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에 홍군과 함께 샤브샤브 해먹을 준비를 하다가, 버너에 넣을 부탄가스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가서 사오겠다며 그가 주섬주섬 운동화를 신을 때쯤 부엌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오빠, 나가는 김에 누드 빼빼로 좀 사다 줄래요?”
그는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집을 나섰다. 그런데 청경채를, 배추를, 깻잎을, 무를 씻고 손질할 때까지도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 편의점은 2분 거리인데 왜 이리 안 오나 궁금했지만 재료를 준비하느라 바빴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 한참 뒤에 돌아온 그의 손에는 빼빼로 곽이 4개나 들려있었다. “오빠, 왜 이렇게 늦었어?” “누드 빼빼로가 없어서 마트를 네 군데나 돌고 왔어.” “으에에엥?” 없으면 없다고 말을 하지 그랬냐고, 안 사 와도 괜찮은데,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고 그에게 말했다. 없다고 말하면 내가 그냥 오라고 할 걸 아니까 말하지 않았다고 그는 답했다. 뿌듯한 표정으로 내게 빼빼로를 건네는 그를 보니 연애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홍대의 한 디저트 가게를 알게 된 적이 있다. 단호박 크림치즈 파운드, 쑥 파운드케이크 같은 걸 팔았는데, 요즘에는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워낙 신박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아서 홍군에게 나중에 꼭 같이 가자고 시도 때도 없이 말했다. 용인에 살던 나에게 홍대는 너무 멀게 느껴졌기에 기약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나 몰래 홍대에 있는 그 가게를 들렀다가 용인까지 날 만나러 왔다. 그때 그가 건네준 빵들을 손에 안고는 한참 동안을 감동 속에 허덕였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벌써 결혼 3년 차. 이제 연애 시절만큼은 어렵겠지만, 추운 날 아침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을 지키기 위해 온 마트를 다 돌아다닌 그를 보며 느꼈다. 아직 그의 마음은 충분히 그 시절을 닮았음을. 부부라는 신분으로 매일같이 함께 지내면서도 우리에게는 아직 풋풋함이 우세하다. 신혼의 냄새가 워낙 짙어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듯 하다. 우린 3년 동안 저녁 양치를 같이 해왔는데, 나는 입이 텁텁해 죽겠는데도 굳이 홍군과 시간을 맞추겠다며 기다리곤 한다. 그와 나는 양치를 꽤 꼼꼼하게 하는 편이라 전동칫솔, 치실로 양치 후 리스테린으로 마무리를 하고 가끔은 물치실까지 한다. 그렇게도 양치가 중요한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양치할 시간이 생길 때까지 기다린다는 건 그만큼 그 시간이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둘이 함께 양치를 할 때면 좁은 화장실에 나란히 서서 거울을 보며 열심히 칫솔을 놀린다. 종종 팔꿈치가 상대의 왼쪽 팔뚝에 닿는다. 욕실 슬리퍼는 한쌍뿐이라 발이 시려워서 한쪽 씩 나누어 신어야 한다. 양치컵 역시 하나라서 한 명이 가글가글을 하고 있을 때 나머지 한 명이 재빨리 양칫물을 들이켠다. 이렇게 번거로운데도 우리는 굳이 매일 저녁 함께 양치를 한다. 약속한 적 없지만 약속처럼 되어버린 탓에 둘 중 한 명이 먼저 양치를 해버린 날에는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별 게 다 미안한 신혼부부이다.
이런 패턴이 양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집 안에서도 서로가 시야 안에 들어와 있어야 마음이 편안하다. 집에는 방이 여러 개 있지만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일을 하는 게 여전히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각자의 일도 주로 거실에서 한다. 서재가 있지만 거실에서 책을 보고, 컴퓨터 책상이 있지만 거실에서 노트북을 하는 게 익숙하다. 가끔 방에 들어갈 때면 서로에게 꼭 설명을 하고 들어가곤 한다. “오빠, 나 집중이 안돼서. 서재 들어가서 글 좀 쓸게.”, “온정아, 나 컴퓨터로 공부할 게 있어서 방에 좀 들어갈게.” 라면서 말이다. 동거인에게 이런 것까지 일일이 설명을 하는 게 조금 이상하다 생각하다가도, 이 정도로 가까운 사이임이 실감 나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설거지를 서로가 하겠다며 티격태격할 때,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서로의 하루를 공유해야만 잠이 올 때, 매일 밤 그에게 발 마사지를 받을 때, 나의 젖은 긴 머리카락을 그가 같이 말려줄 때도. 소소한 일상들 속에서 아직 우리가 신혼임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그저 우리가 사는 방식이길 바라기도 한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사는 일에 충분히 익숙해졌음에도, 더욱 함께하고 싶어 지는 이 마음이 꼭 신혼 때문만은 아니길. 시간이 지나도 지금처럼 조금 번거롭고 불편하게 지내고 싶다. 자꾸만 서로를 신경 쓰면서, 서로의 일에 관여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