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던 시절, 책을 좋아하는 홍군이 근사하다고 항상 생각했다. 나는 책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머쓱해져서는 뒤통수만 긁게 마련이었으니까.
“오빠. 나는 서점에 가도 당최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어. 잘 모르니까 베스트셀러부터 훑어보는데 딱히 마음이 안가. 오빠는 무슨 책을 좋아하는 거야?” 그는 특정 작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 작가가 내는 책은 저절로 몽땅 찾아 읽게 된다고 답했다. “아하. 그럼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몇 명만 생겨도 별로 고민할 일은 없겠다.”
그래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김연수 작가라고 말해주었다. 그 덕에 결혼을 한 뒤 우리의 책장에는 그가 소장해온 김연수 작가의 책이 여럿 꽂히게 되었다. 인기 작가임에도 대부분 초판 때 책을 사서 나른 것을 보면 정말 이 작가를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그가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의 책을 나도 읽기 시작했다. 소설 <사월의 미, 칠월의 솔>부터 시작하여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원더보이> 등을 읽고, 이어서 <청춘의 문장들>, <지지 않는다는 말> 등 그의 산문집들도 읽었다. 그 아무리 인기가 좋고 누군가에게 인상 싶었다 해도 막상 자신에게는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책’이다. 어떤 책이든 펼칠 수야 있겠지만 완독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개인의 취향이 짙게 반영되는 부분임에도 내가 김연수 작가의 책을 계속해서 읽은 이유는 나의 마음을 제대로 빼앗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홍군이 처음 김연수 작가의 이름을 언급했을 때, 그리고 뒤이어 그가 쓴 문장들을 이야기해주었을 때 나는 그가 여성 작가인 줄로만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를 하는 듯했다. 남녀의 감성을 굳이 나눌 생각은 없지만서도 하여간 그의 문장은 대체로 그토록 섬세했다.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그의 담백하면서도 따뜻한 상상력에, 그러면서도 툭 하고 나타나는 재치 있는 문장들에 감탄하곤 했다. 어떤 책의 경우에는 나의 감성을 건드리는 문장이 너무나도 많아서, 메모를 하면서 책을 읽다 보니 한 페이지조차 쉽사리 넘기기 힘들었던 경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가 대놓고 감성 글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평범해 보이는 문장 속에도 무언가 고유한 향이 숨겨져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 그의 글을 볼 때마다 나는 종종 생각했다.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라면 분명 생각 없이, 무심하게 넘길 수 있는 문장들일텐데 홍군은 이 글을 애정 했구나.’
그렇게 느끼고 나니, 그가 좋아하는 책을 따라서 읽어볼 때면 나는 종종 궁금해지곤 한다. 그도 나처럼 이 문장에서 한 번 멈추었을까. 문단의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보았을까. 심장에서부터 찌릿찌릿하게 올라오다가 결국 피부에 닭살이 돋았을까. 그도 나와 같았을까.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댄 역을 맡은 마크 러팔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플레이리스트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어.”
그러니까, 그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그가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참 좋다고. 또 그가 가을 방학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가 프로그래밍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알싸한 에일 맥주의 맛을 아는 사람이어서. 그러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서, 섬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서, 건전하면서도 결코 지루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그래서 좋다고. 그가 그것들을 좋아해서 나도 참 좋다고. 그렇게 나는 생각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