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은 나를 보며 남편이 이야기했다. "여보, 너무 말랐어. 살 좀 더 쪄도 되겠다."
난 대답했다. "에이, 그럴 리가. 그리고 오빠. 난 이제 어쩔 수가 없어. 이제 1킬로를 뺄 수도, 1킬로를 찔 수도 없는 그런 몸이 되어버렸거든."
"오잉, 그게 무슨 뜻이야?"
이 세상의 수많은 다이어터들에게는 조금 못마땅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1킬로그램이 빠지면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아먹어도 모자랄 판에, 빠지면 안 된다니 이게 웬 말이냐? 확실한 건 '이 체중에 만족해서'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나 역시 학생 때부터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았다. 얼굴엔 젖살이 올라 통통했고 다리가 근육질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표준 체중을 맴돌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표준 체중은 그리 예쁜 모습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표준 체중 옆에 미용 체중을 적어놓은 표가 인터넷에 떠돌곤 하지 않는가.난 TV에 나오는 날씬한 아이돌을 보며 부러워하는, 그 흔한 학생 중 한 명이었다. 빼도 빼도 내 몸에 만족하는 일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몸무게 n kg을 무조건 유지해야만 하는 몸이 되었다. 만족스럽지 않아도 만족하고 살아가야만 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마른 사람만 보면 다이어트 자극이 들었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아무리 날씬한 친구들을 보아도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실 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지난날 동안 나는 체중계를 사지 않았었다. 그 숫자 때문에 매일 내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1년 전쯤에야 처음으로 체중계를 장만하게 되었다. 눈으로 보는 나의 몸과, 체중계가 가리키는 숫자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내 몸이 워낙 잘 부었다가 빠졌다가 하는 고무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몸무게에는 큰 변동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꾸준히 몸무게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지금 나의 몸무게는 n 킬로그램이다. 그런데 n-1 킬로그램만 되어도 몸이 허해지는 것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당이 떨어져서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뭘 해도 힘들고, 신경이 예민해진다. 소화 기관이 굉장히 약한 나인데 뭘 먹어도 온 몸에서 빠르게 흡수하는 기분이 든다. 몸에서 빨리 에너지를 충전해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작 1킬로그램 빠졌을 뿐인데? 살이 빠진걸 기뻐할 새도 없이, 결국 나는 다시 n 킬로그램으로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영양분을 섭취한다. 그렇게 n 킬로그램을 찍는 순간. 다시 안정기는 찾아온다.
그럼 반대로 n+1 킬로그램이 되었을 때는 어떨까? 이상하게 호흡이 가빠진다. 그리고 평소 편하게 입던 청바지가 배를 쪼여서 역류성 식도염이 도지려고 한다. 몸이 무거워지면서, 특히 엉덩이가 한껏 무거워지면서 웬만하면 잘 안 움직이게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최악인 것은 가슴보다 배가 더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아니, 고작 1킬로그램 쪘을 뿐인데? 결국 나는 n 킬로그램으로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운동을 한다. 그렇게 n 킬로그램을 찍는 순간, 거짓말처럼 안정적으로 변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어쩌다 이렇게 1킬로그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몸이 되어버린 걸까. 뭐, 체중계의 숫자가 작아지기만을 바라는 일은 더 이상 안 해도 되니까 속 편해졌다고 치자.
그래서 요즘의 나는 종종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마이너스(-)만 쫓지 말고, 유지나 잘하자.
1킬로그램이 빠져버리면 몸이 허해지고, 1킬로그램이 붙어버리면 부담스러워지니까.
인생의 많은 것들이 마치 나의 몸무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킬로그램의 작은 무게 차이에도 예민하게 변하는 나의 몸처럼. 더하기나 빼기, 그 어느 것에도 치중하지 않아야 하는 나의 몸처럼.
+1킬로미터만 되어도 영원히 멀어지는 관계와 -1킬로미터만 되어도 코 닿을 듯 가까워지는 관계가 있다.
가끔가다 거는 +1회의 전화만으로도 평생 친구가 되기도 하고, 1회가 -1회를 만나 0으로 수렴하게 되면 친구를 놓치기도 한다.
+1스푼의 소금 때문에 "애미야, 국이 짜다." 같은 불만을 듣기도 하는 반면, -1스푼의 설탕 덕에 "엄마 밥 먹는 것처럼 깔끔해요!"라는 찬사를 듣기도 한다.
또한, 수능시험처럼 +1초만 초과해도 놓치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유명 가수의 티켓팅처럼 -1초의 차이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1℃만 높아져도 얼굴이 발그레 달아오르는 사랑과, -1℃만 낮아져도 싸늘해지는 권태가 있다.
1, 이라는 작은 단위에도 흔들리고 마는 우리네 인생.뭐든, 일단은 유지부터 잘해보자. 중간은 가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