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 ‘주말’이란,밀린 피로를 풀 수 있는 소중하디 소중한 날이다. 남편 역시 주말에는 가벼운 늦잠이나 낮잠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주말 중에서도, 그가 유독 하루 종일 잠에서 깨지 못하는 날이 꼭 한 번씩 있다.
“나 왜 이렇게 자고 또 자도 피곤하지?”라는 의문문만 되풀이하다 잠이 드는 그. 그러다 잠에서 깨고 나면, 머리에는 까치집을 지은 채 “아, 나 대체 왜 이러는 거야...”라며 초점 잃은 눈동자를 굴리곤 한다. 그리고는 조금 뒤에 또다시 스르륵. 반복, 또 반복. 사실 주말에 많이 자는 게 무슨 문제가 되겠냐만은, 그는 ‘잠을 많이 잘수록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는 유형’이다. 의지와 상관없이 축 늘어지는 본인의 모습이 싫은지 자꾸만 울상을 짓곤 한다.
이번 주 주말이 딱 그러한 풍경이었다. 이틀 동안 그는 끊임없이 잠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단순하게 ‘이번 주에 일이 좀 힘들었나 보다.’라고 넘어가기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다른 때보다 야근을 더 많이 한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요즘 평소보다 일이 적은 편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대체 원인이 무엇인지,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지, 꼬치꼬치 물어보아도 피로의 원인은 찾지 못했다.
기운이 쪽 빠진 그를 위해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밥 먹을 때 그의 밥그릇에 고기를 더 챙겨준다든지, 마음 놓고 쉬라고 등을 토닥여준다든지, 힘내라고 위로해주는 정도뿐.
그렇게 일요일 밤이 찾아왔다. 아침에 늦잠을 자고 오후에 낮잠을 잤음에도, 그는 10시도 되기 전에 잘 준비를 마쳤다. 먼저 침대에 누운 그에게 굿나잇 인사를 하고는 번데기가 허물 두르듯 이불을 잘 여며주었다. 피곤함에 절어 누워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한 움큼 속상해졌다.
침실 문을 살포시 닫고 홀로 거실에 나왔다.그리고는 그를 걱정하며 널브러져 있는 빨래 더미를 갰다. 훌쩍훌쩍. 비염이 극성이라 콧물이 줄줄 나왔다.최대한 조용히 콧물을 훔치려던 중, 엣츄! 재채기까지 나와버렸다. 혹여나 남편이 잠에서 깰까 봐 조마조마하며 휴지로 코를 사수하던 나의 머릿속에, 별안간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엇...? 생각해보니 나 최근에 남편에게 이렇게 세심하게 신경 썼던 적이 없는 것 같아.....'
사실 지난 보름 남짓 되는 기간 동안, 나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갑자기 영상 편집 의뢰가 폭주하지를 않나, 지난달에 지원하고는 포기하고 있었던 기업에서 면접을 오라고 하질 않나, 생애 처음으로 출판사와 출간 미팅을 하는, 말 그대로 ‘꿈같은 일’이 일어나질 않나. 분명 좋은 일들이었지만 한꺼번에 밀려오니 감당하기가 무척 버거웠다. 단기간에 끝나버릴 일도 아니었기에 난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일주일 사이에 몸무게 4킬로가 빠져버렸다.
그렇게 큰 변화들이 계속되다 보니, 퇴근하고 집에 온 남편과 대화를 할 때면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 나를 중심으로 흘러갔다. 그 역시 회사 이야기를 했고, 조직개편 때문에 회사가 너무 혼란스럽다며, 일할 의지가 사라진다며, 괴롭다며 심정을 토로했지만, 대화는 돌고 돌아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가곤 했다.
복잡했던 나의 상황들은 이번 주 금요일에서야 거의 마무리가 되었다. 나는 그 날 그와 저녁을 먹으며, “오빠. 나 이제야 밥이 조금 넘어가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수저를 내려놓고 한참 동안 나를 짠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휴. 온정아. 그 말 들으니까 너무 반갑다. 내 마음도 이제야 좀 놓이는 것 같아.” 그저 밥이 먹을만하다고 이야기했을 뿐인데 격하게 반응하는 그를 보니, 그 걱정의 깊이가 새삼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는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공간이 없었던 것 같다. 집에 들어오며 그 짐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아마 야윈 나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을 테지. 내 앞으로 밀려오는 강력한 파도를 함께 막아주느라, 아마 그 짐들은 물을 먹고 더더욱 무거워졌을 것이다. 그러다 파도가 잠잠해질 때쯤에야, 겨우 그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곰곰이 돌이켜보니 그가 유독 피곤해하는 주말에는 항상 이러한 패턴이 존재했다. 본인도 힘들지만 나를 더 챙겨주느라 본인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을 때. 혹은 내가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겨우 안정을 되찾았을 때. 그제야 그도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몰려오곤 했던 것 같다.
내가 마음의 공간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이라, 이토록 민감하게 생겨먹은 사람인지라, 나의 힘듦을 함께 감당해야만 하는 그에게 항상 미안할 따름이다.
아마 이러한 성향을 바꾸는 일은 내 평생의 숙제일 듯하다. 옛날에는 실현 가능성이 많이 떨어지는 목표였다면, 지금은 그래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 옆에는 그가 있으니까.
마음이 고달팠던 하루의 끝에 내 발을 주물러주는 그가 있고, 나의 좋은 소식에 현관문을 급히 열고 들어와 덩실덩실 춤을 춰주는 그가 있고, 야위고 퀭한 내 모습에도 눈을 반짝이며 예쁘다 말해주는 그가 있고, 또 매일 밤 잠들기 전 “사랑해”라는 말을 잊지 않는 그가 있기에. 그 따듯함에 녹아들어, 결국 내 마음도 평온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날까지 조금 오래 걸릴지라도 나 역시 그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해야겠다.
그가 물먹은 짐을 혼자 짊어지느라 몸살이 나지 않도록. 이유도 모른 채 밀려오는 잠에 괴로워하는 일이 없도록.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OLYMPUS PEN EE-3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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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부부의 신혼여행기가 좋은 출판사를 만났습니다!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많이 기대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