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도깨비를 보았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도깨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자연스레 공유 배우를 떠올리겠죠? 맞습니다. 그 도깨비. 2016년에 방영되어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16부작의 드라마 <도깨비>를 6년이 지나서야 보았네요. 워낙 유명한 데다가 사람들이 하도 극찬을 해서 '나도 한 번 봐 볼까?' 하는 고민만 몇 년 동안 하다가 겨우 용기를 낸 거였어요.
드라마 보는데 웬 용기가 필요하느냐 물으신다면, 저는 드라마를 잘 못 봅니다. 지나치게 감성적인 사람이라 한국 드라마라면 주로 지니고 있는 자극적인 요소에 잘 놀아나기 때문이죠. 여기서 웃어라! 하면 마구 웃다가, 이쯤에서 한번 울어라! 하면 엉엉 울어대기 바빠요.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뭐 이런 것처럼요. 극작가 입장에서는 저 같은 시청자만 있다면 참 좋을 거예요. 하지만 막상 저 같은 시청자는 드라마를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일상생활에까지 지장이 가서 퍽 난감합니다. 드라마 한 편을 다 보고 나서도 극 중 누군가의 감정에 취해 다음날까지도, 또 그다음 날까지도 줄줄이 슬퍼지죠. 어디 그뿐일까요? 극 중 배경이 현실적이면 현실적인 대로, 또 비현실적이면 비현실적인 대로 나의 상황과 비교하며 종종 울적해지곤 합니다. 어렸을 때는 티비 속 예쁜 주인공과 그 옷차림을 부러워했다면, 지금은 고난과 역경이 찾아와도 마냥 씩씩하게 일어나는 주인공을 보며 나 자신을 반성하는 식이죠.
16시간 이상 분량의 도깨비를 몇 주에 걸쳐 나누어보면서도 매일매일 슬펐습니다. 다행히 도깨비는 자극적이진 않았지만, 슬플만한 요소가 너무나도 많이 녹아있는 드라마였어요. 운명의 장난을 묵직하게만 그리기 싫었는지 웃음 터지는 장면도 많았는데요. 그 덕에 많이 웃다가도 마음이 자꾸 저릿했던 이유는 종종 아름다운 그림이 연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아름다운 것을 볼 때면 슬퍼질까?'라는 문장이 자꾸만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움이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도깨비에서 “Beautiful life~ 난 너의 곁에 있을게~”라는 배경 음악이 깔리며 하늘에서 슬로우 모션으로 눈이 내릴 때면, 정말이지, 너무 아름답기에 눈물 나게 슬펐습니다. 그렇게 짠내 나는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를 보며 오랜만에 격한 감정들이 마음속에서 일렁였습니다.
드디어 도깨비 마지막 화의 엔딩씬을 보았을 때 저는 나지막이 한마디를 내뱉었습니다.
“휴. 힘들다.”
감동이다, 행복하다, 슬프다 등등 많은 감정이 있었지만 그 말이 가장 먼저 나왔어요. 온 마음으로 드라마를 보았기 때문이었겠죠. 도깨비를 모두 보고 난 뒤에도 2주 동안은 매일 같이 도깨비 OST를 들었습니다. 마침 그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서, OST를 들으며 눈길을 지나갈 때면 도깨비 감성에 제대로 젖을 수 있었죠. 몇 주가 지나서야 겨우 도깨비에서 빠져나왔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도 도깨비 OST를 들으면 마음이 괜히 먹먹해지곤 합니다.
이처럼 격하게 반응하는 감정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도깨비는 정말 잘 만들어진,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탄탄한 스토리를 쓸 수 있는 작가님이 부럽기도 했고요. 방영 후 세월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다들 도깨비, 도깨비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게다가 오랜만에 드라마를 보고 나니 '이래서 사람들이 드라마를 좋아하는구나.' 생각했어요. 양질의 드라마를 보며 얻는 재미와 감동은 분명 큰 것 같습니다.
드라마 <도깨비>를 보기까지 몇 년의 망설임이 필요했듯, 보는 걸 몇 년 간 미루고 있는 드라마가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드라마 <나의 아저씨>입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의 아저씨>를 인생작으로 꼽더라고요. 저 역시 이지은, 이선균 배우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우연히 보게 된 명대사들 역시 감명 깊었어요. 무엇보다 이지은 배우의 쓸쓸하면서도 사연이 담긴 듯한 그 눈빛에 강하게 끌렸습니다. '아, 이거 보고 싶다. 명작의 냄새가 나는데.' 했죠.
하지만 넷플릭스 앱 속에 있는 포스터를 클릭하기만 여러 번. 여전히 시작도 못하고 있습니다. 보고 나면 또 한참 동안 그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아서요.
얼마 전에는 마누스 출판사 대표님께서 인스타그램에 글을 하나 올리셨는데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ost인 'sondia - 어른'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저의 글이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대표님의 글을 보고서 그 곡을 처음 들어보았는데, 왜 그 곡과 저의 글을 연결 지으신 건 지 알 것 같았습니다.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
어떤 날 어떤 시간 어떤 곳에서
나의 작은 세상은 웃어줄까
쓸쓸하고 고단한 느낌이지만 맑은 음색 덕분인지 마냥 우울한 느낌은 아니었어요. 왠지 모르겠지만 지친 하루 끝에 위로받는 기분도 들었고요. 가사에 집중해서 듣다 보면 울컥하기도 하더라고요. 드라마를 보지도 않았는데, 드라마의 분위기나 온도가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 이 드라마. 정말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이런 곡이 저의 글과 어울린다는 사실이 왠지 영광(?)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대표님 덕에 'sondia - 어른'을 알게 된 뒤로는 매일 한 곡 반복으로 듣고 있습니다. 아마 조만간 견디지 못하고 <나의 아저씨>를 보기 시작할 것 같아요. 또 보는 내내 감정이 요동치고, 가슴이 미어지고, 아파하다가, 이내 위로받겠죠. 곧 <나의 아저씨> 후기를 쓰는 그날이 올까요?
출처: 도서출판 마누스 인스타그램 @manus_book
* 도서출판 마누스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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