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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트파인더 Apr 18. 2024

영화 <커런트워>가 담은 '퍼스트무버'의 한계

영화 <커런트워>


<주의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단 한 명의 천재를 원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사업의 세계에서는 패자(者)가 존재한다. 영화 <커런트워>는 인류 최대의 ‘표준전쟁’이라 불리는 전류의 경쟁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토마스 에디슨(베네딕트 컴버배치 분)과 조지 웨스팅하우스(마이클 셰넌 분)의 사업적 경쟁을 그린다. 하지만 영화에서 놓치지 않는 부분은 이 기술의 핵심을 가지고 있는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니콜라스 홀트 분)의 경쟁이다. 과학자로서 두 사람의 고뇌와 좌절을 생생하게 담았다. 덤으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고풍적인 미국의 모습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우리는 이 영화의 결말을 모두 알고 있다. 전기를 최초로 사업화한 개척자 에디슨의 직류는 ‘패자’였다. 웨스팅하우스는 후발주자였지만 교류의 우수성을 입증하며 사업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지금 우리가 쓰는 그 전기의 표준이다. 


‘퍼스트무버’와 ‘패스트팔로워’


에디슨은 전기사업의 ‘퍼스트무버(First Mover)’다. 퍼스트무버는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여는 선도자라는 의미로 비즈니스 세계에서 지금까지 없던 사업을 처음으로 선보인 기업들을 말한다. 비슷한 용어로 ‘퍼스트펭귄’이라는 말도 있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펭귄 중 가장 먼저 물속으로 뛰어드는 용기 있는 펭귄을 빗대어 ‘사업의 개척자’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패스트팔로워(Fast Follower)’는 새로운 제품,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전략이나 기업을 말한다. 단순히 퍼스트무버의 제품을 모방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퍼스트무버가 놓치고 있는 허점을 파고들어 시장에 더 필요한 제품을 선보이기 것이 핵심이다. 


영화에서 에디슨의 직류전기(DC)는 거리와 전력이 반비례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먼 거리까지 송전이 어렵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던 것이다. 웨스팅하우스는 이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에디슨의 직원이었던 테슬라는 이 단점을 극복할 방법 ‘교류전기(AC)’라는 솔루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테슬라를 고용한 웨스팅하우스는 패스트팔로워로서 전기사업에 뛰어들었고, 기술의 표준을 잡게 된다.  


“에디슨의 전기는 2km 이상 못 가요. 직류 전동기와 전선을 엄청나게 깔아야 해요. 하지만 교류 발전기는 한대로 전압을 올려서 멀리까지 보낼 수 있어요. 훨씬 효율적이고 75% 저렴해요”


스타트업의 세계에서 누가 더 유리할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술들은 모두 라이벌이 있었다. 그렇게 경쟁에서 승리한 ‘기술의 표준’은 한 시대를 지배했고 막대한 부(富)를 창출했다. 2000년대에는 웹브라우저 분야에서 인터넷익스플로러와 넷스케이프가 붙었고, 키보드나 철도궤 역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기술의 표준’이다. 


표준전쟁은 주로 퍼스트무버와 패스트팔로워의 경쟁으로 이뤄진다. 누가 더 유리할까. 정답은 없지만 일방적으로 누군가가 유리하다고 속단할 순 없다. 

비디오테이프, OTT 모두 경쟁의 산물이다 @ Dall-e  생성 이미지

비디오테이프의 사례를 보자. 지금은 추억이 됐지만, 1990년대에는 ‘비디오 대여점’이 치킨집만큼 많았다. 비디오테이프가 없는 세상은 상상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 비디오테이프는 1976년 일본의 JVC 사가 만든 VHS라는 제품이다. 이 제품은 ‘패스트팔로워’였다. 퍼스트무버는 1975년 소니가 출시한 베타맥스라는 제품이었다. 베타맥스는 기술적으로 뛰어났다. 화질이 좋았고, 편의성도 훌륭했다. 하지만 VHS는 시장의 요구가 범용성과 더 저렴한 제품에 있다고 판단했다. 이 부분을 파고들어 베타맥스보다 싸고 널리 사용되는 VHS를 선보인 것이다. 퍼스트무버가 가진 한계를 잘 파고들어 시장의 표준이 된 패스트팔로워 사례다. 


반면, 퍼스트무버가 지위를 잘 유지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넷플릭스가 대표적이다. 스트리밍 콘텐츠 시장을 개척하며 OTT(Ovet The Top) 산업을 만들어낸 이 회사는 지금도 시장 1위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넷플릭스 한국법인의 매출은 8,233억원, 영업이익은 121억원이다. 국내 후발주자라고 할 수 있는 티빙과 웨이브는 매출이 각각 3,264억원, 2,479억원으로 넷플릭스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영업이익은 적자다. 넷플릭스는 퍼스트무버의 장점인 시장 장악력을 빠르게 확장했고, 오리지널 콘텐츠 측면에서도 다른 후발주자를 누르면서 일인자의 위치를 공고히 쌓고 있는 사례다. 


실제 승률은 패스트팔로워가 높았다


잭 트라우트와 알 리스가 제시한 마케팅 불변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제1법칙은 선도자의 법칙이다. ‘더 좋은 제품보다는 맨 처음 나온 제품이 낫다’는 것이다. 이 법칙에 따르면 퍼스트무버는 시장에서 패스트팔로워보다 유리한 지위에 있다


하지만 실제 사례나 연구에서 꼭 퍼스트무버가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승률을 계산한 연구에서 ‘패스트팔로워’가 더 유리하게 나온 사례도 있다. 서던 캘리포니아대 교수였던 제라드 텔리스 교수와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였던 피터 골드의 연구에 따르면 마켓 리더 중에는 퍼스트무버보다는 패스트팔로워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20년 전 개척자와 정착자로 사업 비즈니스를 나눠 성공의 확률을 계산했다. 개척자는 특정 상품을 가장 먼저 개발하거나 판매한 회사로 지금은 퍼스트무버에 해당된다. 정착자는 개척자 시장을 조성한 이후 진입한 기업을 의미하니 패스트팔로워다. 


이들은 치약, 면도기 등 50개 제품카테고리의 500개 브랜드를 연구했다. 결과적으로 퍼스트무버는 실패율이 47%로 패스트팔로워의 실패율 8%보다 5배 이상 높았다. 시장점유율 역시 퍼스트무버는 10% 였지만, 패스트팔로워는 28%였다. 퍼스트무버가 시장에서 유리한 지위를 가지고 선두를 지킨 기간은 5~10년 정도였다. 이후는 패스트팔로워가 시장을 장악했다. 


펜실베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의 애덤 그랜트 교수는 자신의 저서 ‘오리지널스’에는 이 같은 원인을 지적한 바 있다. 퍼스트무버는 온갖 시행착오를 직접 겪지만, 패스트팔로워는 이들의 실수와 실패를 보고 배워서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 패스트팔로워가 경쟁에서 승리하는 비법이다. 


스타트업을 준비한다면?
어느 위치냐에 따라 전략이 달라진다 


영화 <커런트워>의 제목은 ‘현재’의 전쟁이라는 의미다. 역사 속 전류전쟁을 다루지만, 이 같은 표준전쟁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의미하지 않을까. 


2차전지, 우주항공,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신기술이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 누가 승자가 될지는 모르지만, 전류만큼이나 시대를 바꿀 위대한 기술임에는 틀림없다. 여기에 많은 스타트업들이 뛰어들고 있다. 퍼스트무버의 기술로 선도하는 기업들도 있고, 패스트팔로워로 더 좋은 제품을 선보이는 기업들도 있다. 사업을 시작하려는 스타트업이라면, 자신의 아이템이 어떤 위치인지 파악하고 여기에 맞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좋다.

 


에디슨은 전류전쟁에서는 패했지만, 이후 영화라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냈다. 에디슨의 비서였던 사무엘 인설(톰 홀랜드 분)은 추후 분산화된 전력망을 하나로 통합하는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내고 전기를 독점하게 된다. ‘테슬라’라는 이름은 전기차 시장의 ‘퍼스트무버’가 됐다. 


“사무엘 인설은 6000개가 넘는 전력 설비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이를 가동하기 위해 7만2000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었고 그 서비스를 받는 인구는 1000만명에 달했다”

– 버클리 데일리 가젯트, 사무엘 인설의 부고기사


패자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고, 패스트팔로워는 퍼스트무버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BEST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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