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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트파인더 Mar 28. 2024

영화 <더 메뉴>로 본 '피벗의 법칙' 上

[영화로 배우는 스타트업 #01] 피벗(Pivot) - 상

영화와 책을 좋아하는 벤처캐피털 투자심사역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과 취미를 함께 담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스타트업의 설립, 운영, 투자유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최대한 쉽게 알려드릴게요. 영화는 개인적으로 정말 추천하고 싶은 작품만 선정합니다.

'영화로 배우는 스타트업' 시작합니다.


영화 <더 메뉴>에서 배우는 스타트업 '피벗(Pivot)'의 법칙 - 상





<주의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인 167만원, 오마카세의 '비밀'


외딴섬에 위치한 고급 오마카세 요릿집이 있다. 이름은 ‘호손레스토랑’. 손님은 하루에 단 12명만 받는다. 1인당 코스요리 가격이 1,250달러, 한화로는 약 167만원이다. 오너셰프인 줄리언 슬로윅(레이프 파인스 분)은 자신만의 요리 철학을 갖춘 사람으로 유명하다. 섬에서 얻어지는 식재료만을 이용해 ‘섬의 생태계’를 요리로 내놓는다. 수많은 음식 평론가와 유명인사들이 극찬하는 그야말로 최고의 맛집이다.



어느 날 마고 밀스(안야 테일러조이 분)에게 이 레스토랑 식사기회가 주어진다. 그의 파트너 테일러(니콜라스 홀트 분)가 여자친구와 헤어졌기 때문이다. 사실상 ‘땜빵’이다. 어쨌든 167만원짜리 공짜 저녁인데 가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런데 레스토랑의 요리들이 생각보다 별로다. 일단 양이 너무 적다. 빵에 찍어 먹는 소스만 주는 기괴한 요리도 나온다. 셰프인 슬로윅의 강압적인 행동 역시 거슬리긴 마찬가지다.


마고는 슬슬 ‘연초’가 당기기 시작한다. 몰래 화장실에 들어가 담배를 피우다 슬로윅 셰프와 언쟁을 벌인다. 이후 레스토랑의 기괴한 요리와 퍼포먼스는 점점 선을 넘기 시작한다. 요리가 끝나갈 무렵, 그녀는 우연히 외딴섬에 숨겨진 셰프의 방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의 숨겨진 과거에 대해 알게 된다.


슬로윅 셰프는 젊은 시절 저렴한 ‘치즈버거’ 가게에서 일했던 ‘직원’ 이었다.


대박의 비결은 ‘피벗(?)’


치즈버거를 만들던 셰프가 고급 오마카세를 운영하고 있다? 적어도 이 셰프는 사업과정에서 한 번 이상의 ‘피벗(pivot)’ 과정을 거쳤다고 봐야 한다.


피벗이란, 스타트업이 사업 전략을 수정하거나, 방향을 틀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것을 말한다. 농구에서 유래한 말로, 한 발을 축으로 다른 발을 움직이며 기회를 찾는 동작을 말한다. 에릭 리스의 저서 [린스타트업]에서 '사업전환'을 뜻하는 용어로 처음 소개됐다. 지금은 스타트업 세계에서 매우 흔하게 사용되는 용어 중 하나다.


피벗의 성공사례는 무수히 많다. 흔히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기업)이라 불리는 기업 중 피벗을 하지 않은 사례를 오히려 찾기 어려울 정도다.


비바리퍼블리카는 간편송금 서비스 ‘토스’ 운영사다. 이 회사의 이름 ‘비바리퍼블리카’는 해석하면 ‘공화국 만세’다. 송금 서비스 회사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비바리퍼블리카는 토스 이전에 모바일 투표용 앱인 ‘다보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울라불라’를 운영하던 업체였다. 앞선 두 서비스가 크게 인기를 얻지 못하면서 피벗을 선택했고, 그렇게 나온 서비스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토스’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넷플릭스’의 사례가 많이 언급된다. 넷플릭스는 인기 비디오나 베스트셀러 책을 우편으로 배달해 주던 업체였다. 스트리밍의 가능성을 보고 빠르게 현재의 구독 모델로 전환했고, 그 결과는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다.


유튜브 역시 처음에는 비디오 기반 데이트 서비스였다. 사용자들이 자신의 이상형을 짧은 영상으로 업로드해 상호 매칭하는 구조였다. 그러다 이용자들이 이성 간 만남보다 자신의 일상을 올리는 것을 즐기는 것을 보고 완전히 ‘동영상 공유 플랫폼’으로 전환했다.


치즈버거를 버린 이유
 ‘피벗의 법칙’


슬로윅 셰프 역시 피벗을 선택해 영화에서는 매우 성공한 ‘셰프’의 반열에 올랐다. 성공한 유니콘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피벗은 사업적으로는 ‘옳았다’. 그렇다면 그의 과거 사업인 ‘치즈버거’를 버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 과정에서 어떤 사고를 했을까. 많은 스타트업들이 피벗을 선택하고 진행하는 과정에 대해 알아보자.


에릭 리스의 [린스타트업] 내용 정리


에릭 리스는 ‘린스타트업’에서 피벗의 유형을 10가지 유형(그림)으로 정리한다. 유튜브의 사례는 기존 사업 모델 혹은 제품의 일부분을 전체 제품 및 서비스의 핵심으로 수정하는 ‘줌인(Zoom-in) 피벗’에 해당한다. 넷플릭스의 경우 고객니즈를 파악한 뒤 스트리밍 서비스로 기존 사업을 전환했다. ‘고객니즈(Customer needs) 피벗’에 적합한 사례로 해석된다.


하지만 비바리퍼블리카의 사례는 이 같은 피벗 유형 중 한 가지를 선택하기는 어려워진다. 사업 전체를 수정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펜실베이니아大 와튼스쿨의 커틀리 교수와 보스턴大 경영대학 오마호니 교수(Kirtley & O'Mahony, 2020)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스타트업이 피벗 결정에서 고민하는 요소는 총 5가지로 요약된다. 기술, 시장, 자금조달, 공급망, 조직운영 등이다. 창업가들은 여기에 해당하는 정보가 자신들의 성과달성에 유리하면 ‘기회’, 위협적이면 ‘문제’로 인식한다.


새롭게 얻은 정보는 기존의 전략의 타당성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이 정보가 기존의 가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다면 스타트업은 ‘피벗’을 진행할 이유가 없다. 반면, 기존 전략의 가정을 크게 벗어나면 ‘피벗’을 고려하게 된다. 위기라고 판단되는 상황에서는 '출구전략'을, 기회라는 판단이 서면 파이를 더 키울 수 있는 '추가전략'을 실행하면 된다. 이 연구에 의거하면 비바리퍼블리카는 전형적인 출구전략 사례에 해당된다.


연구에서는 스타트업들이 ‘피벗’을 고민하는 경우는 매우 많지만, 실제 피벗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적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피벗 역시 한 번의 의사결정으로 발생하지 않았다. 지속적이고 점진적으로 전략 변화가 누적되면서 ‘피벗’이 진행됐다.


요즘은 신기술이 지속해서 등장하고 있는 시대다. 고객의 니즈도 끊임없이 변한다. 이런 시대에 스타트업이 기존의 사업을 지속해서 끌고 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파악하고, 트렌드를 분석하고 학습해야 한다. 변화에 대한 민감성과 연속적인 고민이 어쩌면 ‘피벗’의 핵심일 수 있다.



"스타트업은 검정되지 않은 가설들, 쉬운 말로 ‘추측’에서 출발하는데 익숙하다. 이런 추측은 언제든 틀려도 괜찮다. 빠르게 실험하고 학습해 다른 가설로 바꾸면 된다. 피벗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는 조직과 리더십이 그런 신속한 변화를 허락한다는 것이다."

- 스티브 블랭크 스탠퍼드대 교수의 DBR 인터뷰 내용 中 -


슬로윅 셰프가 원한 것은


다시 영화로 돌아가, 슬로윅 셰프 역시 위와 유사한 사고과정을 겪은 후 수차례 피벗을 진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처음에는 ‘치즈버거’ 가게를 꿈꿨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평소 웃음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마고가 발견한 과거 사진에서 그는 ‘치즈버거’를 만들며 활짝 웃고 있다.


그의 ‘피벗’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피벗의 법칙' 下 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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