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그녀, 오늘도 만나러 갑니다

by 여행하는가족

"인스타그램 해요?"

"뭐라고요?"

"인스타그램 하냐고요."

"하긴 하는데... 왜요?"

"그럼 어서 날 찾아서 친구 추가해요."


만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손가락을 까딱까딱거리면서 이리 좀 가까이 와보라더니 다짜고짜 자기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란다. 요청보다는 요구에 가까운 태도로 말을 내뱉는 폼이 솔직히 황당했다. 놀라운 사실은, 상대방이 그토록 당당하게 나오니 화가 나기는커녕 웃음이 터져버렸다는 것. 날 이렇게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두바이의 도서관
두바이 정부는 문화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큰 까닭에 도시 곳곳에 괜찮은 수준의 공공도서관들이 많다.
어린이 도서관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어린 독자들을 위한 공간을 갖추고 있다.


두바이의 도서관

결혼 후 여러 차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사를 다녔다. 새로운 공간에 짐을 풀 때마다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는 마음 편히 드나들 수 있는 도서관을 찾는 것이었다. 현대에 지어진 도서관들은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있든 대동소이한 구조를 지닌다. 그러니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 나는, 한 군데쯤 익숙한 장소를 찾고 싶었던 같다. 물론 내가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바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나는 새로운 아지트가 되어줄 도서관을 찾아 헤맸는데 다행히 두바이 정부는 문화산업을 육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커서 도시 곳곳에 괜찮은 수준의 공공도서관이 많았다. 이런 까닭에, 발품을 오래 팔지 않아 집 가까운 곳에서 마음에 드는 도서관을 찾을 수 있었다. 위치 말고도 이 도서관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또 있었다. 하나의 건물에 성격이 다른 도서관 세 곳이 모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양한 책들이 분야별로 꽂혀 있는 일반적인 도서관과 더불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알록달록하게 꾸며 놓은 어린이 도서관, 거기에 아랍에미리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는 오래된 자료부터 최근에 출간된 여행서까지 살펴볼 수 있는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의 도서관까지. 그래서 나는 그곳에 갈 때마다 일석이조를 넘어 일석삼조의 기쁨을 맛보곤 한다.



도서관의 그녀들

두바이의 공공도서관에 가면 검은색 아바야*로 온몸을 감싸고 히잡*으로 머리칼까지 꽁꽁 감춘 여성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대부분 사서로 근무하는 분들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그들과 마주했을 때는 궁금한 게 있어도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서슴없이 말을 걸어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랍문화권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어 용기를 내어 한 마디를 건넸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것은 열 마디. 어쩌면 내가 유독 활발한 성격을 가진 분들만 족집게처럼 콕 집어내어 말을 건 것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두바이에서의 체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럴 확률은 희박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사실, 자기들끼리 대화 나누는 것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전부터 하고는 있었다. 업무에 돌입하면 잡담을 나눌 여유 없이 돌진하듯 일을 하는 한국인들과는 다르게 볼 때마다 그녀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나 같은 외부인과도 말을 트니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친절하고 말은 또 얼마나 청산유수인지! 가령 처음 아랍어를 배우고 있는 우리 아이가 읽을 만한 책이 있는지 그녀들에게 물었다고 치자. 그러면 언어발달 단계별로 책을 추천해 주고 나아가 그 책들을 책장 한편에 모아둘 테니 편하게 뽑아 읽으라는 배려로까지 이어지는 식이다.


*아바야: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한 나라의 사람들이 입는 전통 의상으로 어깨부터 발목까지를 다 가릴 정도로 긴 옷

*히잡: 머리카락을 가리는 베일


도서관에 가면 아바야를 입고 히잡을 두른 에미라티 여성 사서들을 만날 수 있다.


나의 새로운 아지트, 그리고 아바야의 그녀

새로운 아지트로 점찍은 도서관에서 만난 사서들도 모두 활발하고 친절하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은 친절은 잘 모르겠고 성격이 유독 활발하다. 음,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몹시 상당히 베리 무쵸 활발하다고나 할까. 처음 만난 날부터 거침없더니 몇 차례 만난 이후로는 이건 뭐 아주 몇 년을 알고 지낸 사이처럼 용건이 있으면 자기가 나한테 다가오는 것도 아니고 저 멀리에서부터 내 이름을 부르며 손가락을 까딱까딱 이리 좀 와보라 한다. 그 예의 없는 손가락을 보고 기분 나빠야 할 내가 그런 생각은커녕 이번엔 또 뭘까 궁금해하며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면, 그 뭐라더라? 라포(rapport)가 초고속으로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날이었다. 하교한 아이와 함께 도서관을 방문하여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에서부터 또 "유미, 유미~!" 외치는 소리가 귓구멍으로 파고들었다. 아유 진짜 , 왜 또 불러. 귀찮은 마음이 살짝 고개를 들었지만 못 들은 척할 수는 없어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어김없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급한 발걸음으로 나를 향해 다가오는 아바야의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성격이 어찌나 급한지 손가락은 나를 향해 자기 쪽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내면서도 몸은 이미 내쪽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정이 가기도 하고.


목적지에 당도한 그녀는 불쑥 인스타그램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더니, 네 핸드폰 어디 있니? 지금 당장 그걸 꺼내서 자기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은 다음 친구를 맺으라는 거다. 그러면서 덧붙인다는 말이, 이건 회사 계정도 아니고 씨크릿트! 씨크릿트! 자기 개인 계정이란다. 상대의 거침없는 기세에 나는 주술에 걸린 듯, 하던 일을 멈추고 주섬주섬 가방을 뒤져 핸드폰을 꺼내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명령에 따라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그녀를 찾았고 팔로우 버튼을 눌렀다. 곁에서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그녀가 이번에는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내뱉었다.


"라이크! 라이크! 내가 올린 게시물에 싹 다 라이크를 눌러요!"


아무래도 이분, 인스타로 넘어오시기 전에 오랫동안 페이스북에 몸담으셨던 듯한데? 능구렁이처럼 슬금슬금 이어지는 요구에 푸하하 웃음을 터뜨린 나는, 지금은 할 일이 있으니 이따 집에 가서 네 소원대로 라이크든 하트든 뭐든지 간에 싹 다 눌러 주마 약속했고 그제야 아바야의 그녀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마음 편히 드나들 수 있는 도서관을 한 군데 더 찾았다. 오른쪽 건물이 도서관이고 왼쪽은 도서관 옆에 자리한 모스크.
아랍에미리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는 오래된 자료부터 최근에 출간된 여행서까지를 살펴볼 수 있는 도서관. 분위기가 고풍스럽다.


도서관에 가고 싶어지는 이유

이 사막의 도시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덧 두 해를 넘겼다. 두바이는 워낙 국제적인 도시이고 자국민보다 외국인들의 비율이 현저히 높은 곳이다. 그러다 보니 영어가 공용어처럼 쓰인다. 아랍어를 배우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핑계로 나는 부끄럽고 또 놀랍게도 지금까지 아랍어 까막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어로 쓰인 책 보다 아랍어책의 비중이 더 큰 도서관들을 여전히 드나들고 있다. 읽을 수도 없는 꼬부랑글자가 곁들여진 사진집을 감상하고 혼자, 또는 아이와 함께 책을 읽기 위해서다.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시간 동안에는 글을 쓰러 가기도 한다. 두바이의 도서관 대부분에는 여성 이용자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큼지막한 칸막이 너머 푹신한 의자에 몸을 묻고 널찍한 책상 앞에 앉아 있노라면 어찌나 글이 술술 잘 써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까지 쓰다 보니 아무래도 나, 집 근처 도서관에 가고 싶어지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은 것 같다. 자기가 쉬는 날에는 도서관에 올 필요 없고 근무하는 날에만 오면 된다며 내가 먼저 묻지도 않은 자기의 근무일을 알려준 그녀, 나와는 생김새도 국적도 종교도 옷차림도 다른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그래서 오늘도 나는, 발칙한, 그러나 밉지 않은 그녀를 만나러 도서관으로 향한다.


아랍어 까막눈인 나는 두바이의 도서관에 가면 사진집을 자주 들춰본다.
우리 부부의 취미는 여행과 독서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도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다.



[기고처] 브릭스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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