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끔 당신의 무의식에 설렌다

by 온정

결혼 전의 나는 무조건 12시를 찍고서야 잠을 청하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딱히 할 일이 없어도 그랬다. 그저 일찍 자면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그래서인지 결혼을 하고 나서 남편과 생활 패턴을 맞추는 일이 조금 힘들었다. 그는 다음날의 컨디션을 위해 11시쯤이 되면 잠을 청했고, 베개에 머리를 대기 무섭게 잠이 들었다. 나는 그를 따라 함께 11시에 눕고서는, 잠이 오지 않아 한참 동안 뒤척이는 밤들을 보내야만 했다. 원래도 난 12시가 넘어서 누워도 30분은 지나야 잠들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래도 일찍 자보니 다음날에 보상처럼 따라오는 활력이 남달랐다. 은 습관이긴 하네,라고 느낀 뒤에는 최대한 그를 따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일찍 잠들기에 정 아쉬운 날들이 있다. 가령 새로 산 책이 날 기다리고 있다든지, 쓰고 싶은 글이 있다든지, 11시 반쯤에 발행되는 웹툰이 꼭 보고 싶다든지 하는 날. 그런 날이면 이제 나는 그에게 말하곤 한다.

"오빠. 오늘은 먼저 자. 난 서재에서 시간 좀 보내다가 잘게."

그렇게 한두 시간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서재를 나와보면, 항상 거실은 고요하고 캄캄하다. 난 휴대폰 불빛을 켠다. 그리고 바닥에 질질 끌리는늘색 슬리퍼는 한켠에 벗어둔 채, 까치발을 서고 슬금슬금 침실로 걸어간다. 침실 문을 스을쩍 연 뒤에 발가락 끝에 힘을 주고 침대에 살포시 앉는다. 남편은 세상모른 채 쿨쿨 자고 있다. 그 옆에 살짝 누운 뒤 그가 끌어안고 있는 이불을 살살살 빼서 내 위에 덮고 나면, 오케이. 오늘도 잠입 성공이다.

잠들 때까지 어김없이 30분의 대기 시간이 찾아온다. 눈을 지그시 감고 그의 코에서 나는 드르렁 소리를 듣는다. 내 남편은 정말이지 잠 하나는 끝내주게 잘 잔다니깐.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잠을 청해 본다.

이렇게 항상 비슷하게 반복되는 패턴 중에서도, 가끔 특별한 날은 찾아온다. 여느 때처럼 그는 깊은 잠에 빠져있고 나는 그 옆에서 말똥말똥하게 누워있었던 어느 날이었다. 뒤척이던 남편이 갑자기 나를 와락, 껴안는 것이다.
'헉, 내 기척 때문에 깼나 보다..!'싶어서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오빠. 나 때문에 깼어? 미안해..."

하지만 그의 대답은 이런 형태였다.
"음냐음냐....드르러어어엉 커어어어어...."

무거운 그의 팔에 짓눌려서 난감해하던 나는, 이내 웃음이 터져버려서 한참을 웃었다. 내 복부가 씰룩 씰룩대느라 그 위에 올려진 그의 팔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내 웃음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아주 잘 잤다. 나를 숨 막히도록 껴안은 로.

다음날 아침,

"오빠. 어제 새벽, 혹시 기억나?"
"응? 뭐가....? 무슨 일 있었어?"

역시나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평소 그가 포옹을 하거나 애정표현을 할 때면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곤 하는 나. 하지만 무의식 중에서도 나를 안아주는 그 마음이 너무 따듯하고도 예뻐서. 그리고 그 사랑이 정말 놀라워서.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의 옆에 말똥말똥 누워서, '그날은 언제 또 찾아오려나.' 하며 기다려본다.

파란 하늘처럼 가끔씩 기분 좋게 찾아오는, 그가 잠결에 나를 와락 안아주는, 그런 날 말이다.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OLYMPUS PEN EE-3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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