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타파스와 와인 한 잔으로 충분히 행복해지는 순간

맛있는순례길 (01) 두 번 와도 모자라는 곳, 로그로뇨

by Lucia K

버섯 타파스와 와인 한 잔으로 충분히 행복해지는 순간버섯 타파스와 와인 한 잔으로 충분히 행복해지는 순간

아침 일찍 로그로뇨행 버스를 탔다. 이틀 전 마드리드에 도착해 고향 같은 마드리드의 분위기를 느끼고, 순례길에 필요한 이런저런 것들도 구비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 로그로뇨에서 마지막 시차 적응을 하고, 내일부터는 순례길을 시작할 예정이다.


코로나 전이었던 2019년 여름, 생장에서 로그로뇨까지 일주일 가량 짧은 순례길을 걸었다. 당시엔 스페인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 날 때마다 짧게 이어서 걸을 생각이었다. 그러다 코로나 이후에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고, 그러는 사이 산티아고 순례길은 내게 너무 머나먼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시작밖에 못 해본 산티아고 순례길은 늘 마음속에 있었고, 4년 만에 드디어 다시 순례길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4년 전 순례길을 로그로뇨에서 마무리 했는데 일정상 좀 더 멀리 갈 수 있었지만, 로그로뇨에서 마무리한 숨은 이유가 있다. 물론 로그로뇨가 큰 도시이기 때문에 교통이 편한 것도 있지만, 로그로뇨의 타파스 거리를 꼭 다시 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로그로뇨에는 유명한 타파스 거리가 있다. 사실 스페인 어느 마을, 어느 도시에서나 타파스에 와인 한 잔 마실 수 있는 골목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로그로뇨의 타파스 거리가 강렬하게 남았던 것은 별거 없어 보이지만 특별한 버섯 타파스 때문인 것 같다. 작은 바게트 위에 올리브오일로 구운 양송이 버섯 3개와 애기 새우 한 개를 올린 뒤 긴 이쑤시개로 고정한 타파스, 정확하게는 핀쵸스라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참고: 핀쵸스는 타파스의 일종으로 주로 빵 위에 내용물을 올리고 이쑤시개로 고정하여 나오는데, 스페인의 북쪽 지방에서 많이 먹는다. 그리고 작은 접시에 간단한 요기나 안주거리로 나오는 음식 모두를 타파스라고 한다.)


적당히 짭조롬한 버섯은 와인을 곁들여 먹으면 와인도 버섯도 멈추지 않고 술술 들어간다. 버섯을 한 개씩 먹는 동안 제일 바닥에 있던 바게트는 버섯 오일이 스며들어 딱 맛있어진다. 다른 핀쵸스를 먹을 때는 바게트빵은 남기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 버섯 타파스는 빵까지 야무지개 먹어줘야 제 맛이다. 예상은 했지만, 하나만 먹긴 아쉬워 하나 더 주문했다. 내일 아침 일찍 순례길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아마 와인과 버섯을 번갈아 가며 끊임없이 주문했을지도 모르겠다. 마침 로그로뇨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인 라 리오하(La Rioja)주의 주도이기도 해서, 양질의 와인을 괜찮은 가격에 마실 수 있다. 이쯤 되면 맛있는 와인 덕분에 버섯을 계속 먹게 되는지, 버섯 때문에 와인이 계속 들어가는지는 헛갈리는데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비교적 한가한 겨울의 로그로뇨 타파스 거리에 있자니, 4년 전 여름 이 거리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모여있는 타파스바들, 그리고 그 안에 순례자들과 관광객들, 지역주민들이 섞여 바글바글했던 시간. 열심히 걷고 와서 먹는 버섯은 꿀맛이었고, 다음날 안 걸어도 된다는 생각에 와인도 술술 넘어갔다. 걷는 속도가 비슷해 일주일 가까이 같이 걸었던 길에서 만난 언니 와도 작별을 앞둔 시간이기도 했다.


생장부터 일주일 정도 열심히 걸어 로그로뇨에서 순례길을 마무리하며 버섯을 먹었던 그때와 다시 순례길을 시작하는 지금 이 순간은 다를 것 같은데 한 편으로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의 공기와 겨울의 공기가 다르고, 순례길을 마무리할 때와 시작하는 순간의 마음가짐도 다르지만 같은 공간에서 여전히 맛있는 그 버섯을 한 입 베어 무는 설레임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스페인의 수십 수백 가지 타파스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나는 로그로뇨의 버섯 핀쵸스를 꼽는데, 핀쵸 자체의 맛도 좋지만 거기에 더해지는 로그로뇨 타파스 거리의 공기, 순례길에서의 추억들이 잘 버무려져 그 어디서도 흉내낼 수 없는 맛이 아닐까. 이 버섯 핀쵸스 하나만으로도 800km가량 되는 이 순례길은 충분히 걸을만 하다.






로그로뇨 타파스 거리의 버섯 타파스 (2019년 8월(좌) & 2023년 12월(우))


4년전에 다 먹은 접시와 잔을 찍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에도 똑같이 찍어봤다. (2019년 8월(좌) & 2023년 12월(우))



철판위의 버섯들, 이렇게 끊임없이 버섯을 굽는다.



대낮에도 북적거리는 타파스 거리 (2019년 8월(좌) & 2023년 12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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