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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Nov 08. 2022

내년 목표는 설거지와 청소(?)

철커덕. 퇴근 후 집에 와서 우리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난 온종일 이 순간만 기다린다. 퇴근을 위해 출근을 하고, 퇴근 생각하며 고단한 하루를 버텨낸다. 문을 열면 거실 구석에서 몸 돌돌 말고 쿨쿨 자던 달콩이가 후다닥 달려오겠지. 주둥이 털이 한쪽만 잔뜩 눌린 채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냐'고 타박하듯 깽깽거리며 나를 긁겠지. 달콩이의 못 말리는 뽀뽀 세례에 나는 정신을 못 차리겠지...


하지만 오늘은 집 문을 열자마자 코에 훅 꽂히는 냄새 때문에, 퇴근으로 들떴던 나의 마음이 팍 가라앉아버렸다. 쌓아둔 설거지와 제 때 버리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는 늘 이런 식으로 돌아온다. 이 지경이 되기 전까지 진작 좀 해둘걸. 대체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왜 그리 게을러터진 거야. 엄마가 설거지 쌓아두고 사는 거 아니랬는데.


밥하는 것도 잊고 옷 갈아입는 것도 잊은 채 설거지를 시작했다. 지 나 자신에게 화가 단단히 났더랬다. 수세미 세제 거품을 내 그릇에 붙은 오물들을 빡빡 힘주어 닦았다. 설거지를 하는 내내, "으이구, 인간아. 도대체 왜 이 꼴을 하고 사는 거야. 지겨워!" 나를 향해 격한 말들을 퍼부었다. 래 더러운(?) 성격이라면 더러운 걸 보면서 스트레스라도 받지 말든가. 집안일 미루는 데에는 선수인 주제에, 음식물 냄새, 쌓인 설거지, 굴러다니는 먼지 따위를 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화가 마구 치솟는다. 화가 나기 전에 미리미리 처리해두면 참 좋을 텐데.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나도  모르겠다.)


남편은 하루 세 끼를 모두 회사에서 먹고 집에서는 나만 밥을 먹는다. 하루에 나오는 설거지 양이 적으니 몇 끼니 동안 쌓아두었다가 한꺼번에 설거지한다. '몇 개 안 되니까 바로 하자'라고 생각하는 날은 솔직히 의 없다. 엄마도 깔끔이, 나의 절친들도 왕깔끔들이라 설거지 쌓아두고 사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데. 나는 설거지를 쌓아두는 나 자신을 이해긴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들과는 좀 다른 부류의 인간인 것 같다. 하지만  심히 게으르다는 걸 음식물 냄새로 확인할 지경까지 이를 때면, 의 게으름에 번씩 이렇게 몸서리를 치게 되는 것이다.


씨익씨익  분노의 설거지를 끝낸 뒤, 싱크대 거름망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탈탈 털었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통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완전히 비웠다. 다시 집으로 가져온 쓰레기통을 빡빡 설거지하며 마무리. 그제야 속이 시원해지며 화가 르르 풀렸다.


주방 정리를 끝낸 뒤 냉장고 문을 바라보니 2022년 신년 계획이 떡 하니 붙어있었다. 소설 몇 편 쓰기. 책 몇 권 읽기. 일주일에 운동 몇 번 이상 하기... 그 목록을 보는 순간 '와... 거창하다.'라고 생각했다. 돈 벌고 책 읽고 건강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사람답게 사는 게 먼저 아닐까. 여름도 아닌 쌀쌀한 가을날 온 집안에 음식물 냄새가 풀풀 풍길 때까지 집안일을 방치하며 사는 건, 확실히 어딘가 잘못된 것 같다.


마침 연말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년 목표는 결을 바꿔보는 게 어떨까 싶다. 설거지 바로하기. 달콩이 방석 제 때 빨기. 두 명의 인간과 한 마리의 강아지가 뿜어대는 털  청소하. 물 컵 자주 씻기. 일상에 약간의 부지런만 더하면 해결할 수 있는 것들. 내가 나 자신에게 분노하지 않게 최소한의 것들은 지키며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그 최소한의 기준이 애매모호해서, 자꾸 합리화해버리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어처구니없는 흐름을 타고 때이른 신년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런데 달력 보니 아직 2022년이 두 달이나 남았다. 남은 기간 동안만 조금 더 한심해져 볼까나. 저 바닥 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달콩이 털 뭉치를 모른 채하며 타자를 두드려본다.






필름카메라 Olympus PEN EE-3/ 달콩이와 청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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