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기름 냄새 줄고 행복지수 높아지다.

by 온정

대한민국의 며느리들에게 '명절'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매년 찾아오는 명절이 대수롭지 않은 며느리도 있는가 하면, 명절이 이혼 사유가 될 정도로 괴로워하는 며느리도 많다.


현재 나의 경우를 따져보면 명절 스트레스는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20%의 원인은 시부모님이라기보단 그 외의 요인들. 그러니까 지출이 커진다든지, 차가 빡빡한 도로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든지, 모처럼의 휴가인데 여행을 가지 못한다든지, 어색한 친척분들을 만나야 한다는 부담감이라든지 하는 간접적인 요인들 뿐이다. 시부모님께 직접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고 본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결혼 후 맞이했던 첫 명절의 기억. 그리 좋지만은 않다.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앞서 걱정하는 일이 내 취미이자 특기인지라, 명절이 오기 전부터 스트레스를 꽤 많이 받았더랬다. 추석 전날부터 이틀을 꽉 채워서 시댁에 있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친정 갈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 추석 당일 오전에는 아버님 댁 친척분들과 함께해야 하고, 저녁 때는 또 어머님 댁 친척분들과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것. 생각만 해도 피곤한 일정이었다.
'이런 게 바로 유부녀의 명절이로구나...'
추석 전날 시댁으로 가는 길, 나의 심란한 마음은 굳은 표정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막상 시댁에 도착하고 나니 그 마음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내 주식은 쌀이 아닌 두부'라고 말할 정도로 두부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어머님이 직접 두부를 만들고 계셨다.

"온정이가 두부를 워낙 좋아해서 아침 일찍부터 만들고 있는데, 두부가 잘 안 뭉치네~"

어머님은 길쭉한 주걱으로 큼직한 냄비 속을 휘휘 저으셨다. 인고의 시간 끝에 드디어 두부가 뭉치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두부 덩어리가 불어났다. 막대를 빙빙 돌리면 그 주변에 뭉글뭉글하게 솜사탕이 붙어 불어나듯이.
그렇게 방금 만드신 뜨끈한 순두부를 국자로 떠서는 그릇에 담아주셨다. 옆에는 쪽파가 송송, 참깨가 솔솔 들어간 간장도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아버님과 남편과 나는 솥을 중심으로 둥글게 서서는 숟가락을 떴다. 아, 정말이지 아무데서나 먹을 수 없는 귀한 맛이었다. 탱글하고 부드럽고 고소하고 폭신한 두부가 이내 혀 위에서 스르륵 녹았다. 그와 함께 내 마음속 심술도 함께 녹아내렸다.

“어머님, 한 그릇 더 먹어도 될까요?”
“아이구 예쁘다. 더 먹어, 많이 먹어.”


두부 만들기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명절 음식 차리는 일을 도와드리려 했다. 그런데 전 부치는 일을 제외하고는 이미 모든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대체 이 많은 음식을 혼자서 언제 다 하신 건지....

"엄마가 다 해놨어. 그러니까 네가 전 부치고, 밤에 묵 쑤는 것만 도와주면 돼."

어머님은 내가 아닌 남편에게 말씀하셨다. 호다닥 팔을 걷어붙인 그는 절대로 나에게 뒤집개를 양보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고수의 향기를 풍기며 전을 모두 부쳤다. 나는 할 일이 너무 없어서, 그저 전 부치기 장인의 보조 역할만 했더랬다. 그러고 난 뒤 우리는 어머님이 차려주신 두부전골에 배 터지게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었다.



다음날 아침 시댁으로 친척분들이 오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님 겨우 세 분이 오시는데도 어머님께서는 많은 음식을 차리셨다. 큼직한 교자상 두 개를 이어도 그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그 밥상의 나무색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머님은 아침 식사를 차리시고, 또 치우시고, 후식을 내오시고, 그걸 또 치우시고 나니 점심시간이 돼서 또 점심을 차리시고, 또 후식을 준비하시고를 반복하셨다. 딱 전형적인 옛 명절의 모습었다. 어르신들은 거실에서 상에 차려진 음식을 드셨고, 몇 명은 부엌 앞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나는 민망할 정도로 한 일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입술이 부르트고 입 안이 헐었다.

사실계속해서 어머님의 얼굴만 지켜보느라 모임 자체에는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어머님의 눈은 하루 종일 퀭-. 나는 며느리인데, 그녀의 얼굴에서는 시어머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된 얼굴을 한 '며느리'가 보였을 뿐이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해온 이 일들이 타인으로부터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졌기에. 그러니까,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님에도 그렇게만 여겨져 왔기에. 힘든 내색조차 할 줄을 모르시는, 왜소한 몸집과 가느다란 팔뚝으로 이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고 계시는, 그저 한 며느리.

이른 오후 즈음에 친척분들은 집을 떠나셨다. 어머님은 손님을 맞이하시며 시종일관 웃으셨지만, 얼굴은 많이 상해있었다. 한껏 속상해진 나는 어머님의 마른 등을 떠밀었다. 툭 튀어나온 날개뼈가 나의 두 손에 들어왔다.

"어머님, 제발 한숨 주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너무 피곤해 보이셔요. 이따가 외가 식구분들도 만나러 나가셔야 하잖아요.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쓰러지시겠어요"

어머님은 계속해서 괜찮다고 말씀하시더니 못내 침대에 누우셨다. 그리고는 낮잠을 푹 주무셨다. 저녁 시간이 되자 함께 나가서 외가 식구들을 만났다. 명절이 되어 다들 모이니 좋다는 어머님의 말씀으로, 며느리로서의 나의 첫 명절은 마무리가 되었다.

명절이 다가오는 과정에서는 여느 며느리처럼 어머님이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명절을 지내보니, 어머님이 그저 안타까워 보이기만 했다. 분명 네 식구가 함께 보낸 전야제는 즐거웠는데, 명절 당일의 풍경은 마음이 아플 지경이었다. 남편과 나는 계속해서 외쳤다. 대체 누구를 위한 명절이란 말이냐. 결혼 후 첫 명절에 남은 기억은 맛있는 음식들도, 친척분들과의 어색함도, 당일날 친정에 가지 못한 억울함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그저 어머님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나고 며느리로서 맞이하는 네 번째 명절, 설이 다가왔다. 어머님께서는 시댁에서 이틀을 보냈으면 하는 눈치셨다. 지난 추석을 친정에 통째로 양보해주셨기에, 나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님, 좋아요. 그런데 전제 조건이 있어요. 이번에는 친척분들도 안 오시고 우리끼리만 보내는 거니 제발 명절 음식 하지 마세요. 저 어머님 고생하시는 거 안 보고 싶어요.”

그 이후로도 나와 남편은 어머님과 통화를 할 때마다 신신당부를 했다. 명절 음식 해봤자 질리기만 하고, 느끼하기만 하고, 어머님만 고생하신다고. 이미 인생의 반 이상을 매 년 해오셨기에 어머님의 입장에서는 그만두는 것이 많이 어색하신 듯했다. 하지만 우리의 강력한 주장에 마지못해 알겠노라며 승낙하셨다.

그렇게 설 전날이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어머님은 약속을 지켜주셨다. 우리는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테이블에 앉아서 차 한잔과 과일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아마 명절 음식을 해야 했다면 이런 여유 있는 시간을 가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명절은 확실히 달랐다. 아버님, 어머님, 남편, 나. 넷이서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같이 밥하고, 밥 먹고, 차 마시면서 수다 떨고, 설거지하고. 피곤해질 때쯤 낮잠도 한잠씩 자고. 또 수다 떨다가, 다시 또 다음 끼니 준비하고. 밥 먹고, 차 마시고. 또 밤에는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설 당일 아침, 눈을 비비며 일어나 보니 어머님께서 떡만둣국 끓일 준비를 하고 계셨다.


"얘들아. 내가 오늘 아침에 백종원의 요리 유튜브를 보며 한참 웃었는데, 한번 들어봐 봐."
내용인즉슨 떡국에 올리는 '지단'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그 지단에는 세 종류가 있다. 귀한 손님에게는 황/백 지단을 따로 부쳐서 올려야 하고, 조금 편해진 손님에게는 계란을 섞은 다음 지단을 부쳐서 올려도 괜찮고, 친한 친구에게는 지단을 따로 부칠 필요 없이 떡국 국물에 계란을 풀면 된다. 혹시나 편해진 손님이 '왜 성의 없이 황백 지단을 따로 부치지 않았냐?'라고 얘기한다면, '새해에는 화합의 새해이니, 화합의 지단을 부친 것이다.'라고 대답하면 된다고.

"온정이는 이제 편해진 손님이니까, 엄마가 황백 지단 말고 섞은 지단으로 부치려구. 화합의 지단, 괜찮지~?"
어머님은 웃으며 말씀하셨고, 나는 황급히 대답했다.
"어머님, 제가 무슨 손님이에요!"
나는 직접 나서서 대접에 계란 두 개를 깨고 휘휘 저은 뒤 끓고 있는 떡국에 휘리릭 뿌렸다. 그 덕에 가장 편하면서도 고소한 떡국이 완성되었다.


사골 국물로 끓인 떡국은 한 살을 더 먹는 게 전혀 억울하지 않을 만큼 맛있었다. 그리고 소박하게 차린 밥상에는, 어머님이 직접 담그신 고추장으로 무친 냉이 무침이 올려져 있었다. 쌉쌀하면서도 향기로우면서도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그 반찬은 혀에 닿기도 전에 침샘이 폭발했다. 그 냉이무침을 드시던 아버님께서는 어머님을 향해 말씀하셨다.
"이게 다 고추장을 맛있게 담근 덕에 이렇게나 맛있는 거야."
"에이, 무슨. 냉이 자체가 맛있는 거지 뭘."
"아니라니깐, 분명 고추장이 맛있어서라니깐~?!"


식사를 끝낸 뒤 간식으로 어머님이 직접 만드신 약식을 드시면서도 아버님은 말씀하셨다.
"이거 레시피 어디다가 잘 숨겨놓고, 아무도 보여주지 마."
"왜???"
"너무 맛있으니까."
입꼬리가 스을쩍 올라가던 어머님과, 허허허 너털웃음을 짓던 아버님의 모습. 그 모습을 보는 일만으로도 나와 남편은 구름이라도 탄 듯 몽글몽글해졌다. 입은 즐겁고 마음은 간질간질한 시간이었다.



이번 명절, 참 많은 것들을 생략했다. 부엌에는 그 흔한 기름 냄새조차 풍기지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만큼 우리 네 식구의 행복 지수는 올라갔다. 이틀간 그 아무도 예민하지 않았으며, 그 아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고, 넘치게 먹어도 속이 느끼하지 않았다. 종종 훈훈한 문장이 오갔으며, 억지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을 주고받았고, 평소에 하기 어려운 대화들까지도 서로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며느리가 시댁에서 무려 '행복한 명절'을 보냈다는 말. 대한민국 안에서 쉽사리 듣기 힘든 그 말. 오늘은 내가 꼭 하고 싶다. 이번 명절은 정말이지 행복했다고. 식구들의 편한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고 말이다.




커버 사진/ 시댁 풍경. 필름 카메라 X-300으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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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종원의 요리비책 ‘떡만둣국’편

https://youtu.be/At-u3lwsF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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