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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Oct 18. 2019

글을 쓰는 이유

나를 위로하고, 또 감히 당신을 위로하고자.

 평소 가만히 일상을 지내다가도 갑자기 울컥할 때가 있다. 이 세상이 내가 살아가기엔 조금 버거운 곳이라는 생각이 종종 뒤따라온다. 우주 속에 먼지처럼 작은 존재인 내가, 그냥 그렇게 바람 타고 허공으로 날아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기분. 얼마 전 여행길에서 툭, 살짝만 건드려도 잎이 한껏 움츠러드는 '미모사'라는 식물을 보았다. 그 풀잎은 작은 일에도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를 쏙 닮았다. 이토록 여린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 험난한 세상을 버텨내는 것은 매 순간이 나에게 도전과도 같았다.


그랬기에 나는 언제나 작은 일에도 온 마음을 쏟아가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작은 일에도 무척이나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바닥 깊숙한 곳으로 추락한 만큼 크게 도약할 수 있었고 지금은 한껏 강해진 나 자신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사실,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워낙 약한 마음으로 태어난 사람이기에 고쳐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앞으로 살아갈 인생은 길고, 그 인생길을 걷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아주 많이 아프고 힘들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선천적 약점을 가장 많이 변화시킨 나의 후천적 강점은 바로 '의지'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내려는 의지. 그 의지는 절대 자연히 생긴 것은 아니다.


학창 시절의 나는 우울증을 달고 살았다. 그 당시에는 '왜 내가 계속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아무리 노력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살고픈 의지가 없어 극단적인 생각을 밥먹듯이 했던 그 시절은... 지금 떠올려보아도 마음이 아려온다. 하지만 나는 용케 스스로의 힘으로 우울증을 이겨냈고, 그 이후 아무리 힘든 일이 뒤따라와도 이 세상을 떠나가는 쪽으로는 생각이 닿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 시절 내 의지로 사라질뻔했던 나의 인생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지냈다. 다시는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나에겐 '살아갈 의지'라는 굳은살이 생겼다.


그 이후로 나는 정말 괜찮아졌을까? 단칼에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있다. 아무래도 성향은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극도로 우울했던 나의 과거가 발목을 잡는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힘든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우울의 고비는 종종 찾아온다. 다만 달라진 점은 '어떻게든 이겨내고 살아가야 해.'라는 의지가 따라온다는 점이다.


최근 직장에서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앞서 말했듯 미모사 못지않게 예민한 나는 결국 마음의 감기에 걸려버렸다. 공황장애가 찾아온 것이다. 처음에는 다시 찾아온 우울의 그늘이 두렵고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부모님의 조언에 따라 신경정신과를 찾아갔다. 다소 긴장하고 찾아간 그곳엔 다행히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그 날 상담이 끝난 뒤 선생님이 내게 물어본 것이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 무엇이 생각나세요?"


처음에는 대체 이런 모호한 질문이 어디 있나, 싶어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선생님이랑 집중해서 얘기하고 있었는데 무슨 다른 생각을 하겠어요? 아, 지금 이 공백 동안 떠오르는 것을 말씀드리면 되는 건가?'


"선생님, 저, 꼭 무사히 이겨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요. 이전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나는 말 그대로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을 바로 입으로 읊었고, 선생님은 꽃 같은 함박웃음으로 답하셨다. 말씀은 없으셨지만 그녀의 눈은 희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병원을 떠나며, 나는 내 입에서 나온 대답에 새삼 놀랐다. 무릇 마음의 감기가 심해진 상태에서는 힘들다, 괴롭다, 같은 문장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인지상정일 텐데 '이겨내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다니. 내 무의식에 자리 잡은 강한 의지는, 나 자신에게 무언가 울컥 올라오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나 정말 많이 성장했구나. 장하다, 정말로. 장하다.


이렇듯 언제나 외줄 타듯이 아슬아슬한 내 인생이지만 난 항상 꿋꿋하게 극복하는 중이고, 또 어떻게든 그 방식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그 방식은 그동안 필요에 따라 많이 바뀌어왔고(여행, 음악, 술 등등...) 그중 최고는 단연 '글'이었다. 이렇듯 나는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쓰다 보니 드는 생각은, 궁극적으로 나의 글이 '읽는 사람'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많이 아팠고, 그로 인해 많이 성장했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나의 성장통을 모두와 나누고 싶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나만 이런 게 아녔구나. 다들 이런 감정을 느끼고 살아가는구나.'를 느꼈으면 한다. 꼭, 위로받기를 소망한다.


내가 평생 글을 잘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처럼 삶을 아등바등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는 내 안에 무한하다. 그렇기에 나는 끊임없이, 꾸준히 글을 써보려 한다.


저 이렇게나 힘들어요, 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도 역시 너무 힘들지만, 저는 이렇게 한번 이겨내 볼 거예요. 함께 이겨내 보지 않으실래요?"

이것이 바로, 내가 그리려는 전반적인 그림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은 바로 글쓴이가 보이는 글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글쓴이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고, 솔직한 마음이 고스란히 보이는 글이 울림을 주곤 했다. 그런 느낌을 가진 소설이나 수필을 읽을 때면 그게 상상일지라도 읽는 내내 글쓴이가 내 마음속에 그려졌다.
- 김진 작가 <마흔, 나를 위해 펜을 들다> 중


아직은 내 글의 주제들이 조금 어수선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글도 썼다가 저런 글도 썼다가. 글감이 떠오르는 대로 쓴다. 하지만 김진 작가님의 글처럼, 나의 내면이 온전히 담긴 글들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이 글들이 나 자신이 되고 나 자신이 바로 이 글들이 되는 순간이 오길. 그러니까, 나의 글들이 바로 '온정 그 자체'가 되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오늘의 일상,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다가 문득.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MINOLTA X-300으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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