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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Apr 17. 2022

에세이 출간 준비- 표지와 제목

편집자님께 2교 파일을 보내드렸더니, 3교는 조판에 올려야 하므로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하셨다. 한글 파일로만 봐오던 나의 글이 이제 정말 책의 형태로 나오겠구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기간을 보냈다.


그런데 3교를 보내주시기로 했던 날짜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편집자님께 메일이 한통 왔다. 편집자님의 연락은 늘 반갑고 설레기에 부랴부랴 열어보았는데, 표지와 제목에 관련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한창 원고를 쓰고 다듬을 때, 그러니까 1교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이 에세이의 제목은 잠정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대표님과 편집자님께서 "이 제목 어떠신가요?"라고 처음 의견을 보내오셨을 때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통통 튀면서도, 멀리서 보아도 눈에 띌 만한, 정말 잘 팔릴만한 책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도대체 이 분들의 센스는 어디까지인 건가. 감탄하며 그 뒤로 계속 그 제목을 염두에 두고 책 작업을 했다. 대표님과 편집자님 역시 그 제목에 맞추어 표지를 구상하고 계셨다.


그런데 편집자님께서 보내온 메일 속에는 전혀 다른 표지 시안과 책 제목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목을 바꾼 이유에 대하여, 편집자 L님은 긴 편지로 설명해주셨다.



제목 변경에 대한 의견을 말씀드리려면

우선 작가님 글의 깊이에 대한 내용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작가님의 글은 단순한 감성 에세이가 아니라 긴 글로 이어지고

작가님만의 고유한 경험과 체험들이 들어가고

그 안에서 생각하는 것들, 깨달은 것들을 담은 글이라서

단문으로만 이어지는 단순한 감성 에세이와는 다른 깊이감이 있습니다.


또한 저는 작가님의 글을 수십 번 읽었고, 앞으로도 수십 번을 더 읽을 겁니다.

이미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쌓이는 감정이 있고, 그 깊이감도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좋았던 글이 더 좋게 느껴지고 깊이는 더 깊게 느껴지죠.

제가 수십 번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경험한 글의 깊이와 감동을,

어쩌면 서점에서 단 한 번 스쳐지나가면서, 인터넷에서 미리보기로 훑으면서,

짧은 시간 안에 판단을 하실 독자들에게 최대한 자세히 한 번에 전달해야 하는 것이 저희 출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2교 편집을 하면서 작가님께 ‘감정선’이라는 부분을 말씀드렸었죠.

책의 제목과 표지는 책의 얼굴이자 책의 실질적인 시작이기도 합니다.

독자의 ‘감정선’은 책의 표지부터 시작할 겁니다.  그런데 기존 제목이 통통 튀기도 하고 재기발랄한 제목이기는 합니다만,

작가님 글의 깊이와 분위기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


작가님의 글이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희망차면서도 문체가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데, 제목은 가볍고 깊이가 얕아 보인다는 것이었죠.

포스터만 보고 발랄한 하이틴 로맨스인 줄 알았는데 막상 극장에 가서 보니 진득한 감성이 묻어나는 드라마라면, 분명 관람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당황하게 될 겁니다.

(...)


그래서 저희는,

방황이라는 단어를 잘 나타내면서도 차갑지 않을 것,

제목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을 것,

‘온정’이라는 작가님의 이름과 어울릴 것,이라는 방향을 다시 잡고

제목과 표지 디자인 작업을 다시 시작해 볼까 합니다.


- 마누스 출판 L 편집자님의 편지 중


편집자님의 편지를 읽으며 감탄하는 동시에 감사한 마음이 밀려왔다.

원래의 제목은 좀 더 조미료 친 느낌, 광고의 문구 같은 느낌이었다면, 바뀐 제목의 후보들은 잔잔하지만 진정성에 중점을 맞춘 제목들이었다. 빨갛고 매콤한 순두부찌개와 슴슴하지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옛날 순두부의 차이 같았달까. 그리고 나의 원고는 분명 후자의 분위기에 더 어울렸다. (이 글에서 기존 제목을 밝히고 싶지만, 너무 좋은 아이디어였기에 비밀로 부친다. 마누스 출판에서 나중에라도 그 아이디어를 다른 책에 쓰신다면 좋을 것 같다.)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파는 건 중요한 일이다. 특히 책을 내기 위해 큰돈을 투자하는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눈에 띄는 제목과 표지를 앞세워 판매량을 늘린다면 출판사에게 금전적으로 이익이 되겠지만, 막상 그 책을 구입한 독자들은 본문을 읽다가 갸우뚱하게 될 수도 있다.


마누스 출판사가 책을 '파는 행위'보다는 얼마나 독자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지, 그리고 얼마나 진정성 있는 책을 펴내려 노력하는지 다시 한번 느꼈다.


내가 돈을 투자하는 출판사의 입장이었다면 과연 이렇게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에이, 본문이랑 느낌이 조금 어긋나더라도 눈에 띄는 제목으로 가자.'라고 묻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출판사의 결정이 사뭇 대단하다고 느꼈고, 이런 출판사와 함께 펴낸 나의 책은 진정성 하나만큼은 보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제목은, 본문의 소제목 중 하나인 <방황의 조각들>로 결정되었다. 눈에 확 띄는 제목은 아닐지 몰라도 본문을 가장 잘 담아낸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독자가 본문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제목의 깊이는 남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

<방황의 조각들>은 제목과 똑 닮은 표지 옷을 입고, 5월 중순 경 출간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다음에는 3교 기록으로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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