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수역에서 가양역까지 안양천 코스를 걷다
퇴사를 하고 약 한 달 정도 북유럽여행을 다녀오니 여행을 갔었을 때는 좋았었지만, 돌아오고 나서 현실에 부딪혔을 때 갑갑했다. '이제 무얼 먹고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불투명한 미래가 눈앞을 가렸다. 먹고살려면 돈은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하고 싶은 분야에 도전해보고자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았다. 28살 여자 앞에서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현실 앞에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전에 일했던 경력을 살려 관련된 직종에 이력서를 넣자마자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을 봤지만, 최종 합격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렇게 답답해하던 와중에 옆에서 엄마가 "괜찮아, 다 잘될 거야"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엄마의 친구분이 둘레길 걷는 걸 좋아한다고 하셨었다. 엄마는 친구분과 이야기하던 와중에 서울에 둘레길이 있다고들으셨다고 했다. 너와 함께 걷고 싶다고 이야기 한 엄마. 걷는 걸 좋아하던 우리 모녀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마침 시간이 남았던 나는 엄마와 함께 서울의 둘레길 코스를 걷기로 이야기했다. 서울 둘레길 코스에는 8개의 코스가 있었다. 어떤 길을 걸으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나이가 좀 있으신 엄마의 컨디션을 고려하여 초급 코스인 안양천 코스, 6코스를 걸어보기로 했다.
걷기 전 서울시청에서 스탬프 찍는 종이와 지도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그 종이와 지도를 챙겼다. 물론 엄마 꺼까지 2개 챙겨서 걷기 준비를 완료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6코스가 석수역부터 가양역까지 코스라고 되어있지만, 가양역에서부터 시작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천에서 출발하여 가양역까지는 대중교통으로 이동을 했다.
드디어 도착한 가양역. 가양역 앞에서 스탬프를 찍고, 마음을 다잡고, 안양천 코스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엄마와 평소의 대화를 많이 했었지만, 걸으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됐었다.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 남자 친구가 있던 나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서슴없이 했었다. 발바닥이 아팠지만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걸으니 힘든 줄도 모르고 걸었다. 약 18킬로미터의 거리를 엄마와 거침없이 걸었다. 엄마가 피곤하진 않으실까, 힘들진 않으실까 걱정이 됐지만, 엄마는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원래 걷는 걸 좋아해서 그런가. 하나도 힘들지 않아, 그리고 중요한 건 옆에 네가 있잖아."
덩달아 나도 엄마와 이런 뜻깊은 시간을 보내게 되어 흐뭇했었다. 소중한 사람과 뜻깊은 시간을 보냈던 그날이 몸은 힘들었을지라도 좋았다. 비록 우리 모녀는 8개 코스 중 아직 하나밖에 완주하지 못했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요즘 전 세계에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사그라들면 다시 시간 내어 엄마와 나머지 코스들을 걸어볼 참이다. 서울의 둘레길 코스를 다 정복하고 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인천의 둘레길 코스도 같이 걸어보는 거야. 물론 체력관리는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