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제목만 봤을 때는 ‘철사?’, ‘코끼리?’ 뭔가 싶을 것이다. 그림 색채도 어둡다. 이 책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이별에 대한 슬픔을 단계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그림책이다. 그래서 상실의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그림책이다. 내 마음이 더 성장했는지 이 책을 처음 봤을 때보다 이번에 더 감명 깊게 봤다.
아무나 오를 수 없는 돌산 아래 소년 데헷이 살고 있었다. 데헷은 그 돌산을 오르내리며 고철을 모아 대장장이 삼촌에게 갖다 주는 일을 했었다. 데헷의 곁에는 항상 얌얌이라는 코끼리가 있었는데 둘은 어디든 함께였다.
그랬던 얌얌이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 매일 함께했던 누군가가 곁을 떠난다는 그 슬픔의 무게를 감히 제삼자가 짐작할 수 있을까? 데헷은 너무 슬퍼 견딜 수가 없었다. 몇 날 며칠 눈물이 마르지 않도록 계속 흘렀다. 너무 얌얌이 보고 싶었던 데헷은 철사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 철사들로 얌얌을 닮은 코끼리를 만들었다. 데헷은 그 철사코끼리가 얌얌이라고 믿었다.
데헷은 철사코끼리와 함께 어디든 다녔다. 얌얌과 함께했던 시간으로 되돌아갔던 것이었다. 철사코끼리와 데헷이 지나다닐 때마다 철컹 철사소리가 들렸고, 철사코끼리가 너무 커서 사람들은 지나다니면서 이들을 만날 때마다 길을 비켜줘야 해 불편했다. 데헷은 얌얌이 돌아왔다고 믿었기에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데헷은 철사코끼리를 멈췄다. 멈추니까 사람들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소리가 들렸고, 철사에 찔려 피가 나고 있던 자신의 손이 보였다.
“얌얌과 닮지 않았어”
데헷은 철사코끼리를 끌고 올라가 용광로에 밀어 넣었다. 대장장이 삼촌은 철사코끼리를 녹여 데헷에게 종을 만들어주었다. 바람 따라 종소리가 울리면 데헷은 얌얌이 곁에 있다고 믿었다. 데헷은 그렇게 평소와 똑같이 돌산을 오르내리며 삼촌에게 고철을 가져다주었다.
이 책은 이별의 슬픔과 극복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언제나 함께할 거라 믿지만 그런 사랑하는 사람이 갑작스럽게 내 곁을 떠난다면? 그 슬픔의 무게를 나타내고자 철사를 소재로 쓴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우리는 흔히 이별을 겪는 사람들에게 “시간이 약”이라는 말과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을 한다. 언제나 함께할 줄 알았던 반려코끼리 얌얌과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슬픔. 그리고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철사들을 모아 코끼리를 만들고 얌얌을 그 철사에 투영한다. 그 철사코끼리와 함께 하면서 자신도 손이 찔리고 아팠을 텐데도 그 아픔은 얌얌을 잃은 슬픔에 비할 바가 못됐을 것이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불편함은 안중에도 없었을 정도였기에 눈과 귀를 닫았던 것이었겠지. 그만큼 데헷은 그 슬픔의 무게를 가누지 못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슬픔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던 어느 날 데헷은 현실을 직시했던 것일까? 철사에 찔려 피가 나고 있는 자신의 상처를 보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을 살피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고 슬픔에 빠져나오기 위해 얌얌과 닮지 않았다며 제 손으로 직접 철사코끼리를 용광로에 내던지는 장면에서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이 들렸다.
이 책을 처음 봤을 때는 얌얌을 잃은 슬픔이 얼마나 컸을까? 에 초점을 맞춰 얌얌을 그리워하고 철사코끼리를 만들어 함께 다녔던 부분을 인상 깊게 봤었다면 이번에 다시 봤을 때는 이별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그 슬픔에 빠져나오려는 부분인 철사코끼리를 용광로에 내던지는 장면이 더 깊게 와닿았다. 그 사이 내 마음도 슬픔 앞에서 더 단단해진 걸까?
이래서 그림책은 두고두고 봐야 한다는 것인가 보다. 다음에 다시 이 책을 펼친다면 그땐 또 어떤 장면이 내 마음을 움직이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