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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Feb 25. 2022

아이들의 잔혹한 유행어

 집에서 나와 카페로 향하는 그 짧은 1분 사이에, 내 옆을 지나던 한 가족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이어폰을 타고 잔잔하게 흐르는 연주곡의 중심부를, 날카롭게 뚫고 들어온 여학생의 성난 목소리.


 "아, 엄마. 나 자살 마려워."

 "그게 무슨 소리야?"

 "자살하고 싶다고. 나 ㅇㅇㅇ랑 같은 반 됐어. 개 빡쳐."

 "아유~ 난 또 뭐라고. 남자 앤데 뭐 어때?"

 "아니, 진짜 나 죽고 싶다니까?"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갈 길을 가는 엄마와 아이와 아빠. 깔깔 웃는 셋의 뒷모습이 화목해 보이기까지 해서 나는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부모 앞에서 자살이라는 표현을 그렇게 쉽게, 자랑스럽게, 큰 소리로 할 수 있는 아이를 뭐라고 해야 할까. 해맑다고 표현해야 하는 건가?

 저 나이 때의 나는 그런 생각을 아주 진지하게 했었는데. 매일 속으로 수 천 번은 새겼어서, 지금도 그 두 글자만 보면 뜨끔뜨끔하고 마음이 쓰라린데. 너는 그게 장난이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왜 아이들의 유행어는 이토록 잔혹할까? 왜 잔혹하면 할수록 더 그럴듯한 모양이 되는 걸까? 나도 학생 때 그런 류의 유행어들을 썼을 것이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나도 그런 아이였겠지만, 별 다를 거 없는 시절을 지난 아이였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이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고 싶지 않다. 왜 아이들의 학창 시절은 이런 식으로 흘러가야 하는 건지, 그것이 왜 주류의 축에 끼어들기 위한 지름길 같은 게 된 건지.

 

 왠지 힘이  빠지는 아침이다.





+

모르고 쓰는 아이들보다, 알면서도 쓰는 어른이야말로 진짜 못난 사람. 그런 사람 안되도록 평생 노력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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