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구석여행자 Nov 15. 2024

난독의 계절

<<나의 괴짜친구에게>> 그림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어 <<철사코끼리>>, <<어떤 토끼>>등의 그림책으로 좋아지게 된 고정순 작가님의 신작을 펀딩으로 먼저 받아봤었다. 너무나 귀여운 고구마 인형과 함께 상자에 배달되어 온 나의 첫 펀딩 책 <<난독의 계절>>. 이 그림책은 특히나 작가님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들었어서인지 작가님의 다른 그림책을 볼 때 보다 더 기대가 되기도 했다. 옛날부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난독의 계절>>이라는 제목을 들으니 더더욱 요즘 읽기 딱 제격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은 어쩌다 보니 태어났던 고구마. 고구마는 벌레랑 숨바꼭질하기, 멜로디언 불기 등 뭐든 잘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이런 고구마가 못하는 게 있었으니 바로 글을 못 읽는 것. 처음에 글을 못 읽는 걸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글을 잘 읽고 싶어 부단히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도통 뭐라 쓰여있는지 모르겠었다. 어버이날 학교에서 부모님께 편지 쓰기를 하라고 했다. 글을 쓰고 읽을 줄 몰랐던 고구마는 옆에 짝꿍이 쓴 글씨를 보고 따라 그리기로 결심했다. 어렵게 한 자 한 자 그려나갔는데 엄마를 보여드렸더니 “이렇게 쉬운 맞춤법도 틀리니?”라고 한소리를 들었다. 알고 봤더니 그 짝꿍도 맞춤법이 서툴렀었다. 고구마에게는 글을 잘 읽는 동생이 있었는데 동생에게 준비물을 읽어달라고 했었다. 그 준비물에 ”기타 등등“이라는 말을 듣고 학교에 장난감 기타를 챙겨갔던 적도 있었다. 이러한 일들은 다 글을 읽을 줄 몰라 생겼던 일이었다.


이런 고구마에게는 언니가 있었다. 언니가 있는 줄 몰랐었는데 집에서 부모님이 바쁘셔서 첫째를 키울 수 없어 할머니에게 맡겼었다가 집에 올 때가 되어 왔다. 갑자기 생긴 언니가 고구마는 미웠다. 그래서 처음에 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언니가 싫었던 나머지 언니를 괴롭혔다. 그러나 언니는 그때마다 참았다. 언니는 고구마가 글을 못 읽는다는 비밀을 처음 알게 되는 사람이었다. 언니는 그때부터 고구마가 받아쓰기를 잘할 수 있도록, 글을 한자라도 더 읽을 수 있도록 옆에서 노력해 줬다. 언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구마는 글을 잘 읽을 수 없었지만 언니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언니의 노력 덕분인지 고구마는 조금씩 언니에 대한 마음을 열어갔다. 그리고 언니에게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고구마네 집은 오락실을 했었다. 선생님은 고구마를 따로 불러 “너네 집에 가는 아이 이름 다 적어와”라고 말했다. 고구마는 읽고 쓰는 게 서툴러 이름을 적지 못했지만, 본인을 오락실 한다고 놀렸던 친구들에게는 직접 실내화 가방을 줘도 됐지만 꼭 다음날 선생님께 가서 ”누가 저희 집에 실내화 가방을 놓고 갔어요. “ 라며 소심한 복수를 했다. 고구마의 이런 모습을 보며 내 소심했던 어렸을 적 날들이 생각나  통쾌하기도 했다. 이랬던 고구마에게 친하게 지냈던 친구 상숙이가 있었다. 상숙이는 고구마네 집이 오락실을 한다고 놀리지 않았던 유일한 친구였고 고구마가 글을 못 읽는다는 비밀을 두 번째로 알게 된 사람이었다. 상숙이도 고구마가 글을 못 읽는다는 사실을 알고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 언니와 상숙이가 끊임없이 고구마가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도와주었지만 글을 읽고 쓴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간절히 원하면 흔히들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때로는 간절히 원할수록 꿈을 이루는데 멀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래도 고구마는 낙담하거나 슬퍼하지만 않았다. 자신이 잘하는 걸 찾으며 그럭저럭 잘 지내려고 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고구마에게는 그를 응원하고 격려해 주는 가족과 친구가 있었다.


“딱 좋은 ‘지금’이 모여 나는 자랐다.

우리라는 이름이 있어 가능한 찰나였다.”


어쩌다 보니 태어난 고구마의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성장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자신이 난독증이라는 걸 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난독증에서 쉽게 나올 수 없었다. 그때마다 주눅 들고 자존감이 낮아졌지만 이를 잘 버틸 수 있게 해 줬던 원동력은 바로 가족과 친구였다. 간절히 원할수록 꿈에 멀어질 수 있다고 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꿈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엄마와 함께 길을 걷는데 간판에 있는 글자를 읽게 된 것.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역시나 그간의 노력들이 차곡차곡 모여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우리 아들과 내가 생각이 나 깊은 공감을 했다. 우리 아들은 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다른 또래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부르고 싶을 때마다 부르고 말도 조잘조잘하는데 우리 아들은 그러지 못했다. 엄마 아빠가 부르고 싶을 때면 항상 말보다 손이 앞섰다. 내 손을 잡아끌기 바빴다. 이런 아들의 말문을 열어주고자 나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며 옆에서 노래도 불러주고 말도 열심히 걸어보고 무언가 달라고 할 때마다 “말로 해야 줄 거야”라고 윽박도 질러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도 이때 생각했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는 걸까?라고. 이렇게 무너지려고 할 때마다 내 곁에는 고구마처럼 나를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 이런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더욱더 아들의 말문을 열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해오고 있었는데 불과 몇 달 전부터 갑자기 아들이 말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를 부르고 싶을 때 부르고, 본인의 의사도 표현하고. 어쩌면 간절히 원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순간들, 그간의 내 노력이 부질없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다 모이고 모여 이런 감격의 순간을 만들어낸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구마가 간절히 원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게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길을 지나가다가 간판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처럼.


이 책이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그림책이었던 만큼 지난 북토크에서 들었던 이야기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이며 책도 많이 읽으시지만 아직도 “난독” 으로 많이 힘들다고 하셨는데 우리 아들도 이제 갓 입을 뗀 만큼 아직 갈길이 멀다는 걸 안다. “난독”으로 힘들었던 작가님이 작가가 되시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하셨을지 지금 우리 아들을 보면서 또 아들의 말문을 열기 위해 내가 했던 노력들을 생각하면서 감히 짐작해 본다. 앞으로 아들이 엄마인 나뿐만 아니라 세상에 나와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게 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겠지? 그러다 보면 아들과 나 또한 한 뼘 더 성장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언젠가는 웃으면서 “네가 이랬던 적도 있었어”라고 추억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우리는 “난화의 계절”인 걸까? 우리의 난화의 계절 파이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철사코끼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