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정 Sep 29. 2020

팔베개

“퓨우...”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숨이 연기처럼 코에서 뿜어져 나와, 옆자리에 누워있던 그의 심장을 파고든다. 이제 막 잠 속에 빠져들려다 말고 반쯤 잠긴 목소리로 그는 내게 묻는다.
“팔베개해줄까?”

머뭇거리다가 데굴데굴 그의 옆으로 굴러간다. 그가 펼친 팔 위에 나의 목과 머리 아랫부분을, 그가 베고 있던 베개 위에 나의 머리를 살포시 올린다. 나의 왼쪽 어깨는 그의 겨드랑이 쪽에 맞닿고 손바닥은 그의 명치 부근 위로 안착한다. 그의 턱과 볼 사이 어디쯤에 나의 이마를 기대고 나면, 그는 나머지 한쪽 손으로 내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후아, 왠지 뻣뻣하게 굳어있던 내 머릿속이 흐물흐물해지며 침대에 녹아들 것만 같다.

 팔베개는 사실 그리 편하지 않다. 혹여나 그의 팔이 저릿해질까 나도 모르게 목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 내 몸에 뭉개진 나의 팔뚝은 호탐탐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할 궁리를 한다. 그의 어깨 위에서 잔뜩 눌려있는 나의 귀 뒤쪽에서는 자꾸만 맥박 뛰는 소리가 쿵쿵거리며 들려온다. 보통 배게에 머리를 댄 지 얼마 안 되어 잠에 빠져버리는 그도, 내게 팔베개를 해줄 때면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고 조심스 뒤척거린다.
 서로가 불편할까 봐 온 몸에 약간의 긴장을 하는 사이 그래도 몸은 노곤 노곤해진다. 그러다 그의 팔이 저도 모르게 꿈찔, 꿈찔거리기 시작할 때쯤이면 나는 그가 마련한 팔베개에 슬며시 작별을 고한다.


 나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니 그제야 중력 그대로 내 머리를 베개에 뉘일 수 있게 된다. 그의 가슴팍 위로 고이 펼쳐놓았던 다섯 손가락은 이제 수시로 그 모양새를 편하게 바꿀 수 있다. 가볍게 팔다리를 털어내고 이불을 입술까지 끌어덮고 나면, 온몸이 풀리며 사르 깊은 휴식에 젖어들게 된다.


 그럼에도 굳이 팔베개를 하는 이유는, 서로에게 서로의 온기를 전하기 위해서다. 그 온기는 팔베개를 뺀 뒤에도 꽤 오랫동안 남아있어서, 그전에 깊게 쉬던 번민의 한숨은 곧 안도의 한숨, 즉 편안한 호흡으로 변하게 된다.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Rollei prego30/ 홍군 촬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