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정 Mar 11. 2022

선택에 대하여

#방황 #삼십춘기 #현재진행형

 요즘 이래저래 고민이 많았어요. 뭐, 사는 게 다 그렇죠.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고민해야만 해요. 게다가 저는 최근 몇 년간 '선택'의 대가를 너무 혹독하게 치렀거든요. 그래서 여러 보기들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너무 두렵고 힘들어요.


 타고난 성격상, 또 성장 과정상 무언가를 선택할 때 늘 주변 눈치를 많이 봤어요. 그러다 타이밍을 놓쳐서 내가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할 때도 종종 있었고요. 그래서 선택의 결과가 별로 좋지 않을 때면,  분명 최종 선택은 내가 한 것임에도 속으로는 남 탓을 했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 피해 의식이 쌓이곤 했죠.


 그런데 이번 고민을 하면서, 내가 분명히 능동적인 으로 변화해가고 있구나, 비로소 나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구나, 그런 걸 느꼈어요. 선택의 결과예지하는 능력은 여전히 꽝이지만. 그래도 이걸 선택했을 때 어떤 장점이 있고, 어떤 단점이 있는지, 그런 부분들을 종이에 차분히 적어보면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했어요.

 적어보니 장점은 꽤 또렷한데 단점은 대부분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나, 감정적인 부분들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단점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 해결책도 강구해보았어요. 정말 그 방법들로 해결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어쨌든 막연하게 걱정만 하는 것보다 훨씬 낫더라구요. 이과 머리를 진작에 이런 식으로 써먹어볼걸. 아무래도 '타고나기를 논리적이고 냉철한 이과생', 뭐 그런 것과는 확실히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번 선택은 남들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구하되, 최대한 휩쓸리지 않으려 했어요. 머리에 자꾸 떠오르는 이런 생각들을 처치해버리려고 노력했죠.

 '내가 저거 할 거라고 이야기었는데, 갑자기 이걸 선택했다고 사람들이 날 흉보면 어쩌지? 비웃으면 어쩌지? 기분 나빠하면 어쩌지?'

 누군가가 뭐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그런 류의 생각을 제가 그렇-게 습관처럼 많이 하더라고요. 내 삶 남이 책임져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남을 주체로 삼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이런 면들이 조금씩이라도 바뀌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변화도 결국, '선택의 대가'를 많이 치렀기에 가능한 거죠. 역시 인생을 배우기 위한 강의료는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것 같아요. 직접 아파보아야, 그제야 제대 깨달을 수 있으니까요.



 공황 치료 때문에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정신의학과에서, 저의 고민을 들은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해주셨어요.


"어떤 선택을 하든 괜찮아요.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회피하는 길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혹시 현재의 상황에서 도망가려 하는 건 아닌지, 여러 방면에서 잘 생각해보았어요. 도망이 아니라 오히려 트라우마에 맞서는 '용기'라는 사실이 명백해졌을 때, 저는 결국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번 선택은 저를 또 어디로 데려갈까요? 글쎄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잡은 줄이지만 막상 시작하기도 전에 끊겨버릴지도 몰라요. 시작 직후에 후회할지도 모르겠죠. 중간쯤 갔을 때, 너무 힘들다면서 제가 먼저 끊어버리고 싶을 수도 있겠어요.

하여튼 중요한 건, 이번 선택도 최선을 다해서 했다는 거죠. 어디로 가든지 그 흐름에 가만히 몸을 맡겨보렵니다.


어디로든 가겠죠.

이제는 예전보다 좀 더, 아주 조금 더 의연해졌으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들의 잔혹한 유행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