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연구실은 온도를 낮게 유지해야 해서 히터를 틀지 못한다. 그곳에 출근하며 난 겨울 내내 온몸을 움츠리며 지냈다. 붙이는 핫팩과 손 핫팩과 온수 찜질팩까지 구비해놓았지만 매번 승모근은 뭉쳤고 종종 배가 차갑다고 느꼈다. 그래서였는지 진작 터져야 할 생리가 하루 이틀 미뤄지더니, 열흘이 지난 토요일에서야 터졌다. 생리통보다도 생리 전 증후군이 심한 나로서는 차라리 반가운 일이었다. 남편에게도 이 소식을 알린 뒤 아침을 차려먹고 소파 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아랫배가 찢어질 듯 아파왔다. 어라...? 왜 이러지. 양반 다리를 한 채로 배를 움켜쥐고 있다가, 상체에도 힘이 빠져 이마가 무릎 위로 닿았다. 놀란 남편이 진통제를 챙겨준 뒤 나를 부축해서 침대로 데리고 가주었다. 침대에 누워 온 몸을 꿈틀대던 나의 입에서는 한 시간 동안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새어 나왔다. 그러다 통증이 가라앉자 그대로 3시간을 넘게 잤다. 겨우 눈을 떴을 때 나는 암벽을 타던 사람처럼 매트리스에 온 몸을 맞대고 있었다.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서 남편이 끓여준 미역국에 밥을 먹고 나니 하루가 다 지나갔다. 집안일을 주말에 몰아서 하는데 토요일 내내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게 조금 속상했다. 못한 건 내일 하기로 마음먹고 잘 시간이 되어 침대에 누웠는데, 눈이 말똥말똥했다. 대낮에 침대와 찰싹 붙어 침까지 흘리며 잤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옆에서 고로롱 소리를 내며 잠이 든 남편을 지켜보다가 반려견 달콩이와 거실로 나왔다. 할 게 없어서 웹툰을 보며 앉아있는데 온 몸이 또 긴장되기 시작했다. 으슬으슬 추웠다. 아랫배가 서늘해졌다. 후리스를 걸쳐 입고 담요로 무릎을 덮은 뒤 애매모호한 추위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잠이 올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침실로 들어가 눈을 감았지만, 다음날 아침 남편이 일어날 때까지도 눈만 감은 채 잠에 들지 못했다.
겨우 한 시간 가량 눈을 붙였으나 늘어지지 않고 씩씩하게 기상했다. 할 일이 많았다. 남편과 함께 아점을 차려먹고, 달콩이 산책을 나갔다가, 각자의 집안일에 몰입했다. 빨래를 돌리고 달콩이 목욕을 시키고 청소기를 돌리고 스팀 걸레질로 마무리를 했다. 조금 버거웠지만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일을 끝내고 나서는 소설을 읽었다. <지극히 내성적인>이라는 소설집이었는데, 일상적인 소재로 쓰인 소설들이었지만 그 안에는 불안감과 긴장감이 내포되어있었다. 쉽게 읽히는 문장이라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면서도 나는 자꾸 어딘가 께름칙하다고 느꼈다. 스릴러를 보듯 자꾸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찜찜함에 책을 덮어버리고 조금 쉬다 보니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 되었다.
새로 산 가위로 닭 지방을 손질하며 가위를 사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날에 작은 톱니들이 있어서인지 이전에 쓰던 가위와는 비교도 안되게 잘 들었다. 이제 닭과 양배추를 전기밥솥에 넣고 찜기능을 누른 뒤 기다리기만 하면 저녁이 완성될 것이다. 나는 차갑고 아픈 배를 연신 손으로 비비며 이 일을 끝내자마자 따듯한 이불에 들어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모든 준비를 끝내고 밥솥 문을 닫았다. 그런데 개수대를 보니 가위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마지막으로 이거만 씻어놓고 얼른 쉬자! 라며 급히 가위를 씻던 나는 이윽고, 으아악, 소리를 질렀다. 톱니 가위 날이 나의 엄지 손가락 깊숙이 들어가는 걸 생생하게 느꼈다. 간담이 서늘해졌다.
워낙 자주 다쳐서 웬만하면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내가 소리를 빽빽 지르고 있으니, 남편도 저 멀리서부터 무슨 일이냐며 큰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아직 피도 맺히지 않았는데 눈 앞이 파래져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엉엉 울었다. 손을 펼쳐보니 밴드의 솜이 모두 빨간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아, 이틀 동안 피를 너무 많이 봐 버렸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추웠다. 무서웠다. 서늘하고 배가 아팠다. 지혈을 해야 하는데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그가 대신 나의 엄지손가락을 잡아주었다. 순간 웃음이 피식 나왔다. 너무 살짝 잡아서 지혈이 될 리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괜찮다’는 말도 나왔지만 막상 떨리는 몸은 가라앉지 않았다. 자꾸만 나의 등 골짜기에는 소름이 피어올랐다. 올 겨울 내내 떨었기 때문이었을까.
“많이 놀랐지? 누워서 조금 쉬어.”
남편이 말하자마자 나는 대답했다.
“응, 그러려고.”
하지만 그가 푹 쉬라고 자리를 피해 줄까 봐 두려웠다. 머릿속에서는 ‘오빠, 가지 마.’라는 말이 맴돌고 있었다. 흔들리는 눈망울을 지닌 채 베개를 정리하자 그가 두꺼운 겨울 이불을 두 겹으로 겹쳐서 내 몸 위에 얹어주었다. 그리고는 본인도 침대 위로 주섬주섬 올라오는데, 그 모습을 보니 갑자기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에게 팔베개를 해달라고 말하고 같이 누웠다. 차가웠던 나의 작은 발끝이 뜨거운 그의 발바닥 덕분에 따듯하게 데워졌다. 떨리는 몸으로 그의 팔베개 위에 누우니, 마음이 놓이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동시에 웃음까지 터져서 나는 울면서 웃었다. 남편은 내 머리카락을 흩뜨리며, 울든지 웃든지 하나만 하라고 했다. 막혀있던 혈관들이 시원하게 뚫리듯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밥솥의 찜기능이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끝나갈 때까지 우리는 단 잠을 잤다.
마음도 몸도 쇠약해진 주말이었다. 이틀 동안 나는 은근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지속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힘이 빠졌고, 콕콕 찔러오는 통증에 조금씩 아팠고, 또 종종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 모호하고도 견딜만한 고초를 겪으며 어쩌면 나는 조금 외로웠던 것 같다. 함께 사는 입장에서 자잘한 고통들을 모두 공유하는 것은 서로에게 다소 부담이 되는 일. 난 그에게 계속 괜찮다고 말했고 나 자신에게도 별 거 아니라고 최면을 걸었다. 씩씩하게 이겨내려 했다. 하지만 얕은 고난들이 모이고 모여서 펑 터져버렸던 그때, 그가 옆에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나의 떨리는 몸을 금시에 진정시켜줄 당신이 있어서, 내 차가운 손을 잡아줄 당신이 있어서 천만다행이라고, 나의 목소리가 마음속에 크게 울렸다. 당연한 듯 항상 옆에 있는 남편의 존재가 지독히도 감사해졌던 순간. 오래도록 서늘하던 나의 등골이 언제 그랬냐는 듯 따듯하게 녹아들던 바로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