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아픔과 미움에 관해서 나는 아주 짙고 깊은 어둠까지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틈새의 삶. 이를테면 어두운 틈으로 새어든 한 줄기 빛과 같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다. 모든 이야기가 절망에서 끝나버리지 않도록. 잠시나마 손바닥에 머무는 조금의 온기 같은 이야기를, 울더라도 씩씩하게 쓰고 싶다.” -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고수리
절망과 아픔과 미움에 관해서 아주 짙고 깊은 어둠까지도 이야기할 수 있지만, 모든 이야기가 절망에서 끝나버리지 않도록 씩씩하게 써나가는 그녀. 애정 하는 고수리 작가님 에세이의 프롤로그를 읽다가 문득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종종 어두운 글을 쓰고 공개하기도 했던 저를 돌아보게 되었달까요.
2년 전 처음 ‘온정’이라는 필명을 지은 뒤로 항상 모토처럼 써온 구절이 있습니다. “녹록지 않은 삶에서 희망을 찾아요.”가 바로 그 문장인데요. 글을 쓸 때마다 저는 곱씹곤 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끝에서는 결국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이죠. 사실 이런 사명감이 저의 글에 좋은 영향만 준 건 아니었습니다. 한 글쓰기 수업에 참여했을 때 <오늘도 희망의 불빛에 손을 뻗으며>라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수강생 중 한 분이 묻더군요. 이 글에 희망이 대체 어디 있냐고요. 다시 읽어본 저의 글은 95프로가 어둠이었고, 마지막 겨우 5프로 정도에서 빛이 보일랑 말랑했습니다. 꾸역꾸역 희망을 넣다 보니 부자연스러운 글이 탄생해버린 거였죠. 순간 부끄러워져 어딘가로 숨고 싶어 졌던, 저에게는 강렬한 기억입니다. 그때 이후로 어둠은 어둠대로 남길 줄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전히 저는 몇몇 글에서는 자연스럽게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몇몇 글에서는 억지로 희망을 집어넣다가 실패하곤 합니다. 그럴 때면 ‘글쓰기로는 아직 갈 길이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그러나 글쓰기 실력 이전에 더 먼저 돌아봐야 할 문제는 제가 삶을 마주하는 태도겠죠. 아직은 절망과 아픔과 미움에 대해 생각하는 게, 희망을 떠올리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따라서 어둠에 대해 쓰는 게 빛에 대해 쓰는 것보다 훨씬 쉽고요. 그래도 다행인 건 빛을 찾아가는 일이 좋다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데에 성공한 저의 글을 읽다 보면 스스로 흐뭇해집니다.
글쓰기든, 삶이든 지금껏 쌓아온 부분보다 앞으로 쌓아가야 할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부지런히 단련해야겠지요. 가끔 여과 없이 아픔을 뱉어내버리는 저의 글을 읽으신다면, “에이, 온정 작가 아직이네.”라고 생각해주세요. 상처에 대해 쓰기보단 상처 위에 바르는 연고에 대해 쓰는 작가가 될 수 있도록. 글로 희망을 전하고야 말겠다는 저의 희망을 담아서, 계속 성장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