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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여행자 Jul 12. 2022

오로라야, 너란 녀석은 참 귀한 녀석이구나.

아이슬란드를 가게 된 계기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에 한창 여행 붐이 일어났을 때, 여행 TV 프로그램인 꽃보다 할배부터 시작해서 꽃보다 청춘 시리즈를 즐겨 보며 내가 가보지 못한 곳들로의 여행의 꿈을 키워왔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이 기억에 남아있다. 이제는 까마득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네 남자의 우정과 아이슬란드 대자연의 풍경이 어우러져 인상 깊게 봤었는지 아직도 어제 봤던 것처럼 선명하다. 오죽하면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에서 그들이 봤던 오로라를 TV를 통해 함께 보며 그 신비로움에 감탄을 했었고, 실제로 보고 싶다는 꿈을 남몰래 키웠다. 그렇게 나는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을 통해 '신혼여행은 꼭 아이슬란드로 가야겠다!'는 발칙한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그때의 남자 친구이자, 지금의 남편에게 "나의 신혼여행은 무조건 아이슬란드야"라고 선언을 했었다. 겨울에 자주 출몰하는 오로라를 보기 위해 우리의 결혼 일정은 자연스레 겨울이 되어버렸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오로라를 보러 가기 위해 결혼은 겨울에 할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했었고, 그만큼 나는 여행에 진심이었다.



귀하디 귀한 녀석, 오로라

솔직히 겨울에 아이슬란드에 도착하면, 나도 그들처럼 오로라를 자주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오로라를 꼭 보고 올 것이라 다짐을 했건만. 어두워지기만 하면 도심 어디에서든 오로라가 하늘에 계속 떠 있는 건 줄 알았고, 길을 지나다니면 흔하디 흔하게 나타나는 건 줄 알았었는데. 오로라 이 녀석은 참 귀한 녀석이었다. 이렇게 귀한 녀석인 줄은 아이슬란드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오로라 투어를 가는 길 - 레이캬비크의 저녁
오로라 투어를 가기 위한 투어버스, 흔들렸던 사진만큼 내 마음도 흔들렸다

오로라의 적, 빛과 바람

오로라가 출몰하는 조건으로는 일단 빛이 있으면 안 됐다. 간판이나 불빛 등을 비추면 안 됐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번화가에서는 오로라를 쉽게 볼 수 없었다. 아이슬란드의 수도인 레이캬비크 숙소에서 잠을 자는데 시차 때문인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야심한 시각에 괜히 침대에서 일어나 혹시나 오로라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창밖의 커튼을 들춰보곤 했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오로라는 보이지 않았었다. 오로라에 진심이었던 나는 오로라를 꼭 보고 가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오로라 투어를 미리 예약했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왔고, 숙소 앞으로 버스 한 대가 다가왔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 숙소 앞에서 버스를 타고, 빛이 잘 비추지 않는 어두운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너무 추워서 핫팩과 패딩, 손난로는 필수였다. 한 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이동 후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어둡고 조용한 곳으로 오로라를 쫓아왔는데 2시간, 3시간을 기다려도 오로라는 도무지 나타나질 않았다.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우리는 오로라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가득 안고 다시 숙소가 있는 레이캬비크로 출발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지 몰라도 나는 오로라를 볼 수만 있다면, 밤새서라도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만큼 간절했었다. 야속했던 오로라여.

기다리던 오로라는 나오지 않고, 야속한 달빛만

첫날 오로라를 보지 못한 아쉬움은 꽤나 컸다. 우리의 여행을 온 목적이 흔들리는 것 같았었으니까. 이전에 한국에서 오로라 투어를 예약했을 때 여러 번 예약하고 싶었지만, 예약 상담을 도와주셨던 가이드님이 "현지에서 예약이 가능하니 처음에만 예약하시고, 그다음에는 현지에서 예약하세요. 처음부터 오로라를 보실 수도 있잖아요"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팔랑귀였던 나는 넘어가 버렸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오로라를 보지 못했기에, 오로라를 또 보고 싶다면 이제 현지에서 예약을 해야 했다. 우리는 다른 여행을 하면서도 오로라에 대한 갈증이 해소가 안되었고, 오로라가 계속 보고 싶어 다른 일정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오로라 그까짓 거 꼭 봐야 돼?"라고 이야기를 했던 남편조차 현지에 도착하자 오로라를 꼭 보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생긴 듯했다. "오로라 꼭 보고 갔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우리는 현지에서 오로라 투어를 예약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예약을 했다. 


우리가 현지에서 오로라 투어를 예약했던 장소 - 하르파



그런데, 예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로라 투어가 취소됐다는 문자가 왔다. 역시나 귀한 녀석이었다. 이번에는 바람이 문제였다. 강한 바람은 오로라에게 적이었다. 그날따라 바람이 많이 불었다.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결국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바람 때문에. 오로라 이 녀석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만큼 귀한 녀석이었다. 나의 3대는 덕을 쌓지 않았던 것으로 심심한 위로를 해본다. 



찰나의 순간도 용인하지 않는 오로라.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항에서 우리처럼 신혼여행을 즐긴 한국인 부부들을 많이 만났었다. 한국인 부부들을 만났을 때 우리의 첫인사는 "오로라 보셨어요?"였다. 아쉽게도 인사했던 부부들 모두 오로라를 보지 못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순간, '나만 못 봤던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던 건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런데 비행기에서 한 분이 "저는 새벽에 잠이 안 와서 숙소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오로라 같은 걸 본 것 같았어요. 담뱃불을 끄고, 부랴부랴 사진을 찍고 난 뒤 자고 있던 아내를 깨우러 들어갔는데요. 깨우러 들어갔던 순간에 없어졌더라고요. 같이 보고 싶었는데."



그렇다. 오로라는 찰나의 순간도 참아주지 않았던 귀한 녀석이었다. 그분이 사진을 보여주셨던 덕에 간접적으로나마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비록 그때 당시에는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의 네 남자들처럼 오로라를 볼 수 없었던 우리였지만, 다음에 아이슬란드를 다시 찾는다면, 그때는 꼭 볼 수 있기를 고대한다. 

남편은 힘들고 고생스럽다며 굳이 겨울에 와야겠냐고 했었지만, 오로라는 겨울에만 있는걸. 밤이 길고, 추운 아이슬란드의 겨울이지만, 오로라를 볼 때까지는 아마 아이슬란드를 겨울에만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남편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원래 고생스러운 여행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이며, 겨울의 아이슬란드는 매력적이지 않냐고. 다음이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레이캬비크의 상징, 할그림스키르캬 교회
할그림스키르캬에서 바라 본 레이캬비크 전경
레이캬비크 시내에 있는 트요르닌 호수와 일몰이 예쁘다는 선보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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