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항상 "될 놈은 된다."의 '될 놈'을 부러워하며 살았다. 또 인생이 술술 잘 풀리는 사람들을 선망하기도 했다. '난 아무리 해도 안돼....'라는 자격지심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찬물을 확, 끼얹어준 사람이 있다. 그 덕에 깨달았다. 아, 될 놈도 절대 거저 되는 것은 아니구나.
상대가 언니이기에 될 놈이라고 표현하기엔 조금 송구스럽다. 그러니 될 사람, 이라고 순화해본다. 어찌 됐든 그녀 역시 같은 이유로 나에겐 선망의 대상 중 하나였다. 뭘 해도 잘하는 사람, 뭘 해도 해내고 마는 사람.
스무 살 때 학교 선배로 처음 만난 그녀는 어딜 가나 눈에 띄었다. 작은 키에 새하얀 피부. 웃으면 손톱 달 모양으로 사라지는 눈과, 연지곤지 찍은 듯 발갛게 올라오는 볼. 슈팅스타 아이스크림처럼 통통 튀는 매력. 하지만 그와 동시에 카리스마도 보통은 아닌 사람.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당당한 목소리의 소유자. 그녀의 주변에는 사람이 끊이지를 않았다. 마치 깜찍한 슈퍼히어로 같은 존재였다.
이런저런 공통점이 많았던 우리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 그때는 학교의 선후배 사이, 딱 그 정도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우리가 본격적으로 진심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 것은 그녀가 졸업할 때 즈음부터였다.그녀의 겉모습만이 아닌, 이면에 대해 조금씩 알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녀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왔다. 가야금을 전공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준비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름 이름 있는 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하고는 이름 있는 제약 회사의 연구원으로 취직했다. 가야금을 포기해야만 했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그녀의 인생은 참 잘 풀리고 있었다. 그녀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게 아니고, 내 시점에서 보기에 그러했다는 것이다. 난 왠지 그녀를 종종 부러워했다.
그녀가 취직했을 당시 나는 보잘것없는 대학원 신입생이었다. 그런 나를 만날 때마다 그녀는 밥을 사주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곤 했다.
온정아, 나 강사 자격증 땄어! 온정아, 내가 열심히 연구한 제품이 출시됐어!!! 온정아, 나 주말마다 조향사 학원 다녀!
역시 언니는 대단해. 참 멋진 사람이야, 나는 언제나 생각했다. 이십 대 전체를 열등감이라는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하고 살던 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잘난 이 언니는 아무리 만나도 열등감이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를 만나고 나면 열등감이라는 어두운 그림자 대신, 자극이라는 밝은 빛이 날 따라왔다. 항상 어떤 방식으로 발전해나갈지를 열심히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언니처럼 살란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련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하지만 사실 이때까지도 나는 그녀를 깊이 알지는 못했던 것 같다.
히어로 같던 그녀에게도 사회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우린 만나기만 하면 그녀의 회사 생활과 나의 대학원 생활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내가 졸업을 하고 연구원으로 취직하자, 우리는 더더욱 격하게 서로를 공감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연구직이 정말이지 본인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연구직이 정말이지 내 몸에 맞지 않는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래도 처음에는 나보다 큰 기업에 다니는 그녀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지켜보면 볼수록 그녀가 안타까워졌다. 이렇게 활동적인 사람이 연구실에 처박혀서 연구만 한다고....? 그래서 난 그녀에게 쉽게 이야기하곤 했다. 버릇처럼 말이다.
"언니는 다른 일 해도 분명 잘할 텐데. 언니 배우고 있는 것도 많잖아요. 연구직 때려치우고 강사 같은 거 하면 어때요?"
진심이었다. 그녀는 뭐든 잘할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분명히 성공할 것 같았으니까. 그럴 때마다 그녀는 웃으며 대답하곤 했다.
"나도 당연히 그러고 싶지. 근데 여기가 돈을 많이 주잖아. 내가 돈의 노예라 못 그만두는 거지 뭐. 쓰고 싶은 건 쓰고 살아야 되니까!"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한 이유였다. 하긴. 멀쩡한 직장 놔두고 꿈이니, 하고 싶은 일이니, 그걸 이루고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어. 이게 현실이지, 나는 생각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더 자주 만났다. 그리고 술을 좋아하지 않는 그녀가, 술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가끔 함께 술을 마셔주기 시작했다. 그 덕에 그녀를 안 지 7년이 넘어서야 난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집이 항상 좀 어려웠어. 내가 돈을 꾸준히 벌지 않으면 안 돼. 알잖아, 나 대학생 때도 맨날 일했던 거."
그녀는 취한 목소리로 덤덤하게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사람의 색안경이 이렇게 무섭구나, 를 깨달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그녀는 대학 생활 내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변의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그마저도 그녀는 돈을 위해서가 아닌, 경험을 위해 혹은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것처럼 보였다. 유니폼을 입고 칵테일을 만드는 그녀가 그저 근사하다고만 생각해왔다. 앞서 '돈의 노예'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도, 난 그녀의 환경에 대해서는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그저 본인이 쓰고 싶을 때 자유롭게 쓰기 위해 돈을 버는 줄로만 알았다.
"사람들은 다들 내가 철없는 자유의 영혼인 줄로만 알아. 나도 그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나 역시 가까이 지내면서도 잘 몰랐다. 그녀 역시 주어진 환경에 맞춰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저 그 현실에 편안하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현실과는 별개로 언제나 꿈을 져버리지 않는다는 점. 그것이 그녀를 남다르게 만든 것이었다.
그녀는 회사에서 실적도 많이 냈다. 무슨 일이든 대충은 못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덕분에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건강은 점점 안 좋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회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놈의 회사는 그녀를 걱정하긴 커녕 그저 소모품 취급했다. 오전에 쓰러진 그녀는 오후에도 출근해서 일을 해야만 했다. 회의감은 극에 달해버렸고, 그녀는 결국 5년 동안 꾸역꾸역 버텨온 회사를 어렵게 나왔다.
퇴사 후 약 1년의 공백기가 있었다. 공백이라고 표현하기도 민망하다. 직장인보다도 바빠 보였으니까. 그녀는 네일아트 학원을 다닌 뒤 국가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댄스 관련 자격증과 방과 후 선생님 자격증도 땄다. 그녀는 그렇게 네일아트 미용사이자 방과 후 댄스 선생님이 될 준비를 마쳤다.
그 이후엔 놀라울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여러 학교에서 인기 강사가 되었고, 개인 연습실도 차렸고, 또 유튜브도 시작했다. 몸이 열 개여도 부족할 정도로 바빴지만 그녀는 진정 행복해 보였다. 나는 그 과정들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연습실을 열었을 때는 청소를 도와주었고, 유튜브 촬영을 도와주기도 했다. 그리고 눈에 띄게 발전해나가는 그녀를 보며 나는 또 습관처럼 얘기했다. 역시, 언니는 뭐든 잘해. 역시, 언니는 잘 풀리는 사람이지. 역시, 언니는....
그렇게 여느 때와 같이 그녀를 부러워하다가 집에 돌아온 날이었다. 방안에 가만히 앉아 사색에 빠졌다. 언니는 어쩜 그렇게 하고 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많을까? 그녀의 상황을 나의 상황에 비추어보았다. 나도 그녀처럼 지금 하는 일을 던져버리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데. 나는 왜 그러질 못할까. 역시, 언니는 용기가 충만한 사람이야. 나는 그럴만한 용기가 없어.
사색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언니는 타고난 게 얼마나 많길래'로 시작된 생각이 '어떻게 하면 언니처럼 될 수 있을까'로 이어졌다. 그즈음, 난 무언가 깨달았다. 그 깨달음에머리가 띵해졌다.
내가 그녀에게 습관처럼 붙이던 '역시'라는 단어는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역시, 라는 말에는 당연함이 내포되어 있는데, 돌아보니 그녀의 모든 결실에 당연함이란 없었다.
그녀는 제약회사에서 쓰러질 지경까지 힘들게 일했으면서도, 주 5일씩 밤마다 방송댄스를 배우러 다녔다. 무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사람들만은 좋았던 회사에서 겨우 2년을 버틸 동안, 그녀는 인격모독을 밥먹듯이 하는 회사에서도 5년을 버텼다. 퇴사를 하기 전에도, 또 하고 난 뒤에도 그녀는 본인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고뇌했다. 세상에 춤을 잘 추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지만, 그녀처럼 '가르치는 일'까지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녀는 본인의 길을 찾아 헤엄쳐나갔다. 매 순간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역시’라는 수식어를 쓰는 것은 반칙이었다.
언젠가 그녀는 말했다. "사람들은 내가 하루아침에 잘됐다고들 생각하는데, 난 진정한 나의 길을 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왔어. 내가 큰돈을 주고 그 멀리까지 조향사 학원을 다녔던 이유가 뭐였는지 알아? 난 코가 예민하니까, 당연히 조향사가 내 적성에 잘 맞을 줄 알았지 뭐야. 학원을 다녀 보고 나서야 막상 나와 맞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어. 뭐든 직접 겪어봐야만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무조건 다 경험해보려고 해. 이것도 배워보고, 저것도 배워보고. 그렇게 하다 보니 하나씩은 걸려드는 거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지금은 잘되고 있지만 또 언제 꺾일지 몰라. 그러니까 난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울 거야."
그녀에 대한 편견이 너무 두꺼웠던 나머지, 그녀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까지 너무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녀는 절대 무모한 도전을 통해 우연히 성공한 것이 아님을.
내가 안전한 동굴 속에서 촛불만 켠 채 헤매는 동안, 그녀는 동굴 밖으로 나가 야생을 헤매고 다녔다. 나는 동굴 속에서만 고생했으며,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만 얻었다. 그녀는 넓은 바깥세상에서 숲 속도 걸어보고 길도 잃어보고 호숫가에도 가보았다. 그 덕에 나무에 핀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둘은 정말이지 특별한 관계가 되었다.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금 오래 걸렸지만 말이다.
힘든 속마음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그녀. 그만큼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밝고 철없는 모습만을 떠올린다. 그랬던 그녀가 나에게만은 다양한 고민들을 털어놓게 되었다. 그럴 때면 나는 위로도 해주고 가끔 잔소리도 하며 그녀를 달랜다. 언니, 혼자서 다 참다간 병 돼요. 언니, 너무 완벽해지려고 스트레스받지 마요. 언니, 그런 인간관계는 끊어버려요.
'가끔 보면 네가 언니 같다니깐.' 그녀는 대답하곤 한다.
내가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면, 그녀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나를 응원해준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동굴 속에만 있는 내가 답답할 법도 한데. 왜 그리 용기가 없냐며 다그칠 법도 한데. 절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쉽지 않은 현실에 공감해준다. 그리고 그저, 용기를 불어넣어줄 뿐이다.
혼자서만 끙끙 앓곤 하는 그녀의 고민들을 평생 덜어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평생 그녀에게 용기를 얻으며 살고 싶다.그녀가 앞으로 이뤄나갈 다양한 꿈들을 도울 수 있다면 참 좋겠다.그 과정에서 나도 천천히, 한 발자국씩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다.
이 특별한 관계가, 평생 서로에게 이로울 수 있기를.평생 서로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 관계가 될 수 있기를.
'서로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 관계' 시리즈가 세 번째 이야기로 끝이 났습니다. 사실, 끝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서로 자극이 되는 관계가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며. 언젠가는 네 번째 이야기가 나오길 바라보면서 이만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