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어요. 뭐, 사는 게 다 그렇죠.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고민해야만 해요. 게다가 저는 최근 몇 년간 '선택'의 대가를 너무 혹독하게 치렀거든요. 그래서 여러 보기들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너무 두렵고 힘들어요.
타고난 성격상, 또 성장 과정상 무언가를 선택할 때 늘 주변 눈치를 많이 봤어요. 그러다 타이밍을 놓쳐서 내가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할 때도 종종 있었고요. 그래서 선택의 결과가 별로 좋지 않을 때면, 분명 최종 선택은 내가 한 것임에도 속으로는 남 탓을 했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 피해 의식이 쌓이곤 했죠.
그런데 이번 고민을 하면서, 내가 분명히 능동적인 쪽으로 변화해가고 있구나,비로소 나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구나, 그런 걸 느꼈어요.선택의 결과를 예지하는 능력은 여전히 꽝이지만. 그래도 이걸 선택했을 때 어떤 장점이 있고, 어떤 단점이 있는지, 그런 부분들을 종이에 차분히 적어보면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했어요.
적어보니 장점은 꽤 또렷한데 단점은 대부분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나, 감정적인 부분들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단점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 해결책도 강구해보았어요. 정말 그 방법들로 해결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어쨌든 막연하게 걱정만 하는 것보다 훨씬 낫더라구요.이과 머리를 진작에 이런 식으로 써먹어볼걸. 아무래도'타고나기를 논리적이고 냉철한 이과생', 뭐 그런 것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번 선택은 남들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구하되, 최대한 휩쓸리지 않으려 했어요. 머리에 자꾸 떠오르는 이런 생각들을 처치해버리려고 노력했죠.
'내가 저거 할 거라고 이야기했었는데, 갑자기 이걸 선택했다고 사람들이 날 흉보면 어쩌지? 비웃으면 어쩌지? 기분 나빠하면 어쩌지?'
누군가가 뭐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그런 류의 생각을 제가 그렇-게 습관처럼 많이 하더라고요. 내 삶 남이 책임져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남을 주체로 삼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이런 면들이 조금씩이라도 바뀌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변화도 결국, '선택의 대가'를 많이 치렀기에 가능한 거겠죠. 역시 인생을 배우기 위한 강의료는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것 같아요. 직접 아파보아야, 그제야 제대로깨달을 수 있으니까요.
공황 치료 때문에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정신의학과에서, 저의 고민을 들은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해주셨어요.
"어떤 선택을 하든 괜찮아요.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회피하는 길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혹시 현재의 상황에서 도망가려 하는 건 아닌지, 여러 방면에서 잘 생각해보았어요. 도망이 아니라 오히려 트라우마에 맞서는'용기'라는 사실이 명백해졌을 때, 저는 결국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번 선택은 저를 또 어디로 데려갈까요? 글쎄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잡은 줄이지만 막상 시작하기도 전에 뚝 끊겨버릴지도 몰라요. 시작 직후에 후회할지도 모르겠죠. 중간쯤 갔을 때, 너무 힘들다면서 제가 먼저 끊어버리고 싶을 수도 있겠어요.
하여튼 중요한 건, 이번 선택도 최선을 다해서 했다는 거죠. 어디로 가든지 그 흐름에 가만히 몸을 맡겨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