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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여행자 11시간전

작은 눈덩이의 꿈

오늘따라 겨울 그림책이 보고 싶었다. 갑자기 책장에 꽂힌 소복이 하얗게 쌓인 눈밭과 눈덩이, 까마귀가 그려진 이 책이 책장에서 보였다. 차가운 눈밭과 대비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이뤄진다는 따뜻하고 희망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책이라 이 책을 참 좋아한다. 오랜만에 꺼냈는데 역시나 좋았다. 오늘만큼은 아이에게도 읽어주고 싶어 아이가 듣던 듣지 않던 큰 소리로 읽어주었다.


하얀 눈밭에 작은 눈덩이가 있었다. 작은 눈덩이 앞에는 큰 회색빛 그림자가 드리웠는데 아주아주 큰 눈덩이였다.


“어떻게 하면 아저씨처럼 아주아주 크고 멋진 눈덩이가 될 수 있어요?”

“그냥 열심히 구르면 돼”


그때부터 작은 눈덩이는 아주아주 크고 멋진 눈덩이가 되기 위해 열심히 눈밭을 굴렀다. 그러나 구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밭을 구르다가 나뭇가지가 콕 박혔던 작은 눈덩이. 아무리 몸을 세차게 흔들어도 나뭇가지는 빠지지 않았다. 그때 까마귀가 나타났다.


“내가 좀 도와줄까?”


까마귀는 나뭇가지를 쉽게 빼주었다. 그리고 혼자 눈밭을 구르던 눈덩이에게 함께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작은 눈덩이와 까마귀는 그때부터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까마귀는 작은 눈덩이에게 눈밭을 왜 구르는지 물었고, 작은 눈덩이는 아주아주 크고 멋진 눈덩이를 만났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주아주 크고 멋진 눈덩이가 되고자 하는 꿈이 생겨 이렇게 구르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눈밭을 잘 굴러가고 있었는데 어차피 눈덩이는 부서지기 마련이라 하며 굴러봤자 소용없다는 부서진 눈덩이, 내 몸에 어서 붙으라고 쉽고 편하게 커질 수 있다고 유혹하는 눈덩이,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 녹아내리며 삶을 포기하는 눈덩이를 만나게 된다. 이렇게 세 유형의 눈덩이들을 만났을 때 당시에는 화를 내며 무시하고 계속 눈밭을 굴렀던 작은 눈덩이였는데 갑자기 다시 생각해 보는 작은 눈덩이.


“과연 아주아주 크고 멋진 눈덩이가 될 수 있는 걸까? 그냥 다른 눈덩이 몸에 붙을까? 어차피 부서지고 녹아내릴 텐데 그냥 구르지 말까? “


이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줬던 건 바로 옆에 있던 까마귀였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눈밭을 굴렀던 작은 눈덩이는 마침내 꿈을 이루게 된다. 아주아주 크고 멋진 눈덩이가 되어 다른 작은 눈덩이의 롤모델이 된 것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크고 멋진 눈덩이가 될 수 있었어요? “

”나? 그냥 눈밭을 굴렀을 뿐이야 “


그러고는 끊임없이 까마귀와 함께 눈밭을 굴러 다녔다.


내게는 꿈이 있었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엄마”라는 소리를 들어보는 것. 발달이 느린 아들은 당연히 말도 느렸다. 그래서 다른 또래 아이들이 엄마에게 “엄마”라고 부를 때 그저 멀뚱히 나를 쳐다보거나 내 팔을 잡아끄는 게 전부였다.

“엄마” 소리를 듣고 싶어서 노력을 참 많이 했었다. 작은 눈덩이가 크고 멋진 눈덩이에게 어떻게 하면 크고 멋질 수 있을지 물어본 것처럼 나 또한 주위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아들이 말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봤었다. 그때마다 옆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면 좋다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그림책을 열심히 읽어줬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이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었으니까. 그렇게 그림책 읽는 것을 포기해야 되는 건가 했던 찰나에 까마귀 같은 언니를 만났다.


”반복되는 내용이 있는 쉬운 그림책을 읽어줘 봐 “


수많은 그림책들 속에서 반복되는 문장이 많이 나오는 그림책을 찾아 매일 밤마다 꾸준히 읽어주었다. 처음엔 이마저도 효과가 없는 듯했는데 계속하다 보니 마침내 아들은 서서히 말을 시작했던 것이었다. 엄마가 필요할 때 ”엄마“라고 불러주었다. 내 꿈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제 아들은 엄마 아빠는 물론 본인이 하고 싶어 하는 요구표현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을 표현하고 궁금한 걸 물어보는 등 아직 해야 할 게 많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꾸준히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아들에게 희망을 봤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꿈이 있다. 점점 좋아지고 있는 아들과 함께 세상(눈밭)을 나아가기 위해 꾸준히 굴러나가는 것,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 롤모델이 되어주는 것.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찌 좋을 수만 있겠나. 를 알려주는 그림책이었다.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 고비들을 만나고 그럴 때마다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를 잘 헤쳐나간다면 비로소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것. 개인적으로 삶이 무기력하다고 생각하고 절망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 쓰는 말이라고 하지 않는가. 꾸준히 노력하면 간절히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 노력하는 자를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이 책은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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