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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치여도 여행은 좋아해.

by 방구석여행자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엄청난 길치에다가 방향치다. 한번 가본 길은 지도가 없어도 곧잘 찾아가지만, 처음 가는 길은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쉽게 잘 찾아가지 못한다. 지도를 보면 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지도를 봐도 매번 틀리게 가서 다시 돌아오기 일쑤다.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중에 있었던 일이었다. 같은 반에서 공부를 했던 한 일본인 친구와 친하게 지냈는데 그 친구는 이모와 함께 살았다. 어느 날 그 친구의 이모가 헌팅턴 비치가 그렇게 좋다고 이야기했다며 함께 가자고 제안을 했다. 헌팅턴 비치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고, 수업을 마치고 차를 운전해서 함께 찾아갔다. 그렇게 바다도 보고, 바람도 쐬면서 실컷 즐기고 왔는데 친구가 나중에 이야기해주었다. 이모에게 우리가 찍었던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그곳은 헌팅턴 비치가 아닌 헌팅턴 비치 옆의 뉴포트비치였다고.

머쓱했던 우리는 다시 헌팅턴 비치를 찾아가 보기로 약속을 했다. 이번에는 주소를 검색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친구에게 나는 길치에 방향치니 잘 좀 봐달라고 부탁도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목적지인 헌팅턴 비치를 찾아갔다. 과연 이 곳은 소문대로 핫한 곳이었다.

이외에도 나 홀로 북유럽여행을 떠났을 때,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국립도서관을 눈앞에 두고도 찾지 못해 지도를 켜서 '여기가 맞나?'하고 긴가민가 했던 적도 있었고,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목적지였던 에스플라나디 공원을 눈앞에 두고도 못 찾아 반대방향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했었다. 지독한 방향치여서 길을 잃고 왔다 갔다 하기 일쑤였지만 모험심이라는 것도 생겼고, 그 과정에서 길을 제대로 찾았다면 못 만났을 새로운 골목길을 만나는 일도 즐거웠었다.

헌팅턴 비치를 제대로 찾아갔다면, 아마 뉴포트비치를 일부러 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극심한 방향치였기에 한 군데 더 여행할 수 있었던 건 좋은 일이 아닐까.

비록 길치에다가 방향치라 때로는 여행이 고되고 힘들지만, 그래도 나는 여행이 좋다. 언제쯤 다시 자유롭게 짐을 싸고 비행기를 타고 지도를 보고 길을 잃고 방향을 잃는 날이 올까. 하루빨리 그런 날이 다시 오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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