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삐뚤빼뚤 쓴다.

by 온정

늦가을, 한 글쓰기 강연에 참석했던 날. 강연이 끝난 뒤 질문 시간이 있었다. 워낙 유익한 강의를 하신 터라 너도 나도 손을 들고 작가님에게 물음표를 던졌다. 그중에서 유독 한 여성분의 질문이 내 머릿속에 콕 박혔다.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내 글쓰기 방식에 대해 한번 더 돌아보게 되었다.

"저는 그동안 직장에서 수 없이 많은 보고서를 써왔거든요. 그때마다 정해진 형식에 따라 꼼꼼하게 기획해서 글을 쓰곤 했어요. 그런데 제 이야기를 쓸 때는 그야말로 생각 가는 대로, 자유롭게 쓰고 있거든요. 즐겁긴 하지만 ‘이래도 괜찮은 건가?’라는 의문이 자꾸 들어요. 이런 글도 기획해서 쓰는 게 좋을까요?”

작가님은 ‘글을 쓰는 목표가 무엇인지에 따라 다를 것 같다’고 답했다. 쓰는 행위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면, 그리고 오직 나를 위해서 쓰는 거라면 형식이 무슨 소용이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줬으면 좋겠어. 난 꼭 유명한 작가가 되고 말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기획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았다. 나는 전자인가, 후자인가. 분명 쓰는 행위 자체가 중요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맞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어주면 좋겠다, 라는 욕망도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난 여전히 글을 기획해서 써본 적이 없다. 몇 번 시도는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내키지가 않아 실패하고야 말았다.

내가 글 쓰는 방식을 여행에 빗대어보겠다. 경기도에서 출발하여 어딘가로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바다를 보기 위해 부산의 해운대로 갈 것이다.’라고 일단 목적지는 확실하게 정한다. 그리고는 내비게이션 없이 무작정 출발하는 것이다. 일단 어떻게든 남쪽으로, 그리고 동쪽으로 가면 되니까. 중간중간 ‘부산’이라는 표지판이나 화살표를 발견하고는 ‘잘 가고 있군.’ 정도만 확인한다. 가다 말고 갑자기 북쪽에 있는 강릉으로 가고 싶으면 간다. 서쪽에 있는 대전으로 가고 싶어도 간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고 싶어 지면 그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어찌저찌 한참을 걸려서 목적지인 해운대에 도착한다. 그 후엔 지도를 펼쳐놓고 내가 지나온 경로를 찬찬히 훑어본다. 그리고는 어떤 경로로 가야 더 잘 닦여진 길로 갈 수 있는지, 혹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더 많이 보며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지를 목표로 수십 번씩 돌아보며 수정한다. 그 과정에서 놓친 경유지가 있다면 추가하기도, 볼품없는 경유지가 있다면 제하기도 한다.

이때, 최단 거리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설사 티코를 탔다 해도 부드럽게 주우욱 지나갈 수 있는 경로라면, 빙빙 돌아서 가든 폴짝 뛰어서가든 아무렴 상관없다. 가는 길에 만난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강물이나 푸르른 잔디밭마냥 깔려있는 논이나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갈대밭은 매우 상관있다. 하지만 그 강물이나 논이나 갈대밭이 어느 지역에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부산의 해운대로 가는 여정이라는 사실만을 머릿속에 계속 상기시킬 뿐.

그러니까, 내가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정해놓고 나면 그저 생각이 향하는 대로 주우욱 쓴다. 그 후 수십 번을 읽어보고 고치고 읽어보고 고치고. 이 문단을 저기에다 놨다가 여기에다 놨다가, 하는 과정들을 거친다. 하지만 각 문단의 주제나 그 문단들을 나열하는 형식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여러 번 읽어보고 자연스럽게 읽히는지 그 느낌으로 판단하여 고친다.

가끔은 이렇게 무작정 글 쓰는 일이 조금 부끄럽다. 내가 보아도 왠지 글의 구성이 애매할 때, 결과물이 마음에 썩 들지 않을 때면 ‘나도 글을 좀 더 짜임새 있게 쓰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렇다면 글을 기획해서 쓰면 좀 더 나을 텐데. 아직은 내 고집이 그것을 허락하지를 않는다.


‘어쭈, 초보 주제에 건방지게 웬 고집이더냐. 근데 대체 고집부리는 이유가 뭔데?’

나 자신에게 물었다. 그러다 내가 손으로 무엇을 그리거나 쓸 때마다 사람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자를 대고 똑바르게 선 긋는걸 잘 못해. 가위나 칼로 똑바르게 자르는 것도 못하고. 그리고 사실, 그렇게 완벽하게 그려진 직선이 꼭 예쁜 지도 잘 모르겠어. 차라리 조금 삐뚤빼뚤하더라도 손 가는 대로 그린 게 좋아. 그 나름대로 귀여운 면이 있거든. 완벽한 직선보다는, 약간 곡선인 듯 아닌듯한 그런 서툰 형태."

완벽한 직선에 대해서는 예쁜지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사실 완벽하게 짜여진 글들은 마주할 때마다 감탄사가 터져 나오곤 한다. 감히 그 경지를 조금이라도 흉내 내고픈 마음이 든다. 하지만, 아무래도 난 아직 날 것의, 조금은 서툰 형태의 내 글이 마음에 드는 것 같다. 가끔 내가 읽어도 어색하게 느껴지는 나의 글들이 있다. 하지만 그저 그 풋풋함이 좋아서, 그 어색함마저도 그저 나 같아서. 지우지 않으려 한다. 아직은, 한동안은, 그 삐뚤빼뚤한 그 느낌으로 글을 써보려 한다. 좋은 작가는 못될지언정. 괜한 고집으로다가.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OLYMPUS PEN EE-3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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