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선 기록, 후 기억

by 온정

오래전부터,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 수밖에 없었다. 내가 듣고, 보고, 느낀 것들을. 또 앞으로 기억해야만 하는 것들을.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머리가 나빠서. 그러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기억력이 안 좋았기 때문에.

이게 정말 기억력의 문제인지 방향 감각의 문제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만. 유년시절 오른쪽, 왼쪽의 개념을 이제 막 배울 때 즈음이었다.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어느 쪽이 왼쪽이고, 또 어느 쪽이 오른쪽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또래의 친구들은 진즉에 구별이 가능했기에 난 그 사실이 너무나도 창피했다. 결국 나는 왼쪽, 오른쪽라고 적은 종이를 각 방향의 바지 주머니에 넣어놓고는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곤 했다.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 오른쪽 손등에 아주 작은 흉터가 있다는 것. 그 이후로 나는 그 흉터를 표식 삼아서 오른쪽을 구분하였다. 그저 눈동자를 굴리다가 슬쩍 확인하면 되었기에 더 이상 창피할 일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뒤 드디어 오른쪽과 왼쪽이 자연스럽게 구분되었을 때쯤에는, 나는 그 흉터가 사라졌다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했다.

내게 기록하는 행위가 생존의 본능처럼 된 것은 이렇게 아주 어린 시절부터였다. 나에게는 항상 형태가 있는 것. 남길 수 있는 것. 즉 ‘기록’이 필요했다. 궁금할 때 언제든 다시 확인할 수 있어야 머릿속에 제대로 새길 수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언제나,

선 기록, 후 기억.

이 공식이 존재했다.



학창 시절의 나는 선생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을 몽땅 받아 적곤 했다. 그 바람에 내 교과서에는 하얀색 부분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수업과 관련한 농담만 던지셔도 곧이곧대로 다 받아 적었으니, 말 다했다. 필요한 말만 질서 정연하게 써놓은 필기보다, 너저분하게 있는 말 없는 말 다 써놓은 필기가 나에게는 훨씬 도움이 많이 되었다. 뭔가 그 흐름이 읽힌달까. 덕분에 한 학기가 끝날 때쯤이면 내 교과서는 아주 너덜너덜해졌다. (그 교과서들은 길이길이 가보로 남겼어야 하는 건데. 왜 다 버렸는지 여전히 후회스럽다.)

성인이 되어서도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무슨 금붕어도 아니고. 뒤돌아서면 무엇이든 까먹어버리니 참으로 억울할 따름이었다. 이거 분명 어디서 들은 내용인데, 분명 내가 본 영화인데, 분명 내가 읽은 책인데! 아니, 왜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야....?
혹자는 '그만큼 감흥이 없었던 게 아닐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엄청난 감동을 받았는데. 보면서 막 벅차오르고 눈물을 흘리고 난리를 쳤는데. 정말이지 속 터지고 박 터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속이 터져봤자 내 손해였다. 내가 이렇게 태어난 것을 어찌할 도리가 있겠는가. 결국 나는 영화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난 뒤에도 리뷰의 처음 두 문장 정도만 읽으면 뒤의 내용까지 모두 떠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손으로 쓴 글이었으니까.

음악도 마찬가지의 맥락이었다. 음악이 없는 인생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내게 음악이란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한 때 매일매일 무한 반복해서 듣던 음악의 제목이 떠오르지 않을 때. 또는 원래 그 음악의 존재가 없었던 것처럼 아예 잊고 살다가, 햄버거집에서 햄버거를 왕, 베어 물던 중 오랜만에 그 음악이 흘러나오는 순간. 그럴 때면 너무나도 반갑다가도, 이내 나의 머리를 콩 쥐어박게 되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곡인데도 뮤지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단 말이야? 결국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서도 기록하게 되었다. 덕분에 나의 메모장에는 언제 썼는지도 알 수 없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빼곡하다.



이렇게 나는 '어쩔 수 없이' 기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극히 자발적인 자세로 기록한다. 손안에 들어오기 무섭게 스르륵 빠져나가버리던 '기억'이라는 모래에 '기록'이라는 수분을 뿌려줌으로써, 이제 내 기억들은 진흙처럼 탄탄하게 쌓여가고 있다. 그 덕에 삶이 더욱 충만해짐을 느낀다.

이전엔 '기록에 너무 의존해버리면서 기억력이 더욱 쇠퇴해버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도 종종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오히려 기억력이 좋아지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경험하는 과정에서 한번, 기록하는 과정에서 수 번,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수번을 다시 마주하니까.

글뿐만이 아니다. 나는 기록의 또 다른 일환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좀 더 생생하게 남기기 위해 영상 촬영에도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앞으로도 '기록하는 방식'을 찾기 위한 나의 노력은 계속될 예정이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듯, 한결 또렷한 나의 인생을 위해 말이다!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Rollei prego30, 남편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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