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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May 13. 2022

시부모님께 <방황의 조각들> 스포일러 하기

에세이 <방황의 조각들>

에세이 <방황의 조각들>의 출간을 준비하며, 미지의 독자들만큼 신경 쓰이는 게 바로 지인들이었다. 출간을 계약했을 때부터 책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부모님, 시부모님, 지인들이 마음에 걸렸더랬다.


내가 고생한 이야기를 읽으시며 너무 마음 아파하시면 어쩌지? 모르셨던 내용을 알게 되시곤 충격받으시면 어쩌지? 실패담이 가득한 책이라서 지인들이 읽으면 좀 창피할 것 같아, 같은 걱정을 나는 끊임없이 했다. 오히려 나를 모르시는 독자 분들 앞에서는 솔직해지는 게 덜 두려운데, 지인들 앞에서 나의 모든 걸 꺼내놓는 일은 더욱 부끄럽고 어렵게 느껴졌다.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출간 작업은 막바지에 이르렀고, 그 쯤 시댁에 가서 며칠간 지내게 되었다. 출간 전 마지막으로 시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평소의 나는 시부모님 앞에서 숨기는 게 별로 없다. 날 워낙 편하게 대해 주시는 덕에 시댁에 가면 츄리닝으로 갈아입은 채 집을 활보하기도 하고, 시부모님께 종종 고민 상담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 알고 지낸 세월이 5년 정도밖에 안된지라 나에 대해 모르시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음흉하게 속으로 작전을 짰다. 시부모님께서 눈치채지 못하게, 스리슬쩍 <방황의 조각들> 스포일러를 하자고.


일단, 그날 어머님과 아버님 앞에서 과음을 했다.(?)

원래도 나와 남편이 자고 간다고 하면 꼭 맥주 한 잔씩은 권하셨었는데, 그럴 때마다 최대한 천천히, 가볍게 마시려 노력했었다. 그런데 그날은 아버님께서 술을 따라주시기 무섭게 호로록 마셔버리고는 다시 받고, 다시 받고, 하다가 말씀드렸다.

"아버님, 제가 사실 술을 엄청 좋아해요. 예전에는 많이 마셨었는데, 요즘은 건강 때문에 자제하면서 지내고 있는 거예요."
뒤이어, "그런데 오늘은 어머님, 아버님이랑 함께 있으니 기분이 너무 좋아요. 그냥 실컷 마실래요!"라고 말씀드리고서는 신나게 맥주를 해치웠다. 책 스포일러를 빙자하여 사심을 채운 셈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얼굴이 금방 벌게지는 바람에 민망함이 밀려왔다.
"제가 좀 심했나요? 아무리 편해도 그렇지, 시부모님 앞에서 술을 이렇게... 하하하..."하고 말씀드렸더니 아버님께서, "아이고, 뭘 그러냐. 못 마신다고 깔짝깔짝하는 것보다 훨 낫지 뭐!"하시며 호탕하게 웃어주셨다. 어머님 역시 "더 마셔! 뭐 어때? 그렇게 편하게 있어주니까 우린 좋기만 하다야."라고 하셨다. 술고래라고 해도 예뻐해 주시는 시부모님이라니. 나는 참 복 받은 며느리다.


에세이 <방황의 조각들> 속에는 술을 좋아하는 나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쩌다 좋아하게 되었는지부터, 어쩌다 자제하게 되었는지까지. 취해있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웠던 시간들을 웃기면서도 짠한 느낌으로 풀어내었다. 내가 무얼 해도 예뻐해 주시는 시부모님이시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읽으시기에는 조금 당황스러우실 것 같았다. 웃자고 쓴 글이기도 한데 혹시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실까 봐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미리 예고를 해드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넌지시 다른 예고편들도 몇 가지 들려드렸다. 어머님께서 지인 이야기를 하시며 "걔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공황장애가 왔다잖니. 어쩌다 그 지경까지 갔을까."라고 말씀하시길래 나는 그 틈을 타 남편과 함께 합세하여 "생각보다 주변에 흔해요. 사실 저도 그랬었구요."라고 말씀드렸다.(좋아, 자연스러웠어!) 그 외에도 "제가 원래 성격이 예민해요."라든지, "제가 정신적으로 약한 부분이 많아서, 학창 시절에 많이 힘들었어요."같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해드렸다.

또 하루는 '다시마 찜닭'이라는 요리를 해서 맛 보여드렸다. <방황의 조각들>에는 다시마 찜닭이라는 요리를 나의 글쓰기와 비교한 글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맛을 알게 되셨기에 더욱더 생생하게  글을 받아들이실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님과 아버님께서는 내가 던진 이야기들이 예고편이었는지 모르고 계신다. 아마 책을 읽다가 술 이야기가 나오면 "이게 그 얘기였구나!" 하시고, 다시마 찜닭 이야기가 나오면 "어머, 이거 온정이가 우리한테 해줬던 요리잖아!"라고 하실 것이다.


시부모님께서 나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책을 읽게 되실 거라는 사실이 여전히 긴장되지만, 어떤 모습이든 사랑해주시고 보듬어주실 분들이란 걸 알기에, 출간 직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댁에 책을 보냈다. 누구보다 나의 글쓰기 생활을 응원해주시는, 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실 시부모님께서 부디 <방황의 조각들>을 즐겁게 읽어주시길. 미리 스포일러를 솔솔 뿌려드렸으니 너무 충격받으시거나, 마음 아파하시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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