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배우는 스타트업 #02] 피벗(Pivot) - 하
영화 <더 메뉴>에서 배우는 스타트업 '피벗(Pivot)'의 법칙 - 하
<주의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피벗의 현실
쿠팡플레이에서 방영한 ‘유니콘’이라는 웹드라마가 있다. 여기에는 맥콤이라는 회사의 CEO 스티브(신하균 분)가 등장한다. 그가 드라마에서 자주 외치는 말이 있다.
“피버팅이다”
스티브는 밥 먹듯이 피벗을 즐기는 사업가다. 의료기기도 만들다가, 데이팅앱으로 전환한다. 한국을 대상으로 사업하더니 아프리카에서 유저가 늘자 타겟층을 바꿀 생각도 한다. 그 전환 속도에 직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물론 좋은 사례로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잦은 피벗은 오히려 기업의 정체성마저 잃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단 하나도 성공하지 못하는 그저 그런 생존형 기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추정컨대 극 중 스티브가 피벗을 밥 먹듯이 할 수 있는 이유는 본인이 회사 지분 100%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스타트업들의 지배구조상 이 같은 구조는 찾아보기 어렵다. 스타트업들은 성장과정에서 ‘투자유치’라는 것을 받는다. 대표가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지만 주주명부에는 수많은 벤처캐피털(VC)과 지인들이 참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창업자는 내 마음대로 ‘피봇’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A라는 투자자는 ‘의료기기’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투자했는데 회사가 갑자기 ‘데이팅앱’을 개발한다고 하면 이를 기분 좋게 동의해줄까? 반면에 B라는 투자자는 “어서 의료기기 접고 데이팅앱으로 전환하자”고 의견을 피력할 수도 있다. 창업자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소통과 설득의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역으로 투자자들이 ‘사업전환’을 요구할 수도 있다. 오히려 이런 경우가 더 잦다. 경험이 많은 VC의 경우 회사의 기존 사업이 위기에 빠졌다고 판단되면, 직접 나서서 ‘피벗’을 주도하는 경우도 있다. 사업의 기회가 엿보이거나, 확장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도 마찬가지다. 타 회사와의 합병을 제안하거나,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전략도 자주 활용된다.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스타트업은 더 큰 투자금을 필요로 하게 된다. 점차 창업자의 지분율은 줄어든다. 많은 투자자들의 조언이 필요하고, 때에 따라 원치 않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할 수도 있다.
창업자들은 누구나 '치즈버거'를 가지고 있다
어느 순간 창업자들은 내가 꿈꾸던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참 이런 부분이 어려운 포인트다. 피벗한 사업이 자신에게도 잘 맞고, 더 큰 꿈을 심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업이 잘 되더라도, 창업자가 그렇게 행복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실제, 피벗 이후 사업이 크게 성공한 뒤에도 창업자들이 ‘첫 사업’을 잊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언젠가는 플랫폼 사업을 다시 해봐야죠”, “지금쯤이면 시장이 성숙하지 않았을까요?” 라며 “아직 그 꿈을 접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마치 ‘첫사랑’ 같다.
슬로윅 셰프 역시 본인이 원하지 않은 피벗을 감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초기 슬로윅 셰프에게 투자한 투자자들의 요구였을까? 그들이 평론가와 언론이 좋아하는 소위 ‘이슈되는 식당’을 원했을 수 있다. 그렇게 그는 행복했던 치즈버거 만들기를 그만뒀을 것이다. 누구나 먹을 수 있는 값싸고 맛있는 '치즈버거'는 슬로윅 셰프의 못이룬 꿈과 같은 것이다.
슬로윅 : 가난한 부모가 겨우 사줬던 싸구려 치즈버거를 만들어주지.
마고 : 얼마죠?
슬로윅 : 9달러95센트
그 결말이 궁금하다면 영화를 보면 된다. 스타트업 관계자라면 ‘피봇’이라는 관점, 창업자를 이해하는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