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배우는 스타트업 #04]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영화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와 법인의 형태
배울 수 있는 용어 : LLC(Limited Liability Company), 주식회사, 법인세
<주의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웨스 앤더스 감독의 영화는 명확하다. 그의 영화를 보는 순간 “이것은 웨스 앤더슨이다!”라고 할 정도로 차별화된 영상미를 가지고 있다. 독특한 색감과 대칭적 구조로 표현되는 그의 스타일은 어마어마한 팬덤까지 갖췄다. 인스타그램에 이 스타일의 사진을 찍어 올리는 ‘우연히, 웨스앤더슨(@accidentallywesanderson)’이라는 커뮤니티가 있을 정도다.
영화 <기상천외한 헨리슈거 이야기>는 웨스 앤더스 감독의 첫 오스카상 수상작이다. 단편영화다. 실제 러닝타임은 40분 정도다. 영화는 헨리 슈거(베네딕트 컴버배치 분)라는 사람의 소개로 시작된다.
헨리 슈거는 41세의 부유한 독신가였다.
친구들도 모두 부자였고 평생 단 하루도 일해본 적 없었다.
딱히 나쁜 사람도 그렇다고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인테리어 소품 같았달까.
헨리 슈거는 많은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더 부유해지겠다는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어느날 그는 자신보다 돈이 더 많은 부자의 집에서 이상한 책을 하나 발견한다. 그 책에서 헨리 슈거는 ‘눈을 감고도 앞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얻는 방법을 알게 된다.
그는 수년간의 수련 끝에 그 능력을 습득한다. 카지노에 갔더니 딜러의 패가 한 눈에 보인다. 돈 버는 것이 너무 쉬워졌다. 그런데 점점 인생이 재미가 없어진다. 더 큰 부자가 되는 목표를 이뤘는데, 그저 허무한 것이다.
법인에도 종류가 있다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아니었던 헨리 슈거. 어느날 그는 돈을 좋은 곳에 쓰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가 1년간 카지노에서 번 돈은 1억2,000만파운드(한화 약 2,060억원)다. 이 돈으로 전 세계에 고아원, 병원을 짓겠다는 아주 바람직한 목표를 세운 것이다.
헨리 슈거는 이 돈을 관리하고 집행하기 위해 스위스에 회사를 설립한다. 회사의 이름은 윈스턴 슈거 유한책임회사(LLC)다.
법인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다. 국내 상법상에는 주식회사, 합명회사, 합자회사, 유한책임회사(LLC), 유한회사 등 5가지로 나눠진다. 차이는 ‘책임소재’에 있다. 합명회사는 회사의 모든 구성원에게 책임이 있다. 주식회사, 유한회사, 유한책임회사의 경우는 개인의 책임과 회사의 책임이 구분되어 있다. 개인이 책임을 지는 사람과 책임을 지지않는 사람이 섞여 있을 경우는 합자회사가 된다.
국내 대부분의 회사는 주식회사다. 개인과 사업이 분리되어 있고, 주식을 사고 팔기 쉬워 외부에서 투자유치를 받기 유리한 구조다. 스타트업의 경우도 대부분 주식회사의 형태를 지닌다.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대표가 전부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고, 성장에 따라 효율적으로 외부에서 투자유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업은 사실 개인사업자 형태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럴 경우에는 벤처캐피털(VC)과 같은 기관으로부터 투자유치를 받기는 어렵다. 사업이 확장될 경우 투자유치를 위해 벤처캐피털(VC)이나 창업기획자(액셀러레이터)를 찾아가면, 법인 전환을 조언해주는 경우가 많다. 이때 전환하는 회사가 주식회사다.
헨리 슈거가 'LLC'를 택한 이유
그렇다면, 헨리 슈거는 왜 주식회사가 아닌 유한책임회사를 선택했을까. 헨리 슈거의 회사는 일반 스타트업과 달리 목적이 다르다. 주식회사 형태의 일반 기업들은 사업을 통해 수익을 얻고 이를 활용해 성장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헨리 슈거의 회사에는 사업이랄게 없다. 헨리 슈거가 카지노에서 버는 돈을 받아 좋은 곳에 쓰는 것이 목적이다. 주식회사처럼 주주총회를 열거나, 투자유치를 하거나, 기업공개(IPO)를 진행할 이유가 없다. 그저 효율적으로 돈을 관리하고, 의사결정을 빠르게 가져가기 위해 주식회사보다는 LLC가 유리했던 것이다.
세금적인 이슈도 있다. 영화에서 헨리 슈거가 법인 설립 전 자신의 회계사와 간단히 논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자선사업을 잉글랜드에서 할 경우 세금으로 전부 뺏길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들이 세금의 부담이 적은 스위스에 LLC를 설립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애플, 구글과 같은 외국계 기업들은 국내에 지사를 설립할 때 LLC 형태의 법인을 선택한다. 딜리버리히어로 코리아도 ‘배달의 민족’을 인수한 뒤 회사의 형태를 LLC로 전환한 바 있다. 외국계 기업들이 국내 지사를 LLC로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외부감사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주식회사의 경우 일정 규모 이상이면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고 해당 내용이 공개된다.
외부감사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매출이나 수익구조를 명확하게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법인세와도 직결되는 부분이다. 수익을 의도적으로 줄이거나, 다른 지역으로 전환할 수 있어 법인세가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헨리 슈거 역시 자금의 원천이 사실 좀 구린 편이다. 카지노에서 입금되는 돈의 출처와 사용처를 모두 공개해야 할 경우 매우 난감해질 수 있다. 그러다보니 비교적 이런 부분에서 베일에 가릴 수 있는 LLC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다.
실제 LLC를 활용한 기부사례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다. 그는 2015년 LLC를 설립해 기부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가 비영리법인이 아닌 LLC를 선택했던 이유도, 자금운용의 효율성 때문이다. 회사의 자금을 주식투자 등에 자유롭게 활용하고 어떻게 벌어들인 돈을 기부라는 좋은 목적에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스타트업이 성장한 뒤 창업자가 사회에 수익을 환원하는 모습은 어찌됐든 사회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헨리 슈거는 전 세계에 21개의 어린이병원과 고아원을 설립해 성공적으로 운영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