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힘들 때마다 타인에게 위로받기를 바라면서, 정작 타인을 위로하는 일에는 서툴다. 나는 나 자신이 주변 사람들의 감정에 잘 공감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막상 닥쳐보니 제대로 된 위로 한마디도 건넬 줄 모르는, 그야말로 바보였다.
내겐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같이 다닌 단짝 친구 M이 있다. 내가 그녀를 알고 지낸 세월만큼이나 그녀의 곁을 지켜온 그녀의 강아지 채니가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채니는 딱 보아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란 표가 나는, 예쁜 푸들이었다. 그 아이의 새하얀 털에는 항상 윤기가 흐르곤 했다.
외동딸이었던 M에게는 그 아이가 자매와도 다름이 없었다. 때로는 동생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자식처럼. 그렇게 그 둘은 17년을 함께했다. 그러니까, 그녀가 성장해온 모든 순간에 채니가 함께했다는 뜻이다. 채니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던 그 날. 하늘에서는 미친 듯이 장대비가 쏟아졌다. 그 후로 그녀와 채니만 떠올리면 울컥해서, 내 눈에도 계속해서 눈물이 고이곤 했다. 얼마나 힘들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난 그녀가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저 메시지로 힘내자, 밥 잘 챙겨 먹어라, 보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같은 시기, 나의 다른 친구 K는 '절친이 오빠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게 되었는데 도무지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내게 말했다. K는 출근도 못한 채 무너져있는 절친에게 그저 답장 없는 메시지만 보내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위로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냐며 격하게 공감했다. 상대방의 아픔을 진심으로 걱정하면서도, 그것을 '위로'라는 방식으로 건네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이었던가. 나 자신을 위로하는 법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고뇌하면서 소중한 사람을 위로할 줄 몰라 쩔쩔매는 나 자신이 조금 못나보였다.
이렇게 난감해하던 내게 M은 먼저 말을 꺼내 주었다. 채니와 함께했던 집에 혼자 있는 시간들이 너무 힘드니, 같이 바람이라도 쐬러 다녀오자고. 그 말을 듣고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녀에게 무언가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정말이지 고마웠다. 어찌 위로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못난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줘서. 무능한 친구로 남지 않게 해 주어서. 내가 무엇이라도 할 수 있게 해 주어서.
나는 그녀와 갈만한 곳을 생각해보았다. 음식조차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아 야위어가고 있을 그녀를 위해, 몸보신할 수 있는 장어 맛집을 찾았다. 세련된 것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유명한 카페도 찾았다. 쇼핑을 좋아하는 그녀를 위해, 아웃렛도 코스에 넣어두었다. 갈만한 곳들을 찾아 A4용지 위에 지도 형태로 그리고 꾸며 내고 나니,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나 오늘 진짜 오랜만에 웃는다야. 정말 고마워, 친구야."
그날 우리는 하루 종일 함께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채니의 마지막 이야기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옅게 번지는 그녀의 미소를 보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 후에도 서툰 위로를 어떻게든 이어 보고자 나는 또다시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번엔 소중한 사람을 위로하는 데 조금이나마 성공한 것 같다. 친구가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찜찜함은 따라왔다. 이제 앞으로는 어쩌지? 이미 닥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할 것까진 없겠지만, 앞으로 내 곁의 소중한 사람들을 위로해야 할 일들은 무수히 많을 텐데. 그때마다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내가 당신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다고, 그리고 누구보다 응원하고 있다고. 대체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평소부터 '타인을 위로하는 법'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일, 근사한 위로의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하는 그 무능함. 그 감정은 생각 그 이상으로 괴로웠다. 마음이 아픈 사람을 내 따듯한 진심으로 안아주는 법. 그 방식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해보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