데 너희 나라와 서로를 도와줬었니?”
번역으로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곳의 속사정을 제대로 설명하기로 결심했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그 당시 이곳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강제로 노동을 하고 죽기도 했어. 마치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아메리카 땅에 끌려간 듯이”
나의 대답에 흠칫 놀란 그는 “한국인이 일본인의 노예였던 거야? 마치 우리 조상들처럼?”라고 말했다.
“과거에 아프리카인들이 개인소유로 사고 팔리던 노예제도와는 다르지만 한국인들도 일본인에 의해 강제노동을 하고 자유를 억압받았던 시간이 있었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커진 두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 나는 007의 촬영지라고 해서 실제로 보려고 왔지만 그런 슬픈 역사가 존재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어. 그런 역사가 있는 것에 유감이야.”
“공감해줘서 고마워. 강제 노동의 인정과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안내 센터 설치를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서 그저 이곳에 대해 기분이 나빠. 이것 봐. 네가 보는 건 영화 속 촬영지와 무너져가는 건물들뿐이잖아. 강제 노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지우개로 지운 채 일본의 근대화의 상징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관광지로만 모두가 기억하는 게 너무 안타까워.”
군함도가 얼마나 메이지유신의 찬란한 중심지였는지 설명하는 시간(일본인들만을 위한)은 아주 지루했지만 숨겨진 역사를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는 생산적이었다.
한국인으로서 ‘강제징용’이란 역사적인 관점을 빼고는 정말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콘크리트덩어리였다. 나에게는 여행의 이유가 되어줬기 때문에 최고의 장소로 남았지만 누군가가 이곳을 간다고 한다면 돈과 시간낭비니 추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