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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Jan 25. 2021

운전을 할 때면

“빠앙-“
 느릿느릿 내 앞으로 차선을 변경하는 흰색 아반떼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속력을 한껏 줄였다가, 나도 모르게 핸들 중앙의 볼록한 부분을 꾹 눌러버렸다. 차선 변경까지야 참아보려 했건만 그 후에도 속력을 내지 않고 느으릿느으릿 가기에 갑갑함이 폭발한 것이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확인해보니 아스팔트 위에 떡하니 써있는 시속 30km. 이곳은 어린이 보호 구역이었다. 이럴 때면 얼굴이 후끈해지며 앞 차에 쫓아가서는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어 진다. 엎지른 물을 담지 못하듯 자동차의 클락션은 한 번 뿜어낸 이상 되찾을 수 없기에 더욱 후회스럽지만 소용이 없다. 아니, 그런데 이 길이 진정 어린이 보호 구역이었던가, 매일 퇴근길에 이 도로를 지나갔는데 왜 몰랐지? 떠올려보니 나 역시 이 길에서 나의 꽁무니를 따라오는 차들 때문에 투덜거린 적이 많았다. 뭐 그리 성질들이 급하냐고 구시렁대면서도 결국 그들에게 질세라 액셀을 밟곤 했던 것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내가 성급한 사람인 동시에 줏대가 없는 사람임을 종종 느낀다. 우회전을 할 때 초록 신호등이 켜진 횡단보도 앞에서 대기하고 있자면 마음이 급해진다. 동시에 사이드미러에 반사되는 내 뒤의 차들... 깜빡 깜빡 깜빡. 그들의 우회전 깜빡이가 나보고 빨리 가라며, 사람도 없는데 왜 안 가냐며 재촉하는 듯 보인다. 그 시간 동안 내 귀에 들려오는 내 차의 깜빡이 소리, 똑딱 똑딱 똑딱. 나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지곤 한다.


 퇴근길에 내비게이션을 켜면 집까지 가는 시간이 33분 남았다고 뜬다. 마음 편히 가면 될 것을 33분이 34분으로 늘어나는 순간 왠지 그 34분을 다시 33분으로 줄이고픈 욕망에 사로잡힌다. 33분이 32분으로 줄어들면 고작 1분 차이로 기분이 좋아진다. 정작 주차를 하고 집에 올라가면 내가 몇십몇분에 도착했는지는 관심도 없는데 말이다.

 운전을 할 때면 두껍게 선팅이 된 차 안에서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으며 알량한 우월감에 빠지기도 한다. (차에 대한 우월감은 아니다. 어렸을 때 친구들보다 롤러 브레이드 잘타면 드는 으쓱함 같은 종류의 것.)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핸들을 한 손으로만 잡고서는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그와 동시에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도 한다. 심취해서 부른 나의 노래가 블랙박스에 모두 녹음되었을 테니까. 운전 학원이라고 적혀있는 노란색 자동차가 앞에서 천천히 달리고 있으면 그 차를 추월하기도 한다. 한참 전에 깜빡이를 켜놓고도 차선 변경을 하지 못하는 노란 차를 보며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라고 말하기도 한다. 참나, 누가 보면 몇십 년 운전한 줄 알겠다. 면허를 딴 지 10년, 제대로 운전을 시작한 지는 5년밖에 되지 않았거늘.

 매일 운전대를 잡으며 오늘도 조심하자고, 또 조금 더 차분해지자고 다짐을 한다. 그러다 어느새 궁시렁궁시렁 혼잣말이 많아지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도로에는 수많은 차가 있지만 차 안에는 나 혼자이다. 이렇게 혼자 도로를 달리는 것은 오롯이 나만의 공간을 갖는 일이며 나의 민낯을 보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도 운전석에 몸을 싣고 조심스럽게 액셀을 밟는다. 오늘도 부디 무탈하길 바라면서, 그리고 나도 모르는 나 자신의 고약한 성질머리를 보지 않길 바라면서 말이다.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X-300으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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