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처음에 달콩이 입양을 반대하시며 “나중에 아이 낳아서 쏟아야 할 애정과 노력을, 강아지한테 먼저 다 쏟아버리면 어떡하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실 나는 콧방귀를 뀌었더랬다. ‘어떻게 아이랑 강아지랑 같지...?’ 하지만 달콩이를 입양한 뒤 조금 지나서 깨닫게 되었다. 아기 강아지를 키우는 일은 마치 육아 시뮬레이션과 같다는 것.
처음 달콩이를 데리고 왔을 때 당황스러웠던 부분이 있었다. 달콩이에게 우리 둘을 칭할 때 뭐라고 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전에 수컷의 시츄를 키웠을 때의 나는 “꾸부야. ‘누나’가 밥 줄까?” 같은 식으로 나 자신을 칭했다. 그런데 달콩이에게는...? 언니, 오빠라고 해야 하나? 그건 좀 이상한데. 어머, 잠깐만. 그럼 우리 엄마, 아빠가 되는 건가?
보통 아이를 가진다면 “우리 이제 엄마, 아빠가 되겠네!”라고 인지한 뒤 10개월 뒤에서야 아이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엄마, 아빠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강아지 입양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요소들을 고려해보았지만, 미처 우리의 호칭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저 달콩이 이름 짓기에만 신경을 쏟았던 것이다.
퇴근하고 집에 온 홍군을 향해 꼬리가 떨어져라 반기는 달콩이를 보며 나는 얼떨떨하면서도 어색하게 말했다. “달콩아. ‘아빠’ 오니까 그렇게 좋아?” “달콩아. ‘엄마’랑 오늘 잘 놀았어?” 하하하하....!!!
결혼한 지 이제 막 2년이 넘은 신혼 사이에, 아주 시기적절하게 부양해야 할 생명이 생긴 것이니 우리 둘은 영락없는 엄마와 아빠가 맞았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라는 단어를 쓰는 것만으로도 간질간질하니 그저 어색하기만 했다. 강아지를 입양하기 전부터 그 책임감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우리였지만 달콩이를 데려온 뒤 실제 느낀 그것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부모가 느낄 법한 감정, 행복과 걱정이 섞인 그 감정을 우리는 조금이나마 알기 시작했다.
아기 달콩이
3개월령의 강아지는 한창 성장기인지라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달콩이는 조금씩 자라 있었다. 한 달에 2킬로씩 무거워졌으니 하루에 0.07킬로씩 자란 셈이다. 다리가 짧은 달콩이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다리는 길어지지 않고 몸만 길쭉해졌다. 마치 토이스토리에 등장하는, 허리가 스프링으로 연결된 강아지 ‘슬링키’처럼 말이다. 달콩이는 길거리 출신이기에 그 핏줄에 누가 섞여있는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이들이 달콩이의 체형이 웰시코기를 닮았다고 말했다. 짧둥한 다리로 걸을 때마다 씰룩씰룩 흔들리는 궁둥이를 보고 있자면 정말 웰시코기 같았다. 성장 속도 역시 웰시코기와 비슷하여 나는 달콩이의 핏줄 어딘가에 웰시코기가 있겠다고 믿게 되었다.
누굴 닮았든 간에 이렇게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 주는 달콩이에게 우린 고마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점점 한 팔로 안기도 버거울 정도로 무거워지는 달콩이가 좀 더 아가로 머물러주길 바라기도 했다. 부모들이 아이가 천천히 자랐으면 좋겠다고들 이야기하는 것도 왠지 이해가 갔다. 강아지는 보통 1살까지 큰다고 하는데 이를 사람의 나이로 환산해보면 무려 16살이라고 한다. 이처럼 강아지의 시간은 너무나도 빨라서, 내 품에 쏘옥 들어오던 작은 강아지 달콩이는 점점 솜이 빵빵한 쿠션처럼 포근해졌다.
달콩이가 4개월쯤 되었을 때부터는 유치가 하나씩 빠지기 시작했다. 이갈이가 시작된 것을 짐작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처음에는 어디가 어떻게 빠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홍군이 베란다 바닥에서 달콩이의 유치를 발견했다. 조그마한 요리사 모자처럼 생겨서는 속이 텅 비어있던 달콩이의 앞니. 그 하찮고도 소중한 치아를 받아 드는 순간 왠지 내 마음속에는 지잉- 심벌즈가 크게 울렸다. 생명을 키우며 느끼는 감동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영구치가 나면서 그 자리에 있던 유치가 밀려나 자연스럽게 빠지는 것. 생명이 가진 신비와 그 질서가 새삼 대단하다 느꼈다. 그 후로 나는 달콩이의 유치를 바닥 어딘가에서 발견할 때마다, 플라스틱 약통에 보관해두고는 시도 때도 없이 꺼내보게 되었다. 제대로 된 치아를 갖기 전에 임시로 붙어있었던 이 치아들이 여전히 신기하기만 하다.
이렇듯 달콩이의 성장 과정을 함께 한지 3개월. 달콩이는 여전히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에 큰 영향을 받고, 어떻게 훈육하냐에 따라 또 다른 강아지가 된다. 또 어떤 사료와 간식을 먹이냐에 따라 피부 상태가 달라지기도 한다. 달콩이의 모든 것이 우리 둘의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다 보면 걱정거리는 매일같이 업데이트되곤 한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달콩이의 애교를 보다 보면 ‘이 맛에 육아하지!’라는 생각, 괜스레 승리자가 된 것만 같은 만족감을 거둘 수가 없다. 그렇게 우리는 이미 달콩이가 주는 달콤한 행복에 푹 빠져버렸다. 더 이상 우리에게 엄마, 아빠라는 호칭은 어색하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