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 이름은 ‘홍 군’이라 칭했습니다 :)
나는 많이 덤벙거리는 편이다. 건망증은 또 얼마나 심각한지.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꼼꼼하게 메모를 해놓지 않으면 죄다 까먹곤 한다. 그런 나를 옆에서 챙겨주는 일은 언제나 남편의 몫이다.
하루는 친구와 양평에 놀러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바로 전날 밤 카메라를 충전기에 꽂아놓았다. 다음날 아침,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나가려는데... 으잉? 충전기에 꽂혀있던 카메라가 내 가방 바로 위에 놓여져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남편은 내가 카메라를 두고 갈 거라고 확신한 모양이다. 그래서 정신없는 출근길에도 손수 카메라를 충전기에서 빼서는 가방 위에 챙겨준 것이었다.
난 그의 손이 닿았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참 신기한 사람이라니깐..."
이 사람을 5년가량 봐왔지만, 지금도 이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세심함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이건 학습으로 가능한 수준이 아닌데. 대체 어떻게 이런 세심함을 타고난 걸까.
결혼을 앞두고 예비 시댁에 갔을 때였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에 조수석에는 내가, 뒷좌석에는 어머님이 앉아계셨다. 하필 기름이 똑 떨어지는 바람에 주유소에 들른 참이었다. 남편은 셀프 주유를 하러 밖으로 나가고, 어머님과 나는 밖에 나간 남편만 응시하고 있었다. 차 안에서는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그가 주유구를 열고 주유를 시작할 즈음, 어머님이 먼저 침묵을 깨셨다.
“온정아. 홍 군이 평소에 잘 챙겨주니?”
“네, 어머님. 정말 세심하게 잘 챙겨줘요!”
“그렇지? 다행이다. 아마, 아버지 닮아서 잘 챙겨줄 거야. 보통 차를 타고 가다가 김밥이라도 사려고 하면, 운전자가 차를 지키고 조수석에 있는 사람이 김밥을 사 오는 게 일반적이잖아? 근데 홍 군 아빠는 본인이 운전하고 있다가도, 굳이 본인이 문 열고 나가서 직접 김밥을 사 오셔.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나도 자연스럽게 그냥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다니깐. 옆 사람 챙겨주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야. 홍 군도 그걸 보면서 자랐지.”
아.... 그제야 난 깨달았다. 이 남자의 세심함은 아버님으로부터 왔구나. 덕분에 시댁에 가는 날이면, 어머님보다 키가 30cm는 더 크신 아버님께서 어머님의 주변을 돌며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말이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서 알아차리기 어려울 지경. 그 중년 부부의 모습은 그저 영화 같기만 하다.
남편은 새벽마다 기침하는 나를 위해 매일 젖은 수건을 세 개씩 걸어준다. 아침이면 바싹 마른 그 수건을 걷어서 물에 다시 적셔주고 출근을 한다.
다리가 잘 붓는 내게 매일 밤 다리 마사지를 해준다.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서 쩍쩍 갈라지는 뒤꿈치에 매일같이 로션을 발라준다.
추운 날 덜덜 떨면서 지하철을 타고 온 나를 위해, 쿠션만 한 온수 핫팩을 품에 안고서는 역까지 배웅을 나온다.
함께 소파에 앉아서 영화를 보다가, 그저 내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린 것뿐인데도 나의 의중을 알아챈다.
'아, 온정이는 항상 인형을 안고 TV를 보는데 지금 품 안에 인형이 없군. 그러니 저 눈빛은 분명 인형을 찾고 있는 눈빛이겠군.'
내가 손을 뻗기도 전에, 그는 곧바로 인형을 가져다 품에 안겨준다. TV에서 슬픈 장면이 나오는 타이밍이면 항상 주섬주섬 휴지를 챙겨주기도 한다.
오늘도 역시나 그는 살뜰히 나를 챙긴다.
"아, 초코우유 먹고 싶다."
"그래? 내가 나가서 사 올게!"
"엉....?! 이 시간에 굳이....? 아니야! 그러지 마! 괜찮아 괜찮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야. 내일 나가는 길에 사서 마실게."
손사래 치는 나를 보더니 토라진 얼굴로 아랫입술을 쭈우욱 내밀던 남편.
"으이구. 알겠어, 고마워 여보. 사다 주면 감사히 마실게요."
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신나는 발걸음으로 편의점을 향한다. 그 진심 담긴 뒷모습이 남긴 잔상에, 한참 동안 감동에 젖어있는 일은 나의 몫이다.
이쯤 되면 아버님께 감사 인사 한 말씀 올려야 될 듯하다. 이 사람에게 세심함과 다정함을 물려주셔서 감사하다고. 덕분에 제가 호강하며 산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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