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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Jan 10. 2022

엄마의 당근 늦바람

 김장하는 날 친정집에 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엄마가 다급하게 나를 부르시기에, 겉옷을 대충 벗어던진 채 잰걸음으로 부엌을 향했다. 양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김치 양념을 버무리던 엄마는 턱으로 테이블 위의 휴대폰을 가리키시며, 당근인지 뭔지를 처음 켜봤는데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이 있다고, 그런데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고새 팔려버리면 어쩌냐며 발을 동동 구르셨다.

 "아이, 참. 엄마. 나 손부터 씻어야 뭘 하든 말든 하지."

 "아차차. 얼른 씻구 와, 얼른!"

 손을 씻고 나온 나는 엄마의 분주한 마음도 몰라준 채 고무장갑부터 찾았다.

 "아니, 판매자한테 얼른 문의부터 해 줘."

 "김치는?"

 "엄마가 준비 다 해 놨지. 그러니까 너는 그것부터 해주면 돼."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의 모습이 사뭇 귀엽다고 생각했다. 웃으며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니 작자 미상의 꽃 그림 액자가 올라와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엄마 취향에 꼭 맞 그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오, 엄마. 이거 괜찮은데요?"

 "그치? 게다가 판화라잖아. 근데 가격이 안 나와 있어."

 엄마 말이 맞았다. 아무리 뒤져보아도 가격이 없는데, 그렇다고 '나눔' 표시도 없었다. 혹시 가격이 얼마냐고 채팅을 보냈는데 답장이 없었다. 엄마는 김장을 하는 내내 휴대폰이 울리기만 하면 "답장 왔니?"하고 물으셨다. 같이 배춧잎을 한 장씩 들어 올리며 김칫소를 넣으면서도 엄마는 자꾸 그림 이야기를 했다. 혹시 공짜로 내놓으신 건가? 근데 엄마는 공짜가 더 불편한데. 차라리 돈 받으셨으면 좋겠어. 그런데 아직도 답장이 없는 걸 보면(보낸 지 30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이 이야기를 하셨다) 이미 팔린 건가 봐.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답장이 안 올 수가 있어? 한 번만 더 물어봐봐. 정말 마음에 든다고, 사고 싶다고.

 종알종알 쉴 틈 없이 걱정을 늘어놓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당근에서는 물건이 팔리면 '판매 완료' 표시를 해두는 게 매너예요. 아무리 늦어도 답장은 하는 게 맞고. 이건 아직 안 팔린 걸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보셔요."

 당당하게 말씀드렸지만, 엄마와 몇 시간 동안 허리를 땅땅 두드려가며 김장을 하고 김치통에 담고 겉절이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수육을 맛보는 동안에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친정집을 떠나려는데 엄마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엄마, 만약 답장 오면 엄마가 채팅으로 잘 물어보고 약속 잡으시면 돼요. 모르는 거 생기면 연락 주세요."

 어린아이를 놀이터에 두고 오듯 마음에 조금 걸렸지만, 이젠 쿠팡도 카톡도 잘하시는 엄마가 당근이라고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냐 생각했다. 몇 시간 뒤에 엄마로부터 카톡이 왔다.

 "내일 3만 원에 사기로 했어. 문 앞에 둘 테니 찾아가고 송금하라고 하네? 신난다!"

 몇 주 뒤 친정집에 갔더니 거실 벽에 그 그림이 걸려 있었다. 엄마는 그림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며 꺄르륵 웃으셨다. 볕이 베란다를 꽉 채울 기세로 넘실대며 들어오면, 엄마가 애정을 담아 가꾸는 알록달록한 꽃들이 온기를 먼저 머금고, 그 볕이 베란다 유리창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오면, 차분한 보라색과 붉은색과 하늘색 꽃 그림이 그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햇빛 샤워를 받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엄마를 닮은 그림. 주인을 정말 잘 만났구나, 생각했다.


 그 뒤로 엄마는 당근 마켓에 재미를 붙였다. 몇 년 전 당근 마켓이 처음 유행할 때, 한 친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 오늘도 엄마가 부탁한 당근 거래 하러 나가."라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엄마도 허구한 날 당근 마켓만 들여보고 계신 거 아닌가 걱정도 조금 되었지만, 안 쓰는 물건들을 정리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었다. “엄마, 필요 없는 거 잘 팔아서 용돈 벌이라도 해보슈.” 나는 엄마에게 얘기했고, 엄마는 "안 그래도 요즘 팔 거 없나 집 구석구석 뒤져보고 다니는 중~"하고 장난스레 답하셨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엄마는 재미난 게임에 입문한 사람처럼 달뜬 목소리로 최근 있었던 당근 거래 이야기들을 해주시곤 했다. 그러다 하루는 "엄마 요즘 사진도 제법 잘 찍는다?"하고 자랑하시더니, 직접 올리신 당근마켓 게시물의 링크를 보내주셨다. '바닷'이라는 닉네임에, 그럴듯하게 진열해 둔 장식품 사진, 그리고 곰살궂은 문구까지.

 "오래되었지만 변하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가져가실 주인을 기다립니다."

 엄마가 올려놓은 다른 물건들을 훔쳐보니 용돈 벌이는커녕, 좋은 물건을 최대한 깨끗하게 닦아서 예쁘게 찍은 다음, 나눔을 하거나 저렴한 가격에 내놓고 계셨다. 엄마는 이야기했다. 물건을 팔아서 돈을 벌기 위함이라기보다는, 필요 없어진 물건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면 그 의미를 되찾게 되니 좋은 거라고. 내 주변을 정리하면서 가벼워지는 것도 좋고,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잘 써준다면 환경 문제에도 도움이 되는 거니까. 다소곳이 정리하여 내놓은 엄마의 살림 속에는 왠지 엄마가 담겨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은 엄마가 과일 담는 바구니를 5천 원에 올렸는데, 누군가 그걸 사러 오기로 했다고 하셨다.

 "5천 원을 뭐 하러 받겠어. 그냥 드릴까?" 엄마는 말씀하셨다.

 "엄마, 받으시고 나중에 엄마도 쿨거래 하면 돼. 엄마, 쿨거래가 뭔지 알아요?"

 "응, 알지.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온수 매트를 싸게 내놨는데, 누가 거기서 또 깎아줄 수 있냐길래 어렵다고 했더니 그래도 사겠다는 거야. 상대가 쿨하게 나오니까 막상 또 깎아주게 되더라구. 제 가격으로라도 사겠다는 건, 꼭 필요하다는 뜻인 거잖아."

 "그러니깐. 엄마, 그때 깎아준 5천 원을 여기서 또 받게 되는 거야. 잘하고 계신 거예요.”

 엄마는 당근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고 있다고 했다. 평소 관심 있고 익숙한 것들만 봐오곤 했는데, 남녀노소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남의 살림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하셨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거래를 한다는 게 남사스럽고 부끄럽다던 엄마의 게시글에는 “문고리에 걸어드려요~”라는 문장이 종종 눈에 띈다. 엄마는 그렇게 사생활을 지키며 거래할 수 있는 것도 당근 마켓의 큰 장점이라고 하셨다. 아빠가 중고 가게에서 무언가를 사 오실 때  언짢아하시던 엄마. 이제는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재미와 그 이점을 제대로 알게 되신 듯하다.


 “엄마 오늘도 당근하러 간다!”, “오늘은 만 원 벌었어!”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실 때면 정성 들여서 물건을 닦고, 양지바른 장소를 찾아 사진을 찍고, 너를 필요로 하는 새 주인을 만나서 그 몫을 다 해달라고, 다정한 주문을 거는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의 살림살이는 그렇게 조금씩 비워지고, 또 필요한 물건들로 다시 채워지는 일을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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