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책은 1995년 일본에서 일어났던 고베대지진 사건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그림책이다. 일본의 전례 없는 사건이었다고 하는데 이때는 고베에는 지진이 별로 없었어서 내진설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였다고 한다. 이때를 교훈 삼아 탄탄한 내진설계를 하게 되었고, 이다음에 있었던 다른 대규모의 지진들에서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첼로교실에 새로운 한 아이가 찾아왔다. 그 아이는 내가 연습하는 곡보다 훨씬 어려운 곡을 술술 켤 수 있었다. 연습이 끝나고 늘 가는 공원에 갔는데 그 새로운 아이가 따라왔다.
“야 네가 연주하는 첼로소리는 꼭 강아지 같더라”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싫진 않았다. 내가 첼로를 연주하게 된 건 키우던 강아지 그레이가 사라지고 난 후 아빠가 새 강아지가 아닌 첼로를 사줬을 때부터였다. 아빠는 왜 새 강아지가 아닌 하필 많은 악기들 중에 첼로를 사줬을까? 이 그림책의 가장 중심이 되는 요소는 바로 첼로다. 하고 많은 악기 중 왜 하필 첼로였을까? 하는 궁금증과 일맥상통한다.
“우리 같이 연주해보지 않을래?”
그 아이는 주섬주섬 공원에서 첼로케이스를 열어 첼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둘은 함께 그 공원에서 연주를 했다. 그 아이는 플로르 이야기를 꺼냈다. 플로르가 누구냐는 물음에 그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무에서 뛰어놀던 두 아이. 어디에서 왔냐는 물음에 그 새로 온 여자아이는 고베에서 왔다고 했다.
둘은 공원에서 나와 길을 지나쳐가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수많은 첼로를 등에 짊어진 사람들을 만났다. 둘은 그 사람들을 따라갔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었는데 무엇을 하는 건지 궁금했다. ”대지진 복구 지원 음악회“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그 할아버지는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응원하는 음악회라고 이야기해 줬다.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아이는 바로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이 음악회는 첼로를 연습할 수 있는 누구나에게 참여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서 그 아이는 함께 할 수 있었다. 그 아이의 진지한 얼굴에 이끌려 나도 함께 참여했다. 할아버지와 그 아이 나는 셋이서 공원에서도 함께 연습하고 했다. 할아버지는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는데 가족도 친구도 집도 다 잃어버린 할아버지에게 유일하게 남았던 건 바로 친구가 남긴 첼로였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그 아이는 자신의 경험과 플로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할아버지와 그 아이는 모두 고베 대지진을 경험했던 것이었다. 할아버지와 그 아이, 그리고 나는 연습이 끝나고, 공원에서 또 연습을 했다.
”이제 더 이상 너의 첼로소리, 강아지 소리 같지 않아 “
계절이 바뀌고 첼로연습은 계속되었고, 나는 여전히 그레이를 생각하고, 그 아이는 플로르를 생각할 것이고, 할아버지는 그 친구를 생각하며 첼로를 연주하겠지?
드디어 음악회가 열리는 날이 되었고, 전국 각지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모여 약 천 개의 첼로가 모였다. 그 천 개의 첼로 연주 소리는 공연장 전체를 웅장하게 해 줬고, 그 소리가 바람이 되어 타고 흘렀다. 천 개의 소리들이 모여 하나의 하모니를 이룬 것이었다.
각자의 아픔이 모여 음악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로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치유해 주는 그림책이었다. 나는 사라진 개 그레이를 그리워했고, 그 여자아이는 플로르를, 할아버지는 가족과 친구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들을 치유해 주기 위해 전국 각지, 전 세계에서 자신의 일인 것처럼 한 군데 모인 사람들 또한 대단했다. 이들이 모여 만든 하나의 소리는 직접 듣진 못했지만, 마음으로 들었을 때 멋지고 웅장했다.
나 또한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마음이 몹시 힘들 때 음악을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마음이 치유된다는 기분이 든다. 곁에 아무도 없을 때 음악이 나를 토닥토닥해 주는 듯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1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요즘에는 결혼하고 아이를 돌보느라 할아버지가 있는 납골당에 잘 가보지 못하고 있는데 종종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할아버지 납골당에 갈 때면 우리 가족은 항상 할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드리고, 살아생전에 할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성가를 함께 부르고 할아버지를 애도했었다. 이 책을 보니 그립고 보고 싶은 할아버지가 더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