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노르웨이에 이어 스웨덴에 도착을 했다. 오슬로 중앙역에서 스톡홀름 중앙역까지는 고속열차를 타고 장장 5시간 정도가 걸렸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숙소가 있던 감라스탄으로 직행했다. 딱 마주하자마자 나를 당황케 했던 스톡홀름의 올드타운인 감라스탄의 돌길. 데굴데굴 캐리어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숙소까지 가는 길은 왜 이렇게 험난한 거지? 그 와중에 감라스탄은 왜 이렇게 예쁜 거야.
감라스탄에서 머물 숙소에 도착을 했다. 가볍게 짐을 정리하고 바로 시내로 나왔다. 저녁이 되자 배가 고팠다. 나는 미리 알아두었던 숙소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달려갔다. 이곳은 연어요리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선택지가 2개였다. 훈제 연어 요리, 튀김 연어 요리. 어떤 연어 요리를 먹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던 나는 가볍고, 상큼한 연어 요리를 먹고 싶어 훈제 연어 요리를 택했었다. 레몬을 쭉 짜서 먹은 훈제 연어는 배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북유럽 사람들의 주식인 감자도 곁들여 먹으니 꿀맛이었다. 아마 이곳에서의 감자는 우리의 쌀과 같은 의미인 것 같았다. 그렇게 맛있게 먹고 기분 좋게 돌아서서 나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식당은 다른 선택지였던 연어구이(튀긴 연어)가 더 맛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또 가면 되지.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내일 저녁에 다시 찾기로 결심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행할 때 이런 올드타운 같은 엔틱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감라스탄이 끌렸었나 보다. 감라스탄을 더 파헤치고 싶어 아침부터 무작정 돌아다녔었다. 그러다가 내 눈에 띄었던 한 카페의 핫초코&와플세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문을 열고 들어가 버렸다. 빈자리를 안내해주었다.
"디저트인 핫초코 와플세트를 먹으러 왔어요"
자리를 바꿔주었다. 식사하는 자리, 디저트 먹는 자리가 따로 있었다. 늦은 오후 시간이었는데 식사를 하러 왔던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그들을 구경하다 보니 주문했던 핫초코 와플세트가 나왔다. 내가 여행했을 때가 약간 바람이 쌀쌀하고 추웠었는데, 핫초코가 몸을 녹이기에 제격이었다. 라즈베리 잼과 생크림이 발라진 하트 모양의 와플을 먹으니 달달함과 달달함이 만나 졸음이 쏟아졌었다. 나 아직 더 돌아다녀야 하는데.
카페에서 계산을 하고 나오려던 찰나 사장님이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셨다. "중국?, 일본?" 아쉽게도 한국은 나오지 않았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니 "안녕하세요"라는 서툰 한국어 실력을 보여주셨었다. 북유럽 여행을 와보니 아직 한국에 대해, 한국 사람들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우리가 더 분발해야겠지.
저녁이 되자, 전날 갔던 레스토랑을 달려갔다. 연어구이를 먹어보기 위해서. 그런데, 주말이었던 감라스탄. 레스토랑에 손님이 바글바글 했었다. 오늘은 왠지 날이 아닌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배회하다가 근처 식당을 들어가 봤다.
"혹시 식사할 수 있을까요?"
"예약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빨리 드실 수 있다면 앉으세요"
나는 어차피 나 혼자 간단히 먹을 것이었기 때문에 예약시간 전에는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딜 가도 이렇게 사람에 치일 것 같았기에 나는 앉아서 메뉴를 골랐다. 마늘 후레이크가 뿌려져 있던 핫도그였다. 그런데 고추냉이가 뿌려져 있는 듯 고추냉이 맛이 엄청 강했다. 그런데 나는 싫지 않았다.
'내가 또 고추냉이를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알고, 이렇게 많이 주셨을까?'
오히려 반가웠다. 바삭했던 마늘 후레이크와 같이 먹으니 맛있었다. 마늘 후레이크 별로 안 좋아했는데 좋아졌다. 역시 혼자 먹으니까 빨리 먹고 나올 수 있었다.
다음날, 연어구이를 먹으러 재빨리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재빠르게 찾아갔던 덕분에 나는 여유 있게 연어구이를 먹을 수 있었다. 훈제 연어도 맛있었는데, 연어구이는 정말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맞았다. 한번 더 먹고 싶었는데 벌써 감라스탄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게 아쉬웠다. 역시 북유럽의 연어는 최고였다. 연어 자체가 싱싱하기 때문에 무슨 요리를 해도 연어가 맛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스웨덴에서 연어 말고 또 유명한 음식이 있었다. 바로 미트볼. 특히 내 주변에서 먹고 있던 사람들도 미트볼 요리를 많이들 먹고 있었다. '미트볼도 먹어보고 싶은데,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스웨덴을 떠나가기 전에 미리 예약하고 먹으러 가면 되지.
연어구이를 먹고 나서 미트볼이 먹고 싶어 미트볼 요리 레스토랑을 검색했다. 내게 스웨덴에서 남은 시간은 다음날 브런치뿐이었다. 브런치 시간으로 검색을 한 결과 어느 한 레스토랑이 나왔다. 미트볼 요리를 먹고 스웨덴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어 스웨덴에서의 마지막 먹방이 될 미트볼 요리를 먹으러 길을 나섰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었던 걸까. 방향치였던 나는 내비게이션을 보지 않고, 식당을 찾아갔었다. 그런데 한 식당에 도착해서 예약을 했다고 하니 예약자가 없다고 했다. 당황했던 나는 내비게이션을 켰다. 잘못 찾아갔었다. 다시 내비게이션을 켜고 얼마 되지 않은 거리를 찾아갔는데, 이렇게 우연의 일치가. 바로 며칠 전 와플 핫초코 세트를 먹었던 그 카페가 아니었는가. 예약할 당시에는 전혀 몰랐었다. 놀라운 마음으로 기분 좋게 식당을 들어갔는데,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반가운 사장님. 사장님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혹시 우리 본 적 있지 않나요?"
사장님은 날 기억하고 계셨다. 며칠 전에 와플과 핫초코를 먹고 갔었다고 말씀드렸더니 웃으시면서 기억난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북유럽을 찾는 한국인이 많지 않아서였겠지. 사장님께서는 맛있는 미트볼 요리를 조리해주셨었다.
이제 앞으로 어디로 떠날 것이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이제 곧 핀란드 헬싱키로 떠날 예정이라고 말씀드렸다. 미트볼 요리를 맛있게 먹고 나서는 길에, 다음에 또 스웨덴에 놀러 오라고 해주셨다. 뭔가 스웨덴에 먼 친척이 생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제가 만약 스웨덴에 또 놀러 오게 된다면, 이곳을 찾을 거예요. 그땐 한국어 메뉴판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꼭 다시 놀러 와요! 그럼 한국어 메뉴판은 당신에게 부탁할게요"
유쾌했던 사장님과 지킬 줄 알았던 약속을 덜컥해버렸는데 몇 년 동안 지키지 못해 괜히 마음이 무거웠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었을 텐데 사장님과 사진이라도 찍고 올걸, 그땐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늦게나마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혼자 여행하면서 나는 늘 배고팠었다. 덴마크, 노르웨이 여행 시에 돈과 배를 많이 아꼈던 게 스웨덴에 와서 이렇게 빛을 발하게 될 줄 몰랐다. 나름 호화롭게 먹었지만, 더 다양하게, 풍족하게 먹지 못했던 걸 후회한다. 내가 또 언제 갈 줄 알고. 그때는 몰랐었다. 내가 이렇게 못 가게 될 줄은. 다들 보고 싶다!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