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경력 2년. 그리 길진 않지만, 연애의 흔적은 흐려지고 결혼 생활에 물들어가기엔 충분한 시간. 그 기간 동안 나와 남편은 다툰 적이 거의 없다. 지인들은 그런 우리를 보며 종종 비결을 묻곤 한다.
“아니, 둘은 어쩜 그렇게 안 싸울 수가 있어? 거의 30년을 따로 살다가 같이 살게 됐는데, 한 두 개씩 부딪힐 일이 생기는 게 정상 아닌가. 대체 비결이 뭐야?”
이 질문에 나는 서로를 많이 사랑해서, 혹은 배려해서, 라는 뻔한 대답 말고 현실적인 대답을 하곤 한다. 대부분의 커플들이 서로 사랑하고 또 어느 정도 잘 맞는다고 판단했기에 결혼을 선택하겠지만, 막상 함께 사는 문제는 다른 법. 아무리 친한 친구와도 룸메이트가 되는 순간 사이가 안 좋아질 수 있듯이 결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다투지 않는 진정한이유를 밝혀보려 한다.
우리 집의 평화는 사실 ‘치약’으로부터 시작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둘 다 치약을 위쪽부터 짠다는 사실이다. 그게 대체 뭔 양치하다 양칫물 마시는 소리냐구요...?
매일 적어도 두 번 이상, 주말에는네 번이상 집에서 양치를 한다. 만약 내가 치약을 아래쪽부터 짜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자.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를 하기 위해 치약을 잡아드는 순간 짜증이 확, 올라올 것이다. “아니, 내가 몇 번을 부탁했는데 또 위에서부터 짰네. 이렇게 윗부분을 눌러놓으면, 내가 짤 때 너무 오래 걸려서 치약이 중심을 잃고 고꾸라지잖아.” 남편의 입장에서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출근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그리하여 버릇처럼 치약을 위쪽에서 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내는 이를 이해해보려 계속 노력해보지만, 한두 번이 아닌지라 결국엔 화가 날 것이다. 사소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하루에 두 번 이상, 주말에 네 번 이상 일상에서 마주하는 일이라고 생각해보면 결코 사소하지 않다.
‘치약’을 가장 먼저 예로 들었다만, 평화로운 결혼 생활은 모두 지극히 사소한 부분에서 시작된다. 나는 우리가 다투지 않는 이유를 ‘깔끔함의 정도가 비슷하기에.’ 혹은 ‘깔끔함을 고집하는 분야가 비슷하기에.’라고 종종 얘기하곤 한다. 우리 둘 다 어떤 부분에서는 깔끔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 지저분하다. 예를 들면, 우린 애정 하는 물건들을 눈 앞에 두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의 서재, 침실, 거실에는 책들이 6단 이상씩 아주 난잡하게 쌓여있다. 둘 중 한 명이 ‘당장 읽지도 않는데 이걸 왜 쌓아놓냐’고 말한다면, 딱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 애매한 취향을 대체 무슨 수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겠는가. “음... 그냥, 왠지 쌓아놓으면 언젠가는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책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잖아." 만일 이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라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언젠가? 그 언젠가가 언젠데. 1년? 10년? 그때 되면 쌓여있는 먼지 털어내는 게 더 일이겠다! 빨리 책꽂이에 꽂아놔!!!!” 하지만 우리는 딱히 서로에게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 애매하고도 사소한 취향이 완벽하게 일치하기에 문제가 되질 않는다.
장을 보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 둘 다 어떤 부분에서는 헐렁하다가도 까다로운 부분에서는 또 엄청 까다로운데, 특히 장을 볼 때면 깐깐 지수가 폭등해버린다. 마트의 채소 코너를 갈 때마다 보게 되는 장면이 있다. 바로, 양상추 진열대 앞에 서서는 굳이 하나하나 들어보며 비교하는 남편의 뒷모습이다. 또 정육 코너에서 어떤 고기를 살지 이미 결정한 뒤에도 나는, “그래도 한 바퀴만 더 돌아보고 그다음에 가지러 올까?”라고 말하곤 한다. 만약 이때 남편이 “이미 결정한 건데 뭘 또 한 바퀴를 돌아?”라고 말한다면 그때부터 부부의 감정은 상할 수 있다. 하지만 남편은 항상 “좋아! 그러자. 더 좋은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저쪽도 한 번 가보자.”라고 대답한다. 우리 둘에게 있어 장보기란 생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닌, 밥 먹은 뒤 소화를 돕는 산책 같은 일이다. 둘 다 이런 깐깐한 과정을 즐길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처음부터 모든 생각이나 취향이 일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80% 정도 설득할 수 있다면 평화는 찾아온다.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은 유독 분리수거나 음식물 쓰레기에 있어 예민한 편이었다. 그중 초반에 내가 적응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는데, 바로 ‘일회용품 설거지’였다. 어차피 버릴 플라스틱을 왜 굳이 정성 들여 설거지해야 하는지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내게 그 이유를 똑 부러지게 설명했다. “이 일회용품을 깨끗하게 세척해서 버려야 제대로 재활용이 되겠지? 그리고 그렇게 하면 우리의 분리수거통에서 냄새도 안 나니까. 일석이조야.” 환경 문제에서부터 우리 집 냄새까지. 도무지 설득당하지 않을 수 없는 논리적인 근거였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 생각 없이 분리수거를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여전히 쓰레기를 설거지하는 일은싫고 귀찮다. 하지만 지구에게 미안하기에, 양심에 찔리기에 억지로라도 깨끗이 씻어서 분리하고 있다. 남편의 뜻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내 본연의 생각을 버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듯 결혼 생활은 ‘성격’보다는 지독하게 사소한 취향이나 습관들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내가 태초에 잘 맞는 인연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결혼 생활의 평화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청소기를 돌리시는 엄마와, 집안일이라고는 숟가락 놓는 것도 싫어하시는 아빠 아래서 자랐다. 그리고 두 분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부딪히는 모습을 매일같이 보았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역할을 분담하지 않는 아빠의 태도였지만, 만일 엄마도 집안일을 대충 하는 사람이었다면 충돌은 덜 했을 것이다. 나와 남편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만 청소를 해도 서로에게 한 치의 불만이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집안일로 싸울 일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일상에서의 자잘한 충돌이 없어야 평소의 마음도 너그러워진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더 묵직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직면했을 때 예민하지 않게 해결해나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결혼 생활의 비결인 셈이다.
커버 사진/ 양치하는 우리 부부. 필름 카메라 OLYMPUS PEN EE-3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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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2년 차 신혼인데 '비결'을 운운하는 게 부끄럽지만, 평소 종종 느끼던 바를 적어봤습니다 :-) 글 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