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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Jul 27. 2019

엄마에겐 독심술이 있나 봐

 여느 때처럼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있었다. 입맛이 없었다. 침대에 벌러덩 누워 흰 천장만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귀찮아, 피곤해....."


중얼거리며 기지개를 켜다가 내 앙상한 팔목이 눈에 들어왔다. 괜히 밥을 먹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꾸물꾸물 올라왔다. 눈에 띄게 약해져 가는 이 놈의 몸뚱이.


기어가듯 침대를 겨우 빠져나와 부엌으로 향했다. 쌀을 씻어서 밥을 안치고, 냉장고 문을 여니 주말에 쫄면을 해 먹고 남은 채소들이 보였다. 그래, 오늘 저녁은 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계란을 부치고는 또다시 방으로 터덜터덜 들어가 누운 뒤 눈을 감았다,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밥이 거의 다 돼갈 때쯤에야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면기에 밥을 푸고 당근, 양배추, 새싹, 콩나물, 계란 등을 가지런히 올리고는 참기름과 초고추장을 한 바퀴씩 돌렸다.


'아, 오늘도 겨우 한 끼 때우기 성공이구나!'


생각하며 숟가락을 드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몇 번 울리다 말고 빠르게 끊기는 전화, 바로 엄마였다. 일주일간 전화를 못 드렸더니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크흠, 목소리를 몇 번 가다듬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어~ 우리 딸!!! 밥은 잘 챙겨 먹었어? 밥 먹을 때마다 딸 생각나서..."
보고 싶어서 전화하셨다는 엄마에게, 밝은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나도 엄마 너무너무 보고 싶지! 저번 주에 바빠서 내가 연락을 못 드렸~ 하하하 일이 좀 바빠서 그렇지,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지금 밥도 맛있는 걸로 차려먹으려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엄마는 얼른 저녁 먹으라며 급히 전화를 끊으셨다.
 
 '마 보러 언제 가지.....' 생각하며 비빔밥을 꾸역꾸역 씹어 삼키고 있는데 지이잉, 엄마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엄마 딸! 항상 보고 싶고 사랑해.
더운데 무리하지 말고, 저녁에 신랑하고 산책하면서 힘든 거 서로 격려하고 나누면 맘이 가벼워질 거야.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가면 힘들어져... 자기 챙김이 필요해. 엄마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어깨를 내주고 품어줄 테니, 엄마의 둥지가 필요할 때는 달려와.
엄마나 딸이나 성격상 맘 속에 가득한데, 가끔 한 번씩 풀어놓자. 가끔씩 너를 응석받이로 키우지 않은 게 아쉬울 때도 있어... 너무 속이 들어서 딸이 버거울까 걱정도 하지...
가끔은 자신을 느슨하게 놓아버리는 연습이 필요해... 그럴 때 여행이든 취미든 좋아하는 거 하면서 즐겁게 살아라... 퇴근 후 행복한 쉼이 되기를 바란다."


메시지를 읽는 순간, 입 안에 있던 비빔밥을 채 삼키기도 전에 눈물이 속수무책으로 쏟아졌다.
 

나 힘들다는 얘기 안 했는데, 목소리도 밝게 했는데..... 엄마는 내가 힘들다는 걸 어찌 아신 거지? 근데 나 괜찮은데. 정말 괜찮은데. 잘 지내고 있는데. 아, 왜 이렇게 눈물이 끊임없이 쏟아질까.

 

갑작스러운 엄마의 메시지도, 눈에 흐르고 있는 눈물에 대해서도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비빔밥을 앞에 두고 한참을 아이처럼 엉엉 울던 나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나 많이 힘들었나 봐...'
 
 요즘의 나는 불안함에 많이 지쳐있었다. 내 앞날은 봄날에 빙글빙글 돌며 정처 없이 날아다니는 민들레 꽃씨처럼 어지럽고, 도무지 어디로 정착할지를 몰랐다.

 

 꽁꽁 숨겨두어 나조차도 찾기 어려웠던, 아니 일부러 꺼내려하지 않았던 나의 내면의 괴로움을 엄마는 보지도 않고 읽어내셨다. 나를 이리도 잘 아는 사람의 위로는, 아무런 질문 없이도 가장 묵직했다.

 

엄마 말대로,

가끔은 자신을 느슨하게 놓아보고 한다.

인생이란 원래 불안한 배를 타고 흘러가는 것이니, 기왕이면 배 아래에서 일렁이는 파도보다는 저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해보련다.



오늘의 일상,

엄마의 연락을 받고 문득.


커버 사진/ 창문을 통해 새어 들어오는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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