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없이 갑자기 뭔지도 모르고 했던 적도 있었고, 이런 게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 있게 했던 적도 있었다. 그건 바로 공항 노숙.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항 노숙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계획하고 하는 것이든 어쩔 수 없이 피치 못할 사연이 있어서 하는 것이든 어찌 됐든 힘들고, 사서 고생이라는 것. 그래도 한 번쯤은 해본다면 추억이 되고 이렇게 얘깃거리가 생기는 것이니까.
#1. 이런 거지 같은 상황
친구와 미국 동부 여행이 끝나고 어바인에 있는 이모집에 가던 길에 뉴욕발 출발 비행기가 지연되더니 아니나 다를까 애틀랜타에서 어바인으로 가는 다음 비행기를 놓쳤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경유할 때 시간 텀을 너무 짧게 줬었다고 이모가 나무랐다. 비행기가 바로바로 뜰 거로만 생각했던 나는 비상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무사했으니 된 거 아닌가. 내가 탈 수 있던 비행기는 그날 없었고, 다음날 아침 첫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이런 상황을 생각 못하고 동부 여행하면서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다 썼던 나는 호텔 갈 돈도 없었다. 선택권이 없던 나는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첫 공항 노숙을 하게 되었다. 비행기를 놓치고 기내용 캐리어를 질질 끌고 다니면서 면세점을 구경 다녔다. 면세 점원이 이제 곧 사람들이 다 없어질 거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설마 공항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없어질까 하고 반신반의했었다.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그런데 돈은 없었다. 이렇게 거지 같은 상황이 나에게 일어날 수가. 마침 딱 생각났던 스타**카드에 충전되어 있는 금액이 있었다. 다행히 샐러드 하나 사 먹을 금액이 들어있었고, 배부르진 않았지만 요기를 할 수 있던 것에 감사했다.
정말 그 면세 점원의 말대로 거짓말처럼 그 많던 공항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다 없어졌다. 당황스러웠다. 잠시 후 공항에 불이 꺼졌고, 어두워지더니 순식간에 공항 내부가 삭막해지고 무서워졌다. 혼자 덩그러니 남아 갇혀있는 기분이었다. 가만히 앉아있다가 이렇게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공항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오가던 청소부 아주머니와도 대화를 했고, 관리인 아저씨를 만나 인사도 나누고 소소한 대화도 나눴다. 혼자 공항을 배회하다가 탑승구 앞에 앉아 쪽잠이 들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지나가던 청소부 아주머니겠지?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아침에 깨어나 보니 담요가 덮어져 있었다. 순조롭게 첫 비행기를 탔고 어바인에 도착하여 이모도 만났다. 이모한테 많이 혼났었지만 내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2.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
때는 회사를 퇴사하고 한 달 정도 북유럽 4개국 일주를 계획하고 있었을 때였다. 2년 정도 회사를 다니면서 모아 놓았던 돈으로 여행을 하려 했지만, 녹록지 않았고 저예산 여행을 계획하다 보니 비행기 값도 무시 못했다. 여행을 계획하고 비행기 티켓을 사기 위해 검색을 했다. 저렴하면서도 안전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그러나 그런 비행기 티켓은 눈 비비며 찾아봐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러시아 항공이라는 항공사의 비행기 티켓의 가격이 눈에 띄었다. 찾아보니 우리에게 익숙한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같은 스카이팀의 항공사란다. 북유럽의 나라는 대부분 직항이 없어 경유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러시아 항공사의 그 비행기 티켓은 저렴한 가격에 코드셰어(공동운항) 제도로 인해 러시아 모스크바까지는 익숙한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었다. 다만 17시간 동안 기다렸다가 러시아 항공 비행기를 타고 덴마크를 가는 일정이 걸렸다. 그러나 그런 게 다 뭐가 문제겠느냐,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한걸. 그래서 바로 결제를 했다. 그런데 여행을 출발하기 며칠 전 알게 되었다. 러시아 항공사가 수하물 분실로 위험한 항공사라는 걸. 앞뒤 생각지 않고 가격만 생각하다가 무턱대고 결제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출발일은 점점 다가왔고, 나는 어느새 비행기에 올라탔다. 행복한 여행을 위해서 수하물 분실이 안되기를 바랐지만, 분실이 되더라도 내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해서 경유를 하기 위해 입국심사를 받을 때 내 수하물이 안전한 지 물어봤지만 참 불친절했다. 하긴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들도 알 길이 없었겠지. 수하물이 안전한지는 덴마크에 도착해서 내 운에 맡길 수밖에. 경유를 많이 하는 허브 공항으로 잘 알려져 있는 러시아의 모스크바 공항에는 경유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몇 년 전 뉴욕에서 애틀랜타로 경유해 비행기를 놓쳤을 때 나 홀로 공항에서 노숙했을 때와는 조금 다른 풍경이었다. 늦은 시간에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카페나 식당도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바깥 풍경이 보이는 통유리 창문 앞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제 17시간 동안 뭘 하지?'
공항 노숙을 해봤을 때 나름 괜찮았어서 17시간쯤은 거뜬히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서 자신 있게 비행기 티켓을 샀던 것이었는데 경험자였던 나는 그때보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세월이 흐른 만큼 체력도 무시 못했나 보다. 17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있는다는 것은 고역이었다. 그것도 가을에도 초겨울 날씨 같았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는. 나는 여권 같은 귀중품을 분실할 것 같은 불안감에 잠이 와도 잠을 떨쳐내곤 했었는데 내 옆에 있던 외국 여자는 침낭을 입고 참 잘도 잤었다. 왠지 모르게 고수와 하수의 느낌이 풍겼다. 마음가짐의 문제겠지. 졸다 깨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어느덧 오지 않을 것 같던 덴마크로 향하는 비행기 시간이 다가왔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긴 했지만 덴마크로 향하는 설렘에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었다. 아침을 간단히 케이크와 커피로 때우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살면서 일반적인 여행자에게는 흔치 않은 경험일 공항 노숙을 두 번이나 해봤다. 첫 번째 공항 노숙 같은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했어서 멋모르고 했었기에 무섭고 불안했더라도 신기함 같은 게 있었다. 알고 하면 더 무섭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두 번째 공항 노숙 같은 경우에는 공항 노숙을 했던 경험을 토대로 할 만하겠지라고 생각하여 도전했었는데 참 오만했었다. 첫 번째 했을 때와 다르게 불편한 잠자리에 몸이 쑤시기도 했고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했을까 싶기도 했다. 그때 이후론 공항 노숙을 한적은 없다. 젊었을 때 해봤던 경험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