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우울증 완화를 위한 프로젝트
남편과 결혼하기 전 연애시절, 남편은 유**에서 도마뱀을 접했다. 그 이후부터 도마뱀을 키우고 싶다며 결혼을 하게 되면 도마뱀을 같이 키우자고 하곤 했었다. 그에 반해 나는 동물을 아주 병적으로 싫어한다. 아니, 무서워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누가 그러는데 "동물은 널 더 무서워할 거다"라는 우스갯소리들도 들었지만 그래도 난 동물이 무섭고, 또 싫다. 그런 내게 파충류인 도마뱀을 키워보자고 하다니. 나는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었다. 남편이 너무 원해서 도마뱀 카페에 함께 가기도 했었는데 그때도 무서움에 벌벌 떨고 제대로 구경을 못하고 도망 나왔던 기억이 있다.
남편은 결혼한 이후에는 한동안 도마뱀의 '도'자도 꺼내지 않았었고, 우린 비교적 순탄하게 지냈다. 동물을 키우는 것에 대해서는 옥신각신 하진 않았다. 그리고 현재, 남편이 우울증에 걸린 이후로 우울증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하고 찾던 중에 어디선가 애완동물을 키우면 좋다는 것을 봤다.
'아, 애완동물 키우는 건 죽도록 무섭고 싫은데 어떡하지?'
꼭 내가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그런데, 물고기나 식물을 키워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내용을 보고
'그래, 이거다' 싶었다. 시어머님도 물고기를 키우셔서 가끔 시댁에 가면 어항에 있는 물고기에 밥도 줬던 남편. 어쩌면 어머님이 키우시는 거니까 남편도 잘할 수 있고, 재미있어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남편에게 바로 물었다.
"물고기를 한번 키워볼래?"
남편은 '왠 갑자기 물고기?' 하는 표정으로 어리둥절하게 나를 쳐다봤다. 우울증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제안을 했다고 했다. 남편이 내 제안에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생각보다 남편은 더 현실적이었다.
"어항에 물 갈아주는 것도 귀찮고.......
잘못 갈아주면, 죽을 수도 있다 등등"
남편은 갖가지 핑계들을 늘어놓으며 키우기 싫다고 말했다. 그런 나는 갑자기 번뜩 떠올랐다. 남편이 도마뱀을 키우고 싶어 했었다는 것을. 남편에게 다시 물었다.
"예전에 도마뱀 키우고 싶어 했었잖아, 도마뱀 한번 키워볼래?"
눈이 휘둥그레진 남편이었다. 갑자기 눈이 반짝거리면서 도마뱀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도마뱀의 집을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도마뱀을 맞이하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는 남편이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며, 내가 동물을 너무 싫어하지만 남편의 우울증이 조금이나마 완화될 수 있다면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게 바로 사랑의 힘이라는 것이겠지. 아직 도마뱀을 산 것도 아닌데 이렇게 밝아진 남편을 보며 나는 확신이 들었다. 도마뱀을 키우면 남편의 기분이 금방 좋아질 수 있겠다는 것을.
그러나 좋았던 기분도 잠시. 도마뱀을 키우고자 했던 남편에게 난관이 봉착했다. 우리에겐 세 살배기 아들이 하나 있는데 남편은 며칠 뒤 이 세 살배기 아들에게 도마뱀이 위험할 것 같다며 도마뱀을 키우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괜찮다고 아이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키워보자고 계속 제안했지만, 남편은 마음을 접었다. 분명 키우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았는데 계속 이야기해도 남편은 키우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도마뱀과도 안녕인 줄 알았다.
그런데 며칠 뒤 남편에게 갑자기 당근**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연락이 왔단다. 도마뱀을 키우기로 작정했을 때 도마뱀 집을 사기 위해 연락했던 사람이었는데 다시 한번 거래 의사를 물어봤다고 했다. 도마뱀을 키우고 싶었던 마음을 애써 지워냈던 남편이었는데 다시 불이 지펴졌다. 오락가락한 자신의 마음이 미안했는지 남편은 다시 내게 도마뱀을 키워보겠다는 얘기를 꽤나 조심스럽게 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도마뱀이 생각만 해도 너무 징그럽지만, 오케이를 했다. 남편이 달라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아직 도마뱀을 사진 않았지만 당근**을 통해 산 도마뱀 집은 이미 우리 집에 설치되어있다. 도마뱀을 사러 같이 가자고 하며 아이처럼 벌써 설레 하는 남편. 그런 남편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도마뱀....... 자꾸 보면 괜찮아지겠지?
어서 우울증이 나아지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