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님의 긴 편지
책은 독자에게 건네는 거대한 ‘말’입니다. 그래서 작가의 문체와 말투, 개성, 하고자 하는 말 등이 아주 중요하죠. 더군다나 글을 쓴다는 건 방송처럼 직접 나와서 얼굴을 보거나 입술을 보며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오로지 글의 힘으로만 상대에게 말을 건네야 하는 어려운 작업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님의 말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런데 다른 작가님들의 말을 인용한 부분은 좀 갸우뚱합니다. 물론 작가님께서 인상적으로 느끼셨던 부분이셨을 테고, 그 말들이 작가님이 글을 쓰는데 중요한 원동력이 됐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 인용이 사용된 부분들을 보면 모두 꼭지의 거의 마지막에 배치되어 있어요.
글의 마지막은 글쓴이의 모든 의도가 마무리되는 부분입니다. 어쩌면 독자는 처음에 읽었던 부분은 모두 다 잊어버리고 마지막만 강렬하게 기억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그래서 글의 마지막은 작가의 말이 가장 강렬하게 박혀 있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그 부분이 다른 작가님의 말로 대체되어 있는 것이 많이 아쉽습니다.
(...)
작가님이 기존에 인용을 하신 부분은 대화로 치면 이런 겁니다.
작가님이 저에게,
“편집자님, 저희 남편이 그러는데 저 진짜 최선을 다했대요.”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런데 이와 비교해서,
“편집자님, 저 진짜 최선을 다했어요.”라고 직접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건 어떤가요?
더 명확하고 힘이 있지 않나요?
앞서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들은 말을 옮기는 것과는 그 힘이 다릅니다.
핵심적인 말을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서 하지 마세요. 작가님은 작가님의 말로도 충분히 잘 전달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이 책에서 작가님이 하려는 말들이 독자들에게 더 진정성 있고 힘 있게 다가갈 거고, 이 책이 더욱더 작가님 책 같을 거예요.
- 마누스 출판 L편집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