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여름을 맞이하며

by 여행하는가족


벌써 두 번째 여름이다. 이 더운 나라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여름.


뒤돌아보면 한 해 전 여름은 당황스러운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코앞에 세워둔 자동차까지 걸어가는 데 몇 분이나 걸린다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사람의 몸에서 이렇게나 많은 땀이 흘러나올 수 있나, 그나저나 이게 정말로 다 내 몸에서 나온 것일까 의심스러웠던 나날. 그런 시간들이 마치 엊그제 같은데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인 것일까? 여름에 땀에 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 자동차 에어컨을 가장 세게 틀어두면 곧 열기가 식을 거야, 여유를 부리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더위라면 딱 질색이었던 내가 어쩌다가 일 년 내내 바다에서 수영을 할 수 있는, 아니, 그것을 넘어, 여름이면 온 세상이 마치 가마솥처럼 절절 끓는 통에 거리를 걸어 다닐 수도 없는 나라에서 살게 되었을까?


수요일 문자 한 통

그날은 수요일이었다. 지난 수많은 수요일과 다름없는 평범한 수요일.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남편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곳엔 이제껏 거주지로 단 한 번도 고려해보지 않았던 도시의 이름과 더불어 자신이 당장 내일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그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적어도 한 번,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근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이라면 아이가 아직 어려서 학교를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는 지금 해버리는 게 낫다는 판단 하에 지방 근무를 자원한 것도 사실이었다. 문제는 발령 공지일과 새로운 곳에서의 근무 개시일이 너무나도 가깝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도 앱을 켜고 우리 집에서부터 남편의 새 근무지까지의 거리를 계산해 보았다. 발령지에서 살 집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은 금세 나왔다.


그런데 나는? 나는 어쩌지? 출산과 육아, 그리고 남편의 유학 때문에 벌써 여러 차례나 휴직을 했던 데다 이제 곧 마흔인데.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사표 한 장 가슴에 품고 산다지만 나름 덕업 일치를 이룬 사람으로서 나는 내 일을 사랑해 왔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다시 한번 휴직을 한다면 이제는 일을 정말 떠나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래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나는 가족을 선택하기로 했다.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온 가족이 한집에 모여 살며 매일의 소소한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것이니까.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커리어에 쉼표를 찍기로 했다. 앞으로의 수요일은 이제까지의 수요일과 전혀 다른 날들이 될 것이 분명했다.


다시 서울로가... 아니었나요?

그렇게 번갯불에 콩 볶듯 서울을 떠난 우리는 여차저차 낯선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남편의 파견 기간이 끝나는 대로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계획을 안고서. 하지만 그로부터 일 년 후 우리 가족은 국제 이삿짐을 싸게 되었다. 내 아파트 현관 문고리를 잡으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그곳에 묻어 있을 것만 같아 벌벌 떨던 팬데믹 시대에 일 년마다 이사라니. 게다가 이번엔 국내 이사도 아니고 해외로의 이사다. 설상가상으로 지금 휴직을 연장하게 된다면 내 직장과는 진짜로 안녕일 것이었다. 안 그래도 휴직의 역사를 쓰고 있었는데... 그러나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휴직 연장 신청서를 제출한 나는 이번 휴직이 끝나는 날짜를 나의 퇴직 날짜라 생각하기로 했다. 언젠가는 하게 될 퇴직, 이 참에 몇 년 앞당겨하는 셈 치고 제2의 인생을 일찌감치 준비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새로운 보금자리로

새로운 세계에서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을 삶이 기대되기도 했지만 걱정 또한 태산 같았다. 그러나 그런 나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시간은 얄밉도록 따박따박 흘러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2021년 새해가 밝아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KF94 마스크를 쓰고 땀 때문에 자꾸만 손에 달라붙는 위생장갑까지 단단히 낀 우리 가족은 먼 나라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방호복까지 챙겨 입고 싶었으나 너무 유난을 떠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에 그것까지는 참았건만 실제로 방호복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무장한 채 비행기에 탑승한 이들을 보고는 어찌나 부럽던지!


비행 중 화장실에 가는 일을 최소화하고 싶어 목이 바짝바짝 말라도 참아가며 내 자리를 떠나지 않기를 장장 아홉 시간 반. 드디어 우리 가족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새하얗게 내린 눈을 반기던 내 아이가 손까지 호호 불어가며 눈썰매를 탔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공항 밖 공기는 이미 한여름의 그것처럼 후덥지근했다. 임시 숙소로 향하는 길은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오래전 신혼여행길에 이틀을 머물렀던 도시였다. 신혼여행.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설레고 신났을 시간들. 그 따사로운 기억에 긴장이 풀릴 만도 했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기어가다시피 움직이는 차 안에 앉아 있노라니 추억이 웬 말이고 설렘이 웬 말이더냐. 이 짙은 안개가 설마 우리의 앞날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겠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시로 내 마음을 파고드는 불안한 생각을 꾹꾹 눌러가며 한 가닥 동아줄에 매달리는 마음으로 나는, 곁에 앉은 내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다행히 목적지는 공항에서 멀지 않았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에 짐을 부리는 사이, 도시를 덮고 있었던 안개는 거짓말처럼 감쪽같이 물러나 있었다. 문득 돌아본 창밖으로 쭉 뻗은 도로와 그 위를 바쁘게 오가는 차량의 물결이 보였다. 이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은빛의 첨탑과도 같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삼 년 간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가 되어줄 이 도시. 이곳의 상징과도 같은 높게 솟은 건물은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였고, 도시의 이름은 두바이(Dubai)였다.




[기고처] 브릭스 매거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