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10년 넘게 반려견을 키워봤으니 어느 정도 반려견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매일 똥, 오줌을 치워줘야 하고 그 힘든 목욕도 시켜주어야 하니 뒷바라지가 쉽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 보호자로서 달콩이를 키워보니 그런 부분들은 그저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다. 노동에 가까운 일이니 오히려 생각 없이 행하면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 시절 엄마가 반려견의 주 보호자로 지내며 힘들어하셨던 이유는 똥, 오줌, 목욕뿐만이 아닌 아주 복합적인 이유에서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만 강아지 없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요즘은 반려 동물과 함께 사는 가구가 정말이지 흔해졌다. 그래서인지 TV를 틀어도, 유튜브를 찾아보아도, 인터넷을 보다가도 반려견에 대한 정보를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정보가 많아도 너무 많다는 점이다.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정보들을 줏대 없이 받아들이다 보면 이도 저도 아닌 경우가 되기 십상이다. 다른 분야에서는 그런 정보들을 어느 정도 변별력 있게 솎아낼 줄 알았지만, 막상 강아지 육아에 있어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달콩이가 문제 행동을 보인다든지, 어디가 아프다든지 하는 일들은 꼭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그럴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하게 되는 행동은 바로 휴대폰 검색창을 두드리는 일이었다. 내 멋대로 했다가 혹여나 무엇이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 전문가의 의견이든 그렇지 않든 타인의 경험을 참고해야만 내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나는 툭하면 유튜브나 검색 포털에 들어가서 어떤 훈련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 검색했다. 흔히 2개월에서 4개월 사이가 사회화 시기라고들 하는데 달콩이를 입양했을 당시에는 이미 3개월이 지나있었다. 괜스레 마음이 급해진 나는 더더욱 열정적으로 정보 수집에 몰입했다. 하지만 육아엔 정해진 답이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달콩이의 성향을 무시한 채 급하게 받아들인 훈련 정보들은 달콩이에게서 보기 좋게 튕겨 나오기 일쑤였다. 게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보호자의 모습을 달콩이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듯했다.
천방지축 달콩
다른 글에서도 적은 바 있지만 나와 남편은 달콩이를 최대한 ‘개의 습성’에 맞추어 키우고자 했다. 나름 어떤 강아지로 키우자는 소신은 있었던 것이다. 온전히 자연에서 키울 환경은 못되지만, 뛰놀기 좋아하는 개를 집 안으로 들였으니 최대한 활동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했다. 티브이나 인터넷에서 보이는 정보들은 이러한 우리의 의견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해 주었다. 산책을 많이 하는 강아지, 또 피곤한 강아지가 행복한 강아지라고들 하니 우리는 달콩이가 심심해 보일 때면 안절부절못했다. 집에서는 계속 터그 놀이를 해주고, 장난감을 던지며 놀아주고, 3차 접종 이후로는 거의 매일 산책을 나갔다. 처음 산책을 나갔을 때 겁먹은 듯 눈동자를 굴리던 달콩이는 금세 적응하여 동네 골목길을 누비고 다녔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참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달콩아, 엄마는 널 위해서 매일 산책을 나가. 그리고 아빠는 아무리 피곤해도 널 위해 터그 놀이를 해주잖아. 달콩아, 행복하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한 달 정도를 보내고 나니 무언가 잘못되어있음을 느꼈다. 집안에서 달콩이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본인의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여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종종 우리에게 놀아달라며 보채고, 달려들고, 앙앙 물기까지 했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달콩이는 내가 5분만 외출을 해도 극도로 불안해하며 분리불안 증세를 보였다. 달콩이의 성격이 꽤 독립적이라고 여겼던 터라, 씨씨티비 속 하울링을 하는 달콩이의 모습을 보니 당혹감과 막막함이 밀려왔다.
홍 군은 퇴근하고 녹초가 되어서도 매일 장난감을 집어 들고는 달콩이를 놀아주었다. 이가 간지러워서 버둥버둥하는 달콩이를 그냥 쳐다만 보기는 힘들었던 탓이다. 그렇게 올라간 달콩이의 흥분도는 밤늦은 시간까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자꾸만 미친 듯이 날뛰는 달콩이를 보며 우리의 표정은 종종 일그러졌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안돼!”라는 명령어를 쓰게 되었고, 내가 바라본 달콩이의 얼굴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미안함과 답답함이 실타래처럼 엉켜 내 마음속에 쿡하고 박혀버렸다. 달콩이만 보면 자꾸만 울고 싶어 졌다. 문제가 많다는 사실은 깨달았지만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기 어려웠다. 우리는 달콩이에게 최선을 다한 죄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오냐오냐 키운 것도 아니었기에 그저 ‘달콩이가 워낙 에너지가 넘치는 강아지니까’, 혹은 ‘달콩이가 벌써 사춘기가 왔나 보다’, ‘반항을 하나보다’,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분리불안 훈련이나, 흥분도를 낮추는 ‘기다려’ 훈련 방법을 주구장창 찾아서 달콩이에게 시켰다. 달콩이는 식탐이 많고 꽤 똑똑한 강아지였기에 사료로 보상을 해주면 훈련은 곧 잘 따라왔다. 하지만 이갈이로 이가 불편해지자 달콩이는 사료를 잘 안 먹기 시작했고, 훈련용으로 쓸 무기까지 사라져 버리자 나는 크게 좌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