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나는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만나면 거침없이 밑줄을 긋는 편인데,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과연 나의 글에는 줄 그을 만한 구절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나의 글에는 소위 말하는 '한 방'이랄 게 없는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며의기소침해지기도, 다른 저자들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또 어떻게 하면 독자가 나의 글에 밑줄을 그을 수 있게 만들지 고민하기도 한다. 항상 그 고민의 끝에선 나만의 문체대로 묵묵하게 써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임팩트 있는 문장을 쓰려고 의식하다 보면 인위적인 문장을 만들어낼지도 모를 일. 위험한 욕심이다. 오히려 나의 강점은 호흡이 긴 글, 진솔한 글이니 멋스러운 글을 못쓴다는 이유로 너무 기죽지 말자며 자신을 달래곤 한다.
그런데 3교가 끝난 뒤 출판사 대표님께서 인스타그램에 <방황의 조각들> 관련 글을 올리시며, "요즘 교정지를 보면서 좋은 부분엔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있는데, 줄이 그어진 곳이 너무 많네요."라고 써주셨다. 아, 그거 내가 간절히 바라오던 건데. 속마음을 들킨 사람처럼 뜨끔함과 뿌듯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출처: 마누스 출판 인스타그램
대표님께서 올리신 글을 보며 더욱 뜨끔(?)했던 이유는, 사실 3교를 보는 동안 나 역시 몇 가지 구절에 형광펜을 그었기 때문이었다. 책의 양식에 맞추어 나온 3교를 보니 나의 글이 정말 '책 속의 글'처럼 느껴졌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2교를 볼 때 까지는 원고를 아무리 읽어도 그저 내가 쓴 글 그 자체였다. 원고를 수십 번은 읽고 고치며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졌으니까. 그러나 3교를 보는 내내 교정을 본다는 느낌보다는 누군가의 책을 읽는 한 명의 독자가 된 듯한 기분에 가까웠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내 글에는 밑줄 그을 곳이 없다'며 속상해하던 내가 나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있는 상황이 멋쩍었다. 내 글에 낯을 가리게 된 것만 같아 괜히 어색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 안에서 용기가 자라났다. 지금까지 해오던 고민들이 한결 풀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한눈에 띌 만한, 독자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박힐 문장을 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솔직히 그럴 자신이 없다. 하지만 진심을 담아 쓴다면 독자가 나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안에서 공감을 느끼는 순간 밑줄은 자연스레 그어지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글 쓰고 책 쓰면서 괜한 욕심은 버리려고 노력해야겠다.
2.
나는 왜 굳이 '책'을 내고자 하는가. <방황의 조각들> 책 작업을 하며 종종 생각해보았다.
난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순수하게 쓰는 데에만 만족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책으로 펴내고자 노력하는 모습에는 인정 욕구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 이유도 분명 큰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이번에 책 작업을 하며 새삼 깨달았다. 나는 글 쓰는 걸 애정하는 만큼이나 누군가와 함께 책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도 애정한다는 것을. 글 쓰는 작업과 출간 작업은 같은 듯 다르다. 글쓰기를 하며 배워나가는 게 있는가 하면, 출간 작업을 하며 또 다른 것들을 배워나간다.
이렇게 글쓰기와 책 작업을 굳이 구분해둔다면,
'평생 글 쓰고 싶다'는 나의 꿈만큼, '평생 책 내고 싶다'는 꿈도 따로 가져보는 게 어떨까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