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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여행자 Jun 11. 2021

F코드와의  첫 만남

F328. 인터넷 창에는 무수한 F328이라는 코드가 검색되어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코드인가 싶어 나도 검색을 해보았다. 인터넷에 F328을 검색하면 <비정형 우울증, 가면 우울증, 우울증>이라는 단어들이 나온다.

우울증…?

남편을 불러 다짜고짜 이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남편은 멀뚱히 서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런 나는 싸울 때 내 의견과 남편의 의견이 맞지 않는 경우에 남편을 몰아세우듯이 몰아세웠다. 빨리 묻는 말에 대답하라고 다그쳤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우울증이라는 병은 나와는 거리가 먼 병이라고 생각했었다. TV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막연한 병인 줄로만 알았는데 내 주변 사람, 그것도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하니 그때 당시에는 충격이 컸었나 보다. 그래서 그러면 안 되는데 남편을 다그쳤고, 화도 냈었다. 우울증 환자한테.

남편에게 잠시만 혼자 있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내게도 충격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고 나서 남편과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회상했다. 꼭 남편의 우울증이 나와의 결혼생활로 인해, 나 때문인 것 같아 미안했다. 눈물이 흘렀다.

‘나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남편은 우울증에 안 걸릴 수 있지 않았을까?’

‘다혈질에 이기적인 와이프를 만나 괜한 고생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고생을 아내를 잘못 만나 고생시킨 것 같아서, 걸리면 안 되는 병에 걸리게 만든 것 같아서 안쓰러웠다. 울면서 연신 내가 그동안 너무 못되게 굴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남편은 우는 나에게 나 때문이 아니라고 했었다. 회사 일이 불안해서 우울증에 걸린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종종 우울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바깥일로 인해 불안해하는 남편에게 행복하고 편한 분위기의 집이 있었더라면?이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남편이 우울증에 걸렸을까? 하는 생각에 남편을 차마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우울증인 걸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언제까지 우울증인 걸 숨길 생각이었냐는 나의 물음에 최대한 늦게 말하려 했다 라는 남편. 남편은 그제야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을 들이밀었다. 또렷하게 쓰여있던 F328이라는 코드.

우리는 한 배를 탄 부부인데 자꾸만 자신의 불편한 치부를 숨기려는 남편에게 속상했다. 나는 나의 속상한 일, 기쁜 일 미우나 고우나 남편에게 전부다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아직 남편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걸까 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지만,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다.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옆에서 묵묵히 들어주는 것만 해도 남편의 우울감이 조금은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남편에게 이제부터라도 말 못 할 고민, 속상한 일, 힘든 일 등은 주저 않고 내게 다 말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도 못 하고 가슴속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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